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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천안함 사건,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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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월러스틴 "천안함 사건,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

백낙청·이수훈과 대담…"한국-일본-대만, 10년 내 핵무장할 것"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 예일대 석좌교수가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월러스틴 교수는 "2020년이 되면 한국도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며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 될 것"이라고 10일 말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이날 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단이 주최한 제2회 '석학들의 대화'에서 "미국의 패권이 퇴조하게 되면 한국과 일본, 대만 등도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월러스틴 교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나타나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 안정적으로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담에 참여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월러스틴 교수의 저서를 근거로 이런 견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 대담은 월러스틴 교수와 백 교수,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이 참여했고, 주최측인 통일인문학 연구단의 단장 김성민 건대 철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아 '급변하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월러스틴 교수는 또한 화해·협력을 통한 한반도 통일 방안의 전망 역시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어쨌든 통일은 되겠지만 어떻게 될 것인가가 문제"라며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노력은 쉬운 문제부터 해결한다는 것이지만 성과가 충분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대개 외부적인 조건에서 변화가 있는 경우"라며 남북 양측의 노력보다 중국·일본 등과의 관계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백 교수와 이 소장은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9.19 공동성명 등 현재까지도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천안함 사건을 미국의 9.11 테러나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비교하며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천안함 사건은 그렇게 많은 지적 에너지를 소모할 일은 아니라며 "천안함은 어떤 의미로는 잊혀지게 될 것이고, 지금은 이 사건에 열정을 갖는 사람이 많지만 5세 어린이가 20세가 됐을 때 그 청년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는 이날 오후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렸다. 다음은 이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10일 건국대 '석학들의 대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달러가 기축통화 되지 못하는 시점 올 것"

김성민(사회자) : 한국에서는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1970년대 초 월러스틴 교수는 미국 패권의 세계체제인 '팍스 아메리카나'가 다중심 체계로 바뀔 것이라면서, 미국 헤게모니의 퇴조를 주장한 바 있다. 최근 환율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약간 밀리는 것 같은데 이 역시 그런 현상으로 보나?

월러스틴 : 환율은 현재 굉장히 큰 문제다. 환율은 미국이 갖고 있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익이며 세계 패권의 마지막 잔여물이다. 미국은 우위를 보전하고 싶겠지만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의 이런 자세는 자국의 이익에 복무하지 못한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환율 문제에 내재된 것은 심각한 수준의 보호주의이고 어떤 나라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므로 환율 문제에는 해법이 없다고 본다.

또 지난 30년 간 추세에서 달러 가치는 하락해 왔다. 이에 따라 (각국은 달러에 대한) 재무정책을 중단할 시점이 올 것이고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통화 시장에서) 다극체제가 올 것이고 세계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백낙청 : 동의한다. 한국 정부는 G20에서 멋있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당장의 상황에 비춰도 어려운 일이고 월러스틴 교수가 말한 장기적 경향에 비춰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수훈 : '환율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중관계의 문제로 좁혀질 수 있지 않나 한다. 미국은 향후 5년 동안 위안화를 5%정도 평가절상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지만 중국이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하다. 중국은 스스로 정한 집단적 정책 판단과 전략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누가 압박 넣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렵다.

"1000명 파병도 힘든 처지"

김성민 : 미국의 경제적 패권은 약화됐지만 군사적 패권은 유지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군사적 패권을 유지할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 패권의 쇠퇴는 필연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월러스틴 : 무기나 군사력의 측면에서 다른 어떤 나라도 미국에 견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세계 2위에서 8위까지의 국가를 모두 합한 것보다 1위인 미국이 더 많은 무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폭탄 투하만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상군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 국민들은 지상군 투입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무력이 있지만 지상전에서 승리할 수는 없고 파병할 역량도 없다. 3~4년 전 라이베리아에 1000명 가량 파병할 일이 있었는데 군 관계자는 그마저 파견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따라서) 미군은 북한에도 투입될 수 없다. 폭격은 할 수 있지만 폭격만으로는 안 된다.

또한 (한반도에서는) 결국 핵확산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 우위는 점차 엷어지고 있다. 북한은 이라크 전쟁에서 명확한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미군이 이라크에 들어간 이유는 대량살상무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란에 핵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라크가 한두 기라도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미군은 이라크에 못 갔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어쩌면 2~3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이면 충분하다. 북한이 2~3개의 핵무기로 세계를 압도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지상군 투입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런 면에서 핵확산은 점점 많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핵무기는 (다른 나라들로) 더 확산될 것이고 이것 역시 세계체제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수훈 : 미국이 '초 수퍼 군사력'을 갖고 있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력은 경제적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다. 저는 미국의 군사력이 이 지경에 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근년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정부 재정에 심각한 부정적 효과를 초래했고 이것은 큰 규모의 재정적자로 이어졌다. 또한 미국은 인적 구성이라든가 도덕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군대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게 되고 있다.

