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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모터사이클 동행 그라나도 '친구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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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모터사이클 동행 그라나도 '친구 곁으로'

'남미 여러 나라에 유골 뿌려달라' 유언

남미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친구로 체와 함께 남미 대륙 횡단 여행을 하며 혁명의 꿈을 꿨던 의사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향년 88세.

쿠바 관영언론은 그라나도가 이날 오전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1922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그라나도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의대생 게바라와 1952년 남미 여행을 떠났다.

이들은 '라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오토바이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해 8개월간 남미 대륙을 횡단하며 칠레와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등 곳곳을 둘러봤다.

이 여행에서 게바라와 그라나도는 남미 각국 주민들이 의료 혜택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가난에 찌들어 사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들은 특히 페루의 나병환자 마을에서 깊은 혁명적 영감을 받았다. 이후 그라나도는 나병 환자 치료를 위해 베네수엘라에 머무르기로 하면서 게바라 혼자 여행을 계속했다.

결국 게바라는 여행을 마친 후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가의 길로 나섰다.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 20세기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1960년 게바라의 초청으로 쿠바를 방문했던 그라나도는 이듬해부터 쿠바에 거주하면서 아바나 대학교에서 생화학을 가르쳤다.

▲ 2005년 인터뷰 당시의 그라나도. 체 게바라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재명
그라나도는 지난 2005년 김재명 <프레시안> 기획위원(성공회대 겸임교수)과의 인터뷰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체 게바라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사회주의적 휴머니스트"라며 "1950년대와 60년대 많은 남미의 젊은이들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아랑곳없이 자기들 배만 불리는 친미 독재정권들을 미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바라가 가끔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가끔이 아니라 날마다 생각이 난다. 잠자다 꿈에서도 게바라를 만난다. 그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내 인생을 바꾼 인물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쿠바에서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관련 기사)

게바라와 그라나도의 남미 여행기는 이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됐고, 지난 2004년에는 브라질의 영화감독 월터 살레스가 같은 이름의 영화를 제작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타기도 했다.

그라나도의 시신은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된 뒤 아르헨티나와 쿠바, 베네수엘라 등 남미 각국에 뿌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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