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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美 제국, 이젠 '정상국가'로 돌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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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美 제국, 이젠 '정상국가'로 돌아갈 때"

'美 제국' 3부작의 찰머스 존슨 "자발적 해체 안 하면 몰락"

저명한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인 찰머스 존슨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가 최근 신간 <제국을 해체하라: 미국의 마지막 최선의 희망>(Dismantling the Empire:America's Last Best Hope)를 펴냈다.

이 책은 냉전 이후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펼쳤던 대외정책이 어떤 역풍으로 돌아올지를 경고한 <블로우백>(1999), 미국이 어떻게 일방주의와 군국주의가 횡행하는 제국이 되었는가를 밝힌 <제국의 슬픔>(2004), <네메시스>(2006) 등 '미 제국 프로젝트' 3부작에 이은 최신작으로 향후 미국의 진로에 대한 노지식인의 호소를 담았다.


찰머스 존슨은 미국이 전 세계 수백 곳에서 군사 기지를 운영하는 등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예산을 쓰면 머지않아 비참한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하루 빨리 전쟁이나 군사 개입에서 손을 떼고 점점 피폐해지는 미국 경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호소한다.

▲ 찰머스 존슨의 신간 <제국의 해체> 표지.
미국의 살 길은 '제국의 해체'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미국 최후이자 최선의 희망'(America's last best hope)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찰머스 존슨은 이 책의 출간에 즈음해 지난 17일 진보적 정치 웹진 <톰 디스패치>(http://www.tomdispatch.com)에 '8월의 포성'(The Guns of August: Lowering the Flag on the American Century)라는 글을 발표했다.

<제국을 해체하라>의 예고편 격인 이 글에서 존슨 교수는 미국이 점점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미래에 대해 분석하는 일에 흥미를 잃을까 두렵다고 고백한다.

대신 그는 미국의 해외 군사 기지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행위들을 감시하는 단체나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군 내부 고발자들, 제국주의를 파헤치는 연구가들과 저널리스트들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한다. 자신의 경고를 좀처럼 듣지 않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체념과, 그럼에도 강력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희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자신의 역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듯한 이 글은 올해 79세인 찰머스 존슨의 '고별사'로도 읽히며,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가 평생을 바쳐 해 온 경고에 귀를 기울일지, 무시할지는 미국의 유권자들과 세계의 독자가 판단할 차례다. 다음은 <톰 디스패치>에 올라온 찰머스 존슨의 칼럼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1962년 역사학자 바바라 터크먼은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다룬 <8월의 포성>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터크먼은 발간 시점을 기준으로 거의 50년 전 과거에 일어난 일들, 전쟁 발발 당시의 관계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문서와 정보에 주목했다. 그 문서와 정보들은 세계 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상황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2010년 8월 현재, 미국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라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선 여전히 총구에 불을 뿜고 있다. 이란과 북한에 제재와 위협을 가하고 있고, 폭탄과 미사일이 장착된 무인정찰기와 최첨단 무기들을 파키스탄 국경지대나 예멘, 그리고 어딘가로 끝없이 보내고 있다. '표적 살인'이 임무라고 하지만 실은 암살이다. 또한 병력을 지원할 기본적인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전 세계 수많은 곳에 여전히 미군을 주둔시키려고 한다. 미국은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가?

나는 2060년 역사학자들이 50년 전을 돌아보는 <8월의 포성>을 쓴다면 무엇을 이야기할지 궁금하다. 전운이 감돈다는 것은 인간이 먼 장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년 앞에 놓인 안개낀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그리고 제국의의적 성격을 버리지 않는 미국의 미래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과감하게 예상해 보겠다.

먼저 질문을 좀 해보자. 미국이 만약 전 세계에 배치한 크고 작은 수백 개의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결정한다면 어떤 피해가 닥칠까? 만일 우리가 진짜로 우리의 제국을 부수고 집으로 돌아온다면? 징기스칸 같은 유목민들이 우리를 덮칠까? 글쎄, 과연 그럴까. 육상으로든 해상으로든 누군가 우리를 침공할 가능성은 없다.

