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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이 무슨 민주국가인가?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국제관계 호혜·평등도 '민주주의' 중요 잣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중동 아랍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튀니지에서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 아라비아 반도에 속한 바레인과 예멘,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에까지 민주화 시위 바람이 불고 있다. 급기야 3월 14일엔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레인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사태까지 불렀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이른바 중동전문가들조차 내다보지 못하던 민주화의 소용돌이다.

우리가 흔히 '중동'(Middle East)이라 부르는 지역을 현지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부른다. '중동'이라는 이름은 19세기의 세계 초강대국인 대영제국의 잣대로 붙여진 것이다. 한반도를 '극동'(Far East) 지역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강대국 중심의 시각이 배어있는 셈이다.

중동지역의 범위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동서로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부터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이란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 수단에서부터 이집트를 거쳐 터키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지역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23개국에 거의 4억 인구를 아우른다.

▲ 바레인 여성들의 시위 장면 ⓒ뉴시스

이스라엘이 '중동 유일 민주국가'?

교과서적인 서구 민주주의의 잣대로 중동 정치상황을 잰다면, 대부분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중동의 깡패국가'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스라엘은 어떨까? 미국의 중동정책에 입김을 불어넣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은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라고 강조한다.

외형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내각책임제 민주국가다. 선거 때면 수십 개의 군소정당들이 저마다 후보명단을 내걸고 득표율에 따라 뽑힌 비례대표 후보들로 국회(크네세트)를 구성한다. 정당끼리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정치과정 자체는 서구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 국가가 참으로 민주국가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잣대는 국내 정치제도만으로 판별할 수 없다. 그 나라가 이웃국가들과 민주적 호혜평등의 국제관계를 갖느냐, 아니면 신식민주의적 패권정책을 펴나가는가를 살펴야 한다. 오늘의 중동 사람들 눈에 비친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뒤로 팔레스타인과 골란고원을 점령해 식민지로 삼고, 걸핏하면 이웃나라 레바논을 침공해온 군국주의 파시스트 국가다.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

물론 중동 국가들이 비민주적인 측면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꾸란(이슬람 경전)에 대한 존중심이 말해주듯, 이슬람 종교의 비중이 워낙 커서 정치와 법체계가 종교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측면과 뿌리 깊은 부족주의도 교과서적인 민주주의를 시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늬만 민주주의'인 독재국가들이다.

그런 중동국가 명단(집권자 이름, 지금까지의 통치기간)로 정리해보자면, 올해 시민혁명을 겪은 이집트(호스니 무바라크, 30년)와 튀니지(자인 벤알리, 21년), 전폭기까지 동원해 학살바람을 일으킨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42년), 그리고 예멘(알리 압둘라 살레, 32년), 알제리(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12년), 시리아(바샤르 알 아사드, 11년) 등이다. 시리아는 '아랍의 비스마르크'라는 별명을 지닌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의 아버지)가 1963년부터 37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 뒤 죽으면서 아들에게 권좌를 넘겼으니, 2대에 걸쳐 48년 독재를 펼치는 중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중동 왕국들은 어떠할까.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오만, 모로코 등은 왕이 죽어야 권력자가 바뀐다. 입헌군주국인 쿠웨이트와 요르단을 빼고는 의회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답답한 나라들이다.

이즈음 관심거리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로 어수선한 바레인 왕국이다. 하마드 알 칼리파 국왕이 12년째 다스리는 바레인은 석유수입 덕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지만,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바레인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떠올린다.

14일 사우디 군 병력 1000명과 아랍에미리트(UAE) 경찰 500명이 바레인 시위를 누르려고 파병된 데엔 아랍 독재왕정들의 계산이 담겨있다.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아랍독재왕정들이 힘을 합쳐 누르겠다는 계산이다. 바레인 왕정이 무너진다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왕정국가들도 더 이상 민주화 외침을 못 들은 체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중동 민주화 도미노(domino) 현상이 벌어질 참이다.

미국 중동민주화론의 허구

민주화 도미노? 어디서 많이 들었던 용어다. 생각해보니, 지난날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와 그의 측근참모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내뱉던 말이 아니었던가? 민주주의를 수출하겠다는 명분 아래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면, 그 옆의 반미국가인 시리아나 이란도 민주화로의 체제변혁(regime change)이 이뤄진다는 그럴듯한 논리였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부시의 중동민주화론이 겨눈 창끝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미독재국가들은 아니었다. 이슬람 독재자들 가운데 친미노선을 걷던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들의 독재에 대해선 먼 산 보듯 해왔다.

특히 미국은 의회제도조차 신통치 않은 민주주의의 불모지대인 사우디의 민주화에 대해선 그다지 말이 없다. 미국의 석유 이해관계를 잘 지켜주는 까닭이다. 미국의 시각에선 '독재냐 민주냐' 보다는 중동 석유이권에 관련한 '친미냐 반미냐'가 더 중요하다. 부시나 그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나 여기서는 차이가 없다.

이렇듯 지구촌 민중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대중동정책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를 바라는 것은 정치적 동물인 우리 인간의 극히 당연한 정치적 욕구다. 지구상에서 독재를 반기고 민주화를 싫어하는 정치구성원들은 없다.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미국 워싱턴의 대외정책으로 가면, 요술방망이처럼 제멋대로다.

미국은 국내적으로는 다원주의적인 정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지만, 그것이 지구촌의 다원주의를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라지만, 국외로 가면 미국 자본의 이익이 관철되는 것이 최우선 가치다. '민주화를 통한 제3세계 민중이 얻을 수 있는 이익' 가치는 뒤로 밀린다.

민주화 진통이냐 유가안정이냐

끝으로 생각해볼 대목. 중동 지역의 민주화 불길을 보는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은 간단치 않다. 문제는 민주화가 우선이냐, 경제안정이 우선이냐다. 민주화는 누가 뭐래도 환영할만한 변화이지만, 중동의 불길이 석유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중동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두바이 유가는 1배럴 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경우 중동석유 의존도가 85% 안팎이다. 민주화도 이루고 유가도 안정될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독재정권이 버티면서 민주화 시위에 나선 사람들만 희생시키고, 그런 혼란 속에 석유 메이저와 국제투기자본이 농간을 부려 유가는 유가대로 치솟는다면? 그것은 악몽의 시나리오다.

우리 한국인들은 지난날 군사정권 아래서 억압통치의 사슬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중동 불안정으로 비롯된 유가상승으로 일시적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중동 사람들의 민주화투쟁에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독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이 민주시민의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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