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보안군과 충돌을 빚어 3명이 사망했다고 <BBC> 방송이 보도했다. 시위대는 모하메드 간누치 임시정부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내무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경찰 소속의 보안군은 최루가스와 곤봉, 실탄사격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전날인 25일에도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1명이 사망해, 이틀 간 총 4명이 숨졌다. 특히 25일 시위는 지네 알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최대 규모였다. 주말 동안 튀니스에는 벤 알리 대통령 하야 이후 처음으로 통행금지령까지 내려졌다.
아흐메드 프리아 튀니지 내무장관은 "26일 경찰과의 충돌에서 부상해 병원으로 옮겨진 시위대 수십 명 중 3명이 사망했다"며 "보안군 수십 명도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프리아 장관은 26일에는 100명 이상이, 금요일에는 90명 가량이 체포됐다고 덧붙였다.
튀니지 민주화 시위대는 과도정부가 시민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특히 간누치 총리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간누치 총리는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측근이며, 그를 총리에 임명한 것도 벤 알리였다.
이집트에서도 시위는 이어졌다. 25일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는 시위대가 개혁 일정을 좀더 조속하게 추진할 것과 무바라크가 임명한 아흐메드 사피크 총리는 사임할 것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군 헌병대와 경찰 등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26일 이집트 최고 군사위원회는 전날의 시위 진압에서 헌병대가 곤봉과 테이저 총(전기충격기의 일종)을 사용해 시위대를 타흐리르 광장에서 몰아낸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집트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최고군사위원회는 이날 국민적 합의를 거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고 발표했다. 개헌 작업을 주도한 '헌법 초안 작성 8인 위원회'가 이날 밝힌 개헌안은 대통령 임기를 기존의 6년에서 4년으로 바꾸고 재선은 허용하지만 3회 이상의 연임은 금지했다.
대선 출마 요건도 완화돼 국회에 1석 이상의 의석이 있는 정당이면 후보를 낼 수 있으며, 국회의원 30명이나 시민 3만 명의 추천을 받으면 누구나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계엄령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계엄령을 6개월 이상 지속할 수 없도록 했다.
▲ 25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는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시위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3명이 숨졌다. ⓒAP=연합 |
예멘, 이라크에서도 유혈사태
예멘과 이라크에서는 군·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25일 예멘 남부의 항구도시 아덴에서는 금요기도회를 마친 수만 명이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예멘 당국은 4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지만 국제사면위원회(AI)는 11명 이상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는 또한 예멘 보안군이 시위대의 병원 이송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AI의 중동 담당 임원 필립 루터는 "예멘 보안군이 인명을 경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수도 사나에서도 수천 명이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예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개의 부족인 하쉬드 부족과 바킬 부족이 살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반정부 시위대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예멘 정부는 강경 대응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예멘 현지 텔레비전 방송은 26일 살레 대통령이 군 지휘관들에게 "국가 안보와 통합,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 사용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라크에서도 25일 수도 바그다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최소 9명이 사망했다고 미국 <AP> 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사망자가 15명이라고 전했다.
이라크 정부는 수도 바그다드 중심부의 교통을 통제하고 군인 수천 명을 배치해 치안을 강화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시위에 대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소요'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시위대는 물과 전기 등 기초적인 서비스 부족을 호소하며 정부에 개혁을 요구했으나 정권 교체를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이라크 시위대가 '분노의 날'로 명명한 이날 시위에서는 바그다드 외에도 전국적으로 17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13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 25일 이라크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했고, <연합뉴스>는 1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AP=연합 |
바레인·요르단·오만, 시위대 요구 일부 수용
지난 17일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최소 5명 이상이 사망한 바레인에서는 망명했던 시아파 재야 지도자가 귀국하면서 시위가 확산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바레인과 요르단, 오만 정부는 민심을 달래고자 일부 개각을 단행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바레인 왕정에 의해 테러리스트 지원 단체를 구성한 혐의로 수배돼 영국으로 망명했던 하산 마샤이마는 26일 귀국한 뒤 수도 마나마의 진주광장에서 첫 대중 연설을 갖고 '왕정을 타파하고 민주 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마샤이마는 시위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짜 헌법" 이라며 "이는 전에 정부도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수니파와 시아파를 가리지 말고 다 함께 왕정을 타파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를 마친 시위대는 국왕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으나 우려했던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바레인 국왕은 성난 민심을 달래고자 장관 5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지만 노동장관을 주택장관으로, 석유장관을 에너지장관으로, 외무장관은 보건복지장관으로, 노동차관을 노동장관으로 승진시키는 등 '회전문 개각'에 불과했고 시위대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한편 8주 동안 민주화 시위가 계속된 요르단에서는 6000명이 모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25일 수도 암만에서 벌어졌다. 지난 18일 괴한들의 시위대 습격 사건 등 충돌을 우려한 요르단 경찰은 질서 유지를 위해 경관 3000명을 배치했다. 시위대 피습 사태 후 요르단 정부는 이 공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진상 조사를 위해 조사단을 발족했다.
지난 1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내각을 해산하고, 마루프 바키트 신임 총리로 하는 새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민들은 정치 개혁과 요르단 하원 해산을 요구하며 6주째 금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오만에서도 지난 26일 수백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오만 국왕은 시위 확산을 우려해 새로운 인사를 일부 포함시켜 장관 6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27일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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