9.11 테러와 같은 공격이 늘어날까?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해외 미군이 줄어들면 9.11과 같은 공격 발생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침략하고 때로는 점령하고, 정의와 민주주의의 길까지 닦아주려고 했던 많은 나라들은 모두 실패한 국가가 될까? 아마 몇 나라는 그렇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실패한 국가가 되는 걸 막는 일은 유엔이나 해당 국가 주변국들이 해야 할 몫이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은 결국 미국이 아니라 주변국인 베트남에 의해 붕괴됐던 사실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EPA=연합뉴스

침몰하는 제국

미국이 갖는 공포는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 공포는 만일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도미노가 쓰러지듯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공산화될 것이라는 1970년대의 끔찍한 예언과 상당히 비슷하다.

미국이 세계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걱정은 미국이 갖는 커다란 두려움이자 과장된 자부심이 반영된 것인데, 미국의 통제력 상실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이 모든 걸 포기한다면 정녕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 혹은 자칭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미국은 크고 강한 나라로 남을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지역에서 마약을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는 문제나 이민 문제, 의료보험 비용 급등, 취약한 교육 시스템, 인구의 고령화, 산업기반시설의 노후화, 끝나지 않는 경기침체… 이 모든 문제 중 어떤 것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부(富)를 군대나 무기, 전쟁, 전 세계의 군사 기지, 다른 나라의 하찮은 독재자들한테 주는 뇌물에 써대는 한 이 문제들은 비중있게 다뤄지거나 성공적으로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굳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중동 국가들은 계속 석유를 수출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중동의 지하자원을 지금보다 더욱 많이 사들인다면 아마 미국은 지하자원을 더 잘 보존하려 할 것이고, 또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에 더 빨리 착수하게 될 것이다.

부상하는 강국

한편 미국이란 제국을 해체할지 말지와 상관없이 중국은 차기 초강대국의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 (아직도 그러지 못했다면) 중국 역시 국내 문제가 많은데, 미국이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제들이 많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는 활성화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과의 교역에서 2270억 달러의 적자를 낸 미국과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또한 중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 나라를 경제 대국이자 강력한 국력을 가진 국가로 개발하기로 작정한 상태다.

중국과 일본 연구자로서 학문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50년 전, 나는 이 두 나라의 근대사에 매혹됐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책은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일을 다루고 있는데, 그 사건을 통해 마오쩌둥(毛澤東)과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잡았다. 해외침략자들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 덕분이었다.

외세에 대한 저항에서 두각을 나타낸 세력이 정권을 잡은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도 나타났으며 1991년 구(舊) 소련 몰락 이후엔 동유럽 전체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확실히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아마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나는 일시적으로 중국 연구에 흥미를 잃었다. 문화대혁명과 같은 내부적 격변이 중국을 어디로 이끌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연구로 돌아갔다. 일본은 2차 대전의 그늘을 벗어나 놀라운 회복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가 주도하면서도 (사회주의적인) 소유는 하지 않는 경제 발전 방식 덕분이었다. 소위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에서 채택하는 이러한 경제 발전은 소련식의 통제 경제나 미국식의 자유방임적 접근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일본은 경제를 성공적으로 성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관료제로 인해 장기 디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편 소련이 해체된 뒤 러시아는 곧바로 미국의 경제 발전 비전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러시아 경제는 자신들의 배만 불리기 위해 통제 경제를 해체한 탐욕스런 올리가르히(러시아의 과두지배 세력)에 장악당했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과 그의 후계자들은 일본과 러시아의 사태 전개를 보면서 교훈을 얻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두 나라의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와 사회를 위해 효과적인 면만을 받아들였다. 만약 앞으로도 합리적인 리더십이 계속되고, 경제나 다른 면에서 운이 좀 따라주기만 한다면 중국은 분명 미국이나 이웃 국가들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도 계속 번영할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대만 문제를 두고 감정적 골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길 원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지금의 중국이 아닌 전혀 다른 중국을 가정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미국과 전쟁을 하는 길은 중국이 현재 마련해 놓은 발전 경로와 전혀 다른 방향이다.