또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에서 보듯이 미국은 세계 도처의 국가들로부터 협력을 구해서 전쟁을 펼치고 있는데 유럽 국가들은 이런 대열에서 벗어나고 있고 나머지 동맹국으로부터의 협조도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이 좋은 예다. (한국은) 이라크에 파병했고 아프간에도 파병했지만 정치적인 저항, 시민사회로부터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십여 년간 전쟁을 치르고 일방주의적인 외교를 펼치는 사이 미국은 본래 갖고 있었던 도덕적 자산, 막스 베버나 안토니오 그람시가 얘기했던 권력의 문화적·도덕적 측면에서의 자원이 유실됐다고 평가한다. 도덕적 리더십의 약화가 초래된 것이 미국 패권 쇠퇴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본다. 아마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하는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백낙청 "동북아는 핵 밀집지역…6자회담 중단은 MB에 투표한 국민 책임"

백낙청 : 지금 세상에서 여러 문제가 수습 안 되는 이유가 미국 패권의 쇠퇴만은 아니다. 세계체제 전체가 옛날과 전혀 다른 국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하나의 패권국이 쇠퇴하면 누가 그 후계자가 되느냐 다투는 것 때문에 혼란이 일어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패권국가가 나와 질서를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옛날보다 훨씬 큰 혼란에 대비해야 하는 동시에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찾아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핵확산에 대해 월러스틴 교수는 불가피하다 말했는데 경제도 그렇고 핵도 그렇고 현재의 세계체제 운영 방식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문제다. 이런 흐름을 반전시킬 길은 없는지 월러스틴 교수의 생각을 듣고 싶다.

동북아는 핵이 집중돼 있는 지역이다. 6자회담 국가를 보면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보유에서 1등, 2등 국가고 중국은 이미 핵무장을 하고 있으며 최근 북한까지 했다. 한국과 일본에는 현재 핵무기가 없지만 언제라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 이처럼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핵이 집중된 지역인데 이런 곳에서 어떤 반전의 계기를 잡는다면 세계적으로도 희망적인 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지금은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다. 저는 그 주된 책임이 한국에 있고, 특히 6자회담 타결을 방해하는 정부를 만들어낸 국민에 있다고 본다. 국민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이 과정이 재개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지금의 세계체제 운영방식에 변화를 주는 민중의 노력과 함께 가야 한다.

월러스틴 "2020년 핵보유 당연한 일…안정화에 기여하는 측면"

월러스틴 : 6자회담은 곧 시작하리라 본다. 성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논의 자체는 시작될 것이다. 핵확산이라든가 6자회담과 같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내 사정도 알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미국의 입장은 고립주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 2차대전이 끝난 시점에서는 미국 내에 새로운 분위기 형성됐다.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개입주의의 입장이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입지가 약해지자 고립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이런 움직임이 더욱 커질 것이고 이것이 미국의 세계 문제 관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북아에서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지만 후퇴 조짐이 보인다. 만약 미국이 한반도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미국에 의존한 것이라면 한국은 가느다란 동아줄을 잡은 것이다. 미국에게 한반도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다. 그런데 중미관계는 겉으로 크게 소리내서 싸우지만 막판에 가서는 조금씩 양보하는 그런 양상이다.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미국이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쨌든지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도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2020년 정도가 되면 (동북아에서는) 핵을 보유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냉전 시기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있었다. 핵전쟁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 보유하는 것이 오히려 정세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물론 핵을 보유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가가 핵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최소한 30~40년 안에는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핵무기 보유가) 균형을 찾아주는 역할이 되지 않을까 본다.

