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이날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주최로 열린 신년기획토론회에서 "남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한중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중국의 북한 편향이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되면 다시 한국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냉전적 대립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중국의 부상에 아직 불확실성이 있을 때 한중관계의 기초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비가 오기 전에 집을 단속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며 "아직 20년 정도의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흡수통일을 준비하거나 북한을 압박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중국과의 협력이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만약 이런 경우 중국은 북한보다 남한을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토론회는 '2011년,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서 한반도의 길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중국, 비핵화보다 안정이 우선…'6자회담 최선' 고수할 것"
2011년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이 교수는 "중국은 6자회담에 초점을 두고, 6자회담과 북미대화 재개만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남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입장도 이런 것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국면이 대화 기조로 전환될지는 상당 부분 미국에 달려 있다며 "(그러나) 미국이 중국에 대해 대북 영향력을 발휘하라는 식으로 공을 넘긴다면 6자회담과 북미대화의 재개 조건을 두고 지루한 힘겨루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중국의 기본 입장은 남한과의 관계와 북한과의 관계를 병행 발전시킨다는 것과, 한반도의 안정과 비핵화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안정과 비핵화라는 목표가 충돌할 때는 한반도 안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안정이란 현재의 구도를 유지한 가운데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을 뜻한다. 그는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대해 강제적, 강압적인 정책을 택하게 되면 불안정이 고조되고 중국의 리스크(위험)가 커진다"며 "비핵화는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 불안정이라는) 단기적 리스크를 피하면서 비핵화는 장기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중국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문제에서 중국이 너무 북한 편만 든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된 것에 대해 그는 "중국이 남한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겠다는 것은 아니며 한중관계와 북중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입장에서는 남한도 중요한 상대라고 강조하며 "(최근 중국의 행보는) 한미동맹 강화, 대북 압박에 맞춰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며, 북한과도 특별히 더 친밀한 관계라기보다는 점차적으로 1992년 한중수교 이전 수준으로 북중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이 과거에 비해 한반도 정세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로 꼽았다. 그는 "과거보다 중국은 자신의 성장을 의식한 발언을 많이 한다"며 "연평도 사태 후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 회담을 제안한 것도 성사에 대한 기대보다는 한반도 문제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만약 한국이 대중 외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중국의 '북한 편향'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시스 |
홍현익 "키는 한국에…대북압박 고수하면 한미공조도 어려워져"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한국이 정세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홍 위원은 "미중 양국은 이미 입장을 정한 것처럼 보이고, 북한도 '진정성'이 없을지는 몰라도 대화를 하자고 하고 있는 만큼 태도는 분명한 셈"이라며 "우리 정부가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어떤 입장을 보일 것인가가 정국의 열쇠"라고 말했다.
홍 위원은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의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시나리오는 △한국 정부의 전향적 태도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경우, △한국 정부는 원치 않지만 미중 양국이 원하니 6자회담에 '끌려가는' 경우, △한국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 압박을 지속하려 하지만 북미 직접대화가 열릴 경우, △한미 양국이 대북 공조를 진행하면 코너에 몰린 북한이 또다시 무력도발이라는 무리수를 들고 나올 경우 등이다.
그는 "이 중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두 번째 경우"라며 "이 경우 6자회담이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계속 대북 압박을 주장한다면 미국과의 공조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6자회담이 열려도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홍 위원은 북핵 문제가 6자회담이 아닌 북미 대화를 통해 다뤄질 경우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즉 "미국은 북한이 비확산만 확실히 약속하면 사실상의 핵 보유를 용인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국에 심각한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그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한국 정부가 도발을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것은 말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만약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해올 때는 이명박 정부도 (2012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권의 안위가 위험하므로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러나 남북한 군 당국간 핫라인(직통 전화)조차 정지된 상황에서 교전 상황이 확대되는 것을 멈출 방법이 없다"며 "이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상생과 공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결과 흡수에 기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실패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따라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나 부시 행정부나 전임자들에 대한 차별화, 북한에 대한 불신, 최고 지도자와 그 지지층의 냉전적 사고가 대북정책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양 교수는 "북한이 붕괴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하는 전략은 사실상 전략이 없는 것"이라며 "북한 붕괴를 기대하는 흡수통일론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그랜드 바겐이 아니라 '그랜드 플랜'"이라며 점진적 접근을 통해 신뢰관계를 쌓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 1주기와 한미 연합 '키 리졸브' 훈련이 있는 3월과 꽃게철인 5~6월, 연평도 사태와 대청해전이 발생했던 11월을 올해 남북관계의 중대한 고비이자 분수령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