▲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 당시 선전 시에 걸린 그의 초상화. ⓒ로이터=뉴시스

'미국의 세기' 깃발을 내리려면

35년 후면 미국이 최고 권력 국가(top dog)로 있던 세기(1945~2045)는 막을 내릴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미국의 몰락은 규모가 큰 대영제국의 몰락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산업 기반시설의 노후화, 국제적 영향력의 하락, 무너져가는 경제 등을 목도하고 있다.

물론 할리우드의 세기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계속될 것이다. 제국이 몰락하더라도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이 계속 어떤 사조를 만들어내고 이끌 수는 있을 것이다. 영국도 1960년대까지 비틀즈나 트위기같은 문화 아이콘을 만들어 냈다. 관광객들 역시 자연 경관을 보기 위해 계속 미국을 찾을 것이고, 그나마 덜 초라한 도시들에도 방문할 것이다. (달러화가 싸져서) 달러 환율이 관광객들에게 유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 기지로 이뤄진 세계 제국을 해체하고, 생산적인 일을 위해 경제를 재조정하고, 우리 군대를 우리 영토를 지키는 일이나 유엔의 명령을 따르는 일에만 둔다면 어떨까. 미국이 산업기반시설, 저축, 의료보험에 다시 투자하기 시작한다면 미국을 다시 생산적인 나라, 정상 국가(normal nation)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안개 속 미래를 들여다봤지만 미국이 '자발적으로' 제국을 해체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게 미군이 결국 해외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결국 쫓겨난다는 얘기다)

미국은 홀로 표류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표류하듯. 높은 실업률이 수십년간 계속될 거라는 전망은 요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흔한 얘기다. 거기에다 저조한 투자와 위축된 소비까지 더하면 나는 T. S. 엘리엇의 시구와 같은 상황이 올까 두려워 진다. "이것이 세상이 끝나는 방식. 그것은 쾅 하는 포성이 아니라 훌쩍임과 같이 온다.(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나는 활동가가 아니라 정치 분석가다. 그게 내가 잠시나마 중앙정보국(CIA) 최고 정보 분석 분야에서 컨설턴트 노릇을 했던 이유이자, 동시에 현재 CIA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CIA는 자신들의 정보 수집 활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오점을 남기면서 존재 이유를 잃었을 뿐 아니라, 사람을 암살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처넣어도 당사자들은 면책되는 비밀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나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중국의 리더십이 잘못된 길로 향하는 걸 목격하면서 그 나라에 흥미를 잃었다. 그와 마찬가지 이유로 내가 향후 몇 년간 미국의 미래에 대해 분석하는 것에 흥미를 잃을까봐 두렵다.

나는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젊은 저널리스트들과, 언젠가 역사가들이 우리가 언제 어떻게 타락했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는 학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특히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출신 군인으로 퇴역한 뒤 교에서 재직하며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한 앤드류 바세비치 교수나 국방부의 군사 분석가로 재직 중에 예산을 무시한 국방부의 무기 구입을 비판했던 척 스피니와 같이 (자신이 비판하는 집단에 속해있던) 내부자들에게서 나오는 통찰력에 탄복한다.

또 나는 미 군사학교 감시단체(SOA WATCH)의 신부와 수녀들처럼 어떤 일에 항의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이나 돈, 자유와 목숨을 잃을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경외한다. 이들은 남미에 있는 미군 기지의 존재와 거기서 벌어지는 잘못된 행위들에 대해 주시해야 한다고 정기적으로 피켓을 들고 나와 외친다.

9만 2000건에 이르는 아프간 전쟁 관련 비밀문서를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브래들리 매닝 일병에게서도 감명을 받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한 다니엘 엘스버그는 분명 놀라고 있을 것이다. 과거 베트남전의 실체를 담은 이 문서를 유출한 엘스버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는데, 거기에 대한 응답이 나오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지난 20년 동안 내게 주어진 역할은 '카산드라'였다. 카산드라는 예언자다. 그녀는 신에게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선사받았지만, 누구도 그녀를 믿지 않는 저주도 동시에 받았다. 나는 미국에 대해 좀 더 낙관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8월의 포성'은 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혀 왔다. 그러지 않은 날은 없었다.

▲ 아프간 전쟁 군사기밀 유출자인 브래들리 매닝 일병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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