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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우백> <제국의 슬픔>의 저자 찰머스 존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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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우백> <제국의 슬픔>의 저자 찰머스 존슨 별세

"수정주의 학파의 대부… 미 대외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

<블로우백> <제국의 슬픔> <네메시스> 등 3부작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통렬한 비판을 가했던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찰머스 존슨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가 20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타계했다. 향년 79세.

존슨 교수는 지난 1982년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이란 저서를 통해 일본의 경제 발전은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모델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 '발전국가'의 개념을 처음 정립했으며 이를 통해 학문적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까지 일본의 경제발전이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온 로버트 스칼라피노 등 이른바 지일파 지식인들(국화클럽으로 알려진)의 통념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후 존슨 교수는 '수정주의 학파'의 대부로 불렸다.

발전국가란 국가가 산업 전략을 수립하고 경제에 개입해 성장을 견인한다는 개념이다. 존슨 교수는 이 저서에서 일본 통산성(MITI)이 경제발전의 '사령탑' 구실을 했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기획원'이 이런 역할을 했다.

이후 존슨 교수는 19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 3명이 12살짜리 일본 소녀를 강간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미 제국주의에 대한 고발 작업에 나선다.

그가 2000년에 펴낸 <블로우백: 미 제국의 대가와 결과>는 CIA를 통한 은밀한 군사작전이 결국에는 미국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언한 저서로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이후 그는 <제국의 슬픔>(2004년) <네메시스>(2006년) 등을 통해 미국의 군사지배를 고발하면서 더이상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적 행태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해왔다. 그리고 지난 8월 마지막 저서 <제국을 해체하라: 미국의 마지막 희망)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국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슨 교수는 1931년 애리조나 출생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U.C. Berkeley)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농민민족주의와 공산당의 힘>으로 중국의 공산주의가 계급투쟁적이기보다는 민족주의임을 밝힌 것이다. 그는 학부 졸업 후인 1953년 한국전쟁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으며 이때부터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냉전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베트남 전쟁에 찬성하는 등 '냉전의 전사'였으나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의 군사주의 팽창 전략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

▲ 고(故) 찰머스 존슨 교수 ⓒ커먼드림스(www.commondreams.org)

"날 죽은 셈 치게나"

스티브 클레몬스 미국 '뉴아메리카재단' 연구원은 그가 운영하는 정치 블로그 '워싱턴 노트'에 존슨 교수의 타계 소식을 알리며 그를 추모했다.

클레몬스는 "존슨 교수는 '발전국가'의 개념을 창안했다"며 특히 중국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현재의 국제 정세에서 그의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존슨 교수가 9.11 테러 전에 <블로우백>의 집필을 마쳤는데, 9.11 테러가 나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출판 업자들은 독자들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늘날 '국가자본주의'는 세계 경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새롭고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존슨 교수가 이 영역을 창시했고 다른 국가들의 발전 전략은 소위 '미국식 모델'이라 불리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존슨 교수의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은 뉴스위크의 로버트 네프가 그에게 '수정주의 학파의 대부'라는 별명을 붙여 주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중국의 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존슨 교수의 '발전국가'에 대한 저작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는 중국에서의 경제발전은 공산주의나 계급투쟁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민족주의가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베트남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클레몬스는 "존슨 교수는 일본과 같은 국가들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 세계적인 군사 네트워크를 유지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은 더 이상 아무런 논리도 없다고 말했다"며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일찍이 경고한 바 있는 '군산복합체'가 존슨 교수의 마음 속에, 그의 저작 속에 자주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한 클레몬스는 존슨 교수와의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며 그를 추억하기도 했다.

내가 존슨 교수를 방문했을 때, 존슨 교수는 아내인 샤일라와 일본 통산성과 재무성의 약자인 'MITI'와 'MOF'라는 이름의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국제관계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라는 비정부기구가-외교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를 펴내고 있는-보수적인 대외정책의 박수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분개해 이 단체에 전화를 걸어 회원 탈퇴를 요구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죄송하지만 평생 가입이 원칙이라 탈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존슨 교수는 답했다. "그럼 나를 죽은 셈 치게나."

그러나 최소한 나는 그를 '죽은 셈 칠' 수 없다. 그는 이 시대의 지적 거인이었다. 앞으로도 한 세기 동안 그와 그의 저작은 계속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아디오스,' 존슨!

존슨 교수의 친구이며 그의 책 편집을 맡기도 한 미국 역사학자 톰 엥겔하트도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톰디스패치'를 통해 존슨 교수의 부고를 전했다.

엥겔하트는 "그는 가장 뛰어난 저자 중의 하나였으며 그의 글을 편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고 회고하며 "그가 쓴 글의 한 단어 한 단어가 나에게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엥겔하트는 "한때 냉전의 전사였던 그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가 됐다"며 "그는 우리에게 '이 파산한 미국이 과연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보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고인의 업적을 평가했다.

그는 언제나 나와 전화 통화를 끊을 때 '아디오스'('안녕히'라는 뜻의 스페인어 인사)라고 말하곤 했다. 아디오스.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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