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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으로 북핵 대처? '下手'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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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으로 북핵 대처? '下手'의 논리

[기고] 더디더라도 6자회담으로 북핵 폐기시켜야

주한미군 전술 핵무기 재배치 문제가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게리 세이모어 미 백악관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조정관이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한국이 미국에 전술 핵무기 재배치를 공식 요구한다면 미국은 응할 것"이라고 언급한 지 이틀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공식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역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미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했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 비핵화 구상은 1980년대 말 북한 내 영변 핵시설이 알려지면서 당시 노태우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위한 특단의 조치로 마련되었다. 그 구상의 결과가 한국의 일방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선언(1991.11.8)과 이후 남북한간에 합의로 만들어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12.31 채택, 1992.2.19 발표)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 당국이 직접 핵무기와 농축재처리 시설의 보유금지를 약속한 공식문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핵비확산 문서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의 핵실험과 핵 재처리 시설의 가동 등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명백히 위반했다. 이와 관련, 비엔나협약 제60조 1항에 따르면 일방(북한)이 양국 조약에서 중대한 위반을 한 경우에는 타방 당사국(한국)은 조약 폐기권을 가지게 된다. 물론 조약의 위반이 자동으로 조약의 종료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침해를 당한 타방이 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스스로 판단에 따라 공동선언을 폐기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주장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라고 이미 규정된 공동선언을 우리 정부가 이제는 이를 공식 폐기한다는 선언으로 돌려놓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외교부와 통일부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원자력협력 협정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동 선언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굳이 공개적으로 재확인하는 일련의 발언들이 협상 전략상 유리한 지 아니면 불리한 지를 두고 부처 간 면밀한 검토를 거친 후에 나온 것인지 필자는 유보적이다.

달리 말해, 북한의 핵무기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비핵화 공동선언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 문제 등을 둘러싼 한미 원자력협력협정(2014년 만료)의 개정을 고려한다면 '남과 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제는 무효라고 선언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미국의 뜻과 달리 재처리 능력 보유를 사실상 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비핵화 선언의 무효를 언급하면 미국과의 협상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가기 때문 - 편집자) 이는 마치 우산 장사와 짚신 장사를 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과 같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미 양국 간 정교하게 조율된 이른바 '언어의 공조'이외에는 북한의 핵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셈이다. 미국의 확장 억지(extended deterrence) 공약 역시 불완전한 체제이다.

현행 미국의 대남 핵우산 제공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미국민의 여론을 반영한 의회가 미군의 한반도 개입을 반대할 경우 핵무기,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망 등 광범위한 핵우산 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설령 제공이 된다하더라도 신속하게 연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이른바 자동성(automaticity)이 확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감성적 '핵주권론'을 내세워 전술핵 재배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자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열자고 주창한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에 동조할 가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는 북핵에 노출된 국가안보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핵무기의 대칭성이라는 설익은 논리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는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공갈'은 결코 이길 수 없는 명백한 하책(下策)이다. 2012년을 목표로 한 강성대국의 선전적 허위 역시 진실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북한 권력 상층부는 어쩌면 태풍의 눈에 너무 가깝게 있어 올바른 판단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에 능동적으로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6자회담 성사를 위해 양자간, 다자간 외교적 노력이 어렵지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출처도 모호한 핵주권 논리와 북한 핵무장을 빙자하여 차제에 전술핵 재배치 및 핵무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를 덮어 두는 격이다. 더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주장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힘들고 더디더라도 북한 핵무기를 폐기 시키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다. 이는 북한을 두고 한국이 얼마만큼의 유연성 또는 경직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워싱턴의 대한반도 정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하에서는 불가능했던 국민의 여론이 이제는 대외정책의 힘이 될 수 있다. 한미 쇠고기 촛불 시위가 그랬다. 하지만 핵무장 여론 몰이는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정치도박이다. 이른바 '고위험,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게임이다. 비핵화와 핵무장의 사려 깊은 구분, 이것이야 말로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가 내디뎌야할 운명적 첫 걸음이다. 핵무기 배치는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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