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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DJ·盧 고인 됐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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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DJ·盧 고인 됐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위키리크스 전문…현정은 "北 보다 南에 장애물 있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9년 8월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서명한 남측의 두 대통령은 고인이 됐지만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2000년 6.15 선언과 2007년 10.4 선언의 정신을 받아들이길 원한다면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정보 공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2009년 8월 28일자 외교전문에 나와 있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는 지난 1일 위키리크스를 통해 입수한 이 전문을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게재했다. (☞바로가기)

이 전문은 현 회장이 서울로 돌아온 후 8월 25일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조찬을 하며 했던 말을 스티븐슨 대사가 정리해 미 국무부에 보고한 것이다. 현 회장은 8월 16일 김 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추석 이산가족 상봉, 북측 지역 통행·체류 정상화, 백두산 관광 개시 등 5개항에 합의한 바 있다.

▲ 2009년 8월 16일 김정일 위원장과 현정은 회장이 만났을 당시의 사진 ⓒ연합뉴스

총 10개항으로 이뤄진 전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현 장관에게 남북관계가 어려워진 이유는 신뢰의 부족 때문이고, 남북간에는 '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별세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을 수차례 언급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대북 협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이전 정부의 관리들을 왜 중용하지 않느냐?'고 물은 뒤 남북관계에서 통일부가 밀려나고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통상부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groused)

또한 그는 이명박 정부가 왜 개성공단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남측의 대기업들은 개성공단에 참여하지 않고 개성공단 확장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현 회장에게 물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북한의 집체극 '아리랑'과 관련해, 미국인들이 미사일 발사 부분을 싫어한다고 들어서 "미국인들의 입맞에 맞게" 고쳤고, 군인들이 많이 출연하는 장면을 남한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조언을 듣고 학생들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과 일본에 관한 자신의 견해도 피력했다. 그는 현재의 북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며, 중국에 대해서는 "믿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 '현정은 회장은 북한보다 남한에 장애물이 더 많다고 불평했다'는 내용의 외교전문 ⓒ안치용

외교전문에는 현정은 회장의 말도 그대로 들어 있다. 전문에 따르면, 현 회장은 거의 파산 상태에 빠진 금강산 관광 사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고 스티븐스 대사에게 설명한 뒤, 북한보다 남한에 (관광 재개를 막는) 장애물이 더 많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현 회장은 또 남북 당국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방북에서 합의한 5개항의 실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탄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현 회장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김 위원장의 불만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공단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김 위원장을 설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측 대기업들이 개성공단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에 대해 현 회장은 '많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사업을 하고 있는데 미국과 북한의 정치적 분위기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북미 양국과 동시에 사업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답했다.

일본 문제와 관련해 현 회장은 스티븐스 대사에게 '김 위원장을 2년 전 만났을 때는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배상금을 받고 관계를 개선할지에 대해 관심을 보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화해 제스처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이 한때 평양 거리에서 일제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내렸었다는 말을 다른 북한 관리로부터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 말미에는 현 회장이 김양건 아태평화위원장을 별도로 만나 나눈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김양건 위원장은 현 회장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남쪽에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은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것을 미국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건 위원장은 또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좋은 사업가들이 협력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며 '민족'을 자주 언급했다. 그는 또 그해 7월 30일 북한에 예인된 어부들은 곧 송환될 것이라며 송환 협상을 할 때 남측이 식량 지원을 제의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했다. 하지만 그는 남한 당국에는 평양의 요청이 아니라 현 회장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전문에 이날 현 회장과의 만남을 평가하는 말을 남겼다. 그는 "김정일과 그의 참모가 한민족의 단결을 강조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강조했다는 현 회장의 설명은 이명박 대통령이 (8월) 23일 북한 대표단(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 조의방문단. 김양건이 대표단장을 맡았음)과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 들었다는 말과 일치한다. 이 대통령에 따르면 북한 대표단은 '우리민족끼리' 함께 이해야 함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스티븐스 대사는 외교전문에서 현 회장이 전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별도의 전문을 참조하라고 밝혔다. 향후 이와 관련한 외교전문도 공개될지 주목된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는 지난달 31일에도 미 대사관의 2009년 7월 24일자 전문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던 지난해 7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북한이 붕괴할 경우 한국이 흡수통일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북한 지역에 일정 기간 동안 자치정부를 허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 씨는 위키리크스의 전문 25만 건 전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노르웨이 신문 <아프텐포스텐>(Aftenposten>이 이 전문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그룹은 3일 외교전문의 이같은 내용을 부인했다. 현대그룹은 "당시 현 회장은 스티븐슨 대사를 방문해 결코 우리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으며, 당시 북측이 다소 유화적이고 우리 정부가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했을 뿐"이라며 "통역상 오류로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이어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김양건 위원장이 '현 회장이 정부에 식량 지원을 제의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김양건 부장이 아니라 당시 원동연 아태평화위원회 실장이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이처럼 당시 스티븐슨 대사에게 전한 대화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돼 있는 등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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