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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매각 무산, 차라리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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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대건설 매각 무산, 차라리 잘됐다

[분석]'국민경제 기여 극대화' 원칙 살린 새 방식 필요

국내 최대 건설업체 현대건설 매각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불과 한달만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17일 현대건설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현대건설의 우선협상자 자격을 박탈하겠다며 22일 열리는 전체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몇 조원 대의 대형 M&A를 두고 이처럼 채권단이 오락가락하는 일처리를 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태이며, 국내 M&A 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19일 일부 매체들은 현대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자격이 박탈되기를 기다렸다는듯 채권단은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그것도 올해 연말 내에 매듭을 지겠다는 것이 채권단 내부 관계자들의 의향이라고 분위기를 띄우고 나섰다는 점이다.

▲ 3조원대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낸 현대건설. 채권단과 재벌그룹들의 '머니게임'에 휘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수자격 미달 후보들의 먹잇감된 국민기업

정작 지적해야 것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처음부터 인수 자격 미달 후보들과 자금 회수에 혈안이 된 채권단의 '예정된 파행'이라는 점이다.

채권단은 각자의 특수한 이해관계로 현대건설 인수를 강력하게 원하는 두 인수후보들의 속사정을 이용했다. 채권단은 두 후보들의 싸움을 부추겨 가장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데만 골몰했으나, 두 후보들이 워낙 처음부터 자격미달이라 뒤탈이 난 것이다.

게다가 현대건설은 지난 2001년 부도가 나 무려 3조원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국민기업'이다. 또한 두 인수후보는 모두 범현대가에 속해 현대건설 부실화에 책임이 있어 원래 입찰 자격도 제한된 업체들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현대건설 매각은 '매각대금 극대화'가 아니라, '국민경제 기여 극대화'가 최우선의 원칙으로 추진되었어야 했다. 이미 이런 지적은 지난 13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공적자금 투입 기업 매각의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기업 매각 기준으로 내세우는 '매각대금 극대화'는 공적자금의 성격에 반한다. 공적자금은 기업의 생산활동 중단으로 국민경제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입하는데, 정상화된 기업을 고가에 매각하면 다시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는 것.

국회입법조사처 "현행 현대건설 매각 방식, 국민 부담만 지워"

특히 보고서는 그동안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가 매각 수단으로 활용한 결과 인수회사가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소위 '승자의 저주'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번 현대건설 매각도 결국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현대 일가로 돌아갔고 이득은 채권단이 누리게 됐을 뿐, 혈세를 투입한 국민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현대건설 매각 방식은 국민에게 혜택은커녕 국민에게 부담만 지우는 것이라는 비판도 면할 수 없다. 입법조사처도 대우건설 매각 사례에서 보듯 인수기업이 인수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자산을 매각하는 등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에 관련해 '국민경제 기여 극대화'라는 원칙을 담은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법적 미비의 문제점은 현대건설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채권단의 '매각대금 극대화'와 막대한 인수가격을 제시하는 재벌들간의 진흙탕 거래가 '물귀신 작전'으로 무산된 것이다.

'국민경제 기여 극대화'의 매각 원칙을 염두에 둔다면,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두 인수후보는 왜 처음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에는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았어야 했는지 알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현대건설 인수에 혈안이 되어 시장 적정가격이라는 3조5000억원짜리 매물에 대해 무려 1조 5000억원 넘게 더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 현대그룹은 인수가격을 얼마든지 써내서라도 현대건설을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나머지 2조 100억원을 더 얹은 가격(5조5100억원)을 제시해, 1조6000억원을 더 내겠다는 현대차의 인수가격(5조1000억원)을 눌렀다.

문제는 시장에서는 두 후보 모두 자기 돈으로 이런 인수대금을 낼 능력이 있거나 낼 의지가 있어서 엄청난 인수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은행(25%), 정책금융공사(22.5%), 우리은행(21.4%) 등 3개 기관으로 구성된 현대건설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이런 대형매물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입찰마감 바로 다음날인 지난 11월16일 "엄정하고 투명한 심사'를 했다면서 발표했다.

그리고 현대그룹의 자금 조달 출처에 대해 채권단 내에서도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11월29일 외환은행이채권단 내부 조율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으로 '매각주관사' 자격으로 현대그룹과 주식매매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책금융공사가 현대그룹의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을 해소할 확실환 소명자료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운영위 입장 전체가 MOU 해지가 불가피하다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왜 시장은 현대건설 매각 무산을 환영하나

이러한 채권단의 '오락가락 행보'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그룹을 동정하는 분위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환영하는 분위기가 여실했다.

그 이유는 제3자가 보기에도 현대그룹의 자금 조달 출처에 의혹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설혹 자금 조달이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승자의 저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선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으로부터 무담보.무보증으로 빌렸다는 1조2000억원의 계약 주체가 불과 33억원 자산 규모의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이라는 점에서, 이 자금은 오직 인수 자격을 따내기 위한 초단기자금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현대그룹은 자기 자금은 거의 없이 대부분이 사실상 차입금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건설의 알짜자산을 매각하거나 현대건설과 함께 동반부실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서 팽배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도 자격에 의문이 제기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건설의 부도를 초래한 책임에서 현대차그룹도 자유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자동차 시장이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에서 자동차와 연관사업에 전력을 다해도 모자를 판에 왜 건설업체를 과도한 가격에 인수하려고 나섰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금 조달 능력은 충분하다고 해도 그룹의 주력업종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현대건설을 시장 가격보다 1조6000억원 이상 비싸게 산다는 것은 그룹 전체에 부담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인수 후보로 현대그룹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새 후보가 될 가능성이 거론된 현대차 주가는 하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대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려는 배경에는 그룹 지배구조와 관련된 다른 목적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현대그룹과 현대차 모두에게 해당한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옛 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갖고 있으며 현대상선이 대부분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금융권 우호 지분을 포함해 현대상선 지분 40.76%를 확보하고 있고, 현대차와 함께 우호 관계인 현대중공업, KCC 등이 30.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 8%가 현대차로 넘어가면 그룹 경영권이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된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건설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것은 명분에 불과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대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데에는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엠코와 합병시켜 정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확대하고 경영권 승계 자금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이 박탈되거나 본계약이 무산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면, 매각 작업을 원점으로 되돌려 매각방식 자체를 '국민경제 기여 극대화'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채권단 역시 곧바로 현대차그룹을 예비협상대상자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변경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이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려면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어차피 매각 절차를 중단하든 현대차의 손을 들어주든 소송 사태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현대건설 매각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할 수 있다면, 국민주나 독자생존 등 다양한 대안들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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