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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미국이 중국에 민주주의 가르칠 처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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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후쿠야마 "미국이 중국에 민주주의 가르칠 처지인가?"

"중국, 권위주의적이지만 '인민에 대한 책임감' 있고 효율적"

사회주의에 대한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연구원이 미국은 민주주의 발전이란 면에서 중국보다 나을 게 없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후쿠야마 연구원은 1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실린 칼럼 '미국 민주주의는 중국을 가르칠 만한 수준이 못 된다'에서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군사적 침략은 반미 감정의 확산을 불러왔을 뿐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은 지나치게 군사화되고 일방주의적이었다"며 현재 미국 정치 시스템은 당면한 현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많은 중국인들이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한 미중 양국의 대처를 지켜보며 중국이 미국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중국의 정치 리더십은 민주적 선거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제 면에서는 나름대로의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나 이란 등 다른 권위주의 국가에 비해 중국 지도자들은 국민에 대한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수준 높은' 정부라고 분석했다.


이는 후쿠야마가 그간 주장해 온 '사회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입장에 비해 다소 전향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미국 민주주의는 중국을 가르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Democracy in America has less than ever to teach China)

21세기의 첫 10년은 서로 다른 정치경제학적 모델간의 명암이 엇갈린 시기였다. 10년 전 '닷컴 버블'이 꺼지기 전 미국은 정말 잘 나갔다. 비록 언제나 사랑받지는 않았지만 미국식 민주주의는 세계 도처에서 모방됐고 미국의 기술이 세계를 휩쓸었으며 미국식 자본주의는 미래의 흐름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도덕적 자본'을 야금야금 낭비했다. 이라크 전쟁 등 군사적 침략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악평을 불러왔고 월스트리트의 금융 위기가 발발함에 따라 시장은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미국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반면 중국은 상승세다. 중국인들은 이번 금융 위기를 통해 중국식 체제가 나름대로 우수함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며 이는 미국식 자유주의가 더 이상 지배적인 원리가 아니게 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이번 주로 예정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는 이런 시점에서 이뤄진다. 국가 주도 자본주의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고 과거 중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가졌던 존경은 빛이 바랬다. 따라서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보다 중국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중국식 모델'이란 무엇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의 모델을 러시아, 이란, 싱가포르 등과 함께 묶어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분류한다. 하지만 중국 모델은 더 특수한 이 나라 고유의 것(sui generis)이다. 중국의 특수한 통치 체계는 뭐라고 묘사하기 힘들며, 모방하기는 더 힘들다. 이것은 중국식 체제가 '수출'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식 정치 체제의 가장 큰 강점은 크고 복잡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신속한 결정의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반시설(인트라) 분야에서는 중국의 강점이 뚜렷하다. 중국은 성장하는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항, 댐, 고속철도, 수도와 전기 시스템을 빠르게 갖추고 있다.

이는 인도와 대조적이다. 인도에서 모든 새로운 투자는 노동조합, 로비단체, 농민 조합과 법정에 의해 방해받는다. 인도는 법치주의‧민주주의 국가이며 일반 국민들도 정부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 중국의 통치자들은 거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 100만 주민들을 이주시켜 삼협댐을 건설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수준은 러시아, 이란과 다른 권위주의 체제보다 높은 편이다. 엄밀히 말해 이는 중국의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인민에 대해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책임감은 공식적으로 절차화된 것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권위는 법이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하지만 통치자들은 여론의 비판을 제한하면서도 인민들의 불만을 파악하려 하고 이로 인해 정책을 수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도시 중산층과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 엘리트들의 목소리에 가장 민감하긴 하지만 또한 하급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력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에도 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때때로 중국 정부는 '여론'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과도하게 대응(overreact)하기도 하는데, 이는 선거나 자유 언론(free media) 등 제도적으로 여론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일본에 나포된 어선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인민들의 폭넓은 반일 감정을 고려해 지나치게 강경하게 대응했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1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이 민주주의 정치제도라는 면에서 중국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 <FT> 홈페이지 화면캡처
미국인들은 중국이 더 부유해지고 강해져 미국에 대한 전략적‧정치적 위협이 되기 전에 이 나라가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이루기를 희망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엘리트들과 도시 중산층의 요구를 만족시켜는 법을 알고 있다. 이들 엘리트들은 대중주의(포퓰리즘)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이는 왜 중국에서 다당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거의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중국의 엘리트들은 대중주의적 정책을 편 총리(탁신)의 지지자들이 당국과 충돌해 폭력사태를 빚은 태국의 사례를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자신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지만 최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국가는 부유해졌지만 많은 농민들과 노동자들은 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반면 지나치게 많은 부를 독점하는 사람들도 있고 중국 사회에는 부패가 널리 스며들고 있다. 몇몇 지역의 사례를 보면, 당국이 투자자들과 결탁해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농민들의 억눌린 분노에 불을 붙여 최근 몇 년간 수천 명이 폭력 시위를 통해 항의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은 대중의 압력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00년 간 중국이 이룬 위대한 역사적 성취는 '높은 수준'의 중앙 집권적 정부 형태이며 이는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점이다. 오늘날 중국은 소비를 촉진하고 사회 갈등을 막기 위해 그간 소외당했던 집단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조치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하향식(top-down) 체제는 결국 풀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같은 상향식 체제만이 효율적이지만 이것은 (중국에서) 단시간 내에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경제 상황이 악화되거나, 지금보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가 정권을 잡는다면 중국 체제의 취약한 정당성은 공공연한 도전을 받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역경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하지만 민주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모델이 들어선 미국도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은 지나치게 군사화되고 일방주의적이었으며 반미주의를 확산시켜 문제를 오히려 키우기만 했다. 경제 면에서도 레이건주의(레이거노믹스. 규제 완화와 감세 등의 공급자 중심 경제정책)는 너무 오래 지속됐고 이로 인해 사려깊지 못한 감세정책과 부적절한 금융 규제로 재정 부담만 가중됐다.

그나마 이런 문제는 나은 편이다. 미국식 모델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풀릴 기미가 없다. 중국은 현안을 효율적으로 다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미국은 중앙집권화된 정부를 불신하는 정치 문화에 기반을 둔 헌법적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와 사적 활동의 영역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재는 극단주의화됐으며(polarised) 이데올로기적으로 굳어져 있다.

미국식 모델은 현재 이 나라가 직면한 장기간의 재정 문제를 다루는데 별 소용이 없다. 미국 정치 시스템은 중국은 갖지 못한 민주적 정통성은 있지만 지금 분열돼 있고 통치할 수 능력이 없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서 시위대는 자신들의 주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모방해 만들어 세웠다. 미래에도 이같이 미국이 중국 민주화의 모델이 될지는 미국이 지금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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