한국에 2가지 숙제가 주어져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싸울 수밖에 없는 중국과 일본 간의 구조적인 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한반도의 통일이다. 남한과 북한 모두 통일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두려워하는 측면도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한편으론 원하면서 한편으론 두려워하는 현상이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이루어진다고 본다. 다만 어떻게 이뤄지느냐가 문제다. 독일 통일 사례에 다들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동독이 서독에 먹힌(흡수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과거 동독의 지배층·권력층은 통일되면서 전멸했다. 북한의 간부층은 이렇게 권력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독일 통일에 있어서는 통일비용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고 이러한 부담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래도 통일 전이 좋았다'는 향수가 남아 있다. 한국도 그 사례를 지켜본 결과 '우리가 만약 북한을 흡수통일하게 되면 남한 경제가 어찌 될 것인가'라는 굉장한 우려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독일은 같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통일에 대해서는 새로운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 왼쪽부터 백낙청 교수, 월러스틴 교수, 이수훈 교수 ⓒ뉴시스

이수훈 "한국, 천안함 외교로 동북아 분란만 일으켜"

이수훈 : 월러스틴 교수께서 한국이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천안함 외교는 오히려 정반대로 한 것이다. 한반도 문제를 국제 문제로 만들어 버려서 운신의 폭이 대폭 줄어들었고 남의 손에 남북의 군사 문제를 맡긴 셈이다.

백낙청 : 통일이 언젠가는,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월러스틴 교수의 말에 동감하지만 실제로 현실이 막연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이 만나서 대강 어떤 방식으로 갈 것인가는 이미 합의했다. 중간 단계를 거친다고 합의한 것이다. 실제로 진전도 있었다.

이 진전이 의미 있는 것은 (6.15 선언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진 후 1년도 안 되어 부시 행정부가 들어와서 온갖 방해를 했는데도 진전이 됐다는 점이다. 부시도 (자기 방식대로) 하다하다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입장을 바꿔서 6자회담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그런데 미국이 태도를 바꾼다 싶었더니 그 다음에는 우리 국민이 남북관계에 관한 한 초기의 부시 비슷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래서 지금은 (6자회담 프로세스가) '스톱' 돼 있는데, 이분(이명박 대통령)도 지금쯤은 부시 식으로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언제 바뀔지, 제대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반도 통일이 막연한 것만은 아니다.

또 월러스틴 교수가 소위 '공포의 균형'을 통해서 (정세가) 안정화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것은 월러스틴 교수가 책에 쓰신 세계체제의 현 단계에 대한 진단과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공포의 균형이 유지되려면 월러스틴 교수가 말한 '국가간 체제'(inter-state system)가 상당히 안정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핵무장을 하고 다른 국가들하고 교섭하는 국가들이 어느 정도 책임 있고 안정되고 힘 있는 국가여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게 무너지고 있는 단계다. 10년 내에 국가간 체제 자체가 더 약화되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런 국면이 핵확산과 겹쳤을 때 과거의 (냉전체제 하의) 공포의 균형 상태처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겠나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월러스틴 : 국가간 체제가 현재로서는 안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란 것은 동의한다. 현재도 혼란스런 체계이고 혼란은 더해갈 것이고 그 한 측면이 핵확산이 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북아만의 일도 아니다. 동북아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도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게(!) 될 것이다.

1960년대부터 80년대의 기간 중에 많은 나라들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같은 많은 나라들이 시작했었고 과학적·재정적 측면에서 핵개발 능력이 있었다.

이런 지점에서 미국이 (북한에) 실망한 것은 핵개발이라는 금기를 깼다는 것이다. 결국 이란도 핵개발을 한다. 이란에 핵무기 개발 의도가 있다는 미국의 판단은 맞지만 멈출 방법은 없다. 2~3년 안으로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무기 보유가 그 지역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주변국들은 알 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나라에 핵우산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약화되면 (이 나라들은) 미국에 의존할 수 없게 되고 독자적으로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G20 의장국이 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짚어볼 수 있다. G7이 아닌 국가로서는 최초로 G20을 개최하는 것인데 이를 좋게 평가하는 것은 (미국 도움 없이도 살아 보겠다는) 민족주의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된 것이다.

핵무기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브라질이 핵을 가지는 것은 그 나라가 아이가 아닌 다 큰 어른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앞으로 아마도 20개국에서 25개국 정도의 핵무장 국가가 생길 것이다. 나는 이것을 히스테릭하게 반응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공포의 균형을 말한 것이다.

물론 좀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다는 데 동의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안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는 경제적·군사적·문화적 혼란기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동북아는 2008년 소(小)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지만 만약 내가 3년 후에 한국을 재방문한다면 이런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거품이 가라앉고 있고 그 와중에서 또 새로운 거품이 생겨나고 있다.

이번 위기에 가장 잘 대응했다는 나라인 한국에서도 재정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에선 어떤 규모일지 짐작할 수조차 없다. 지방자치 단체의 재정이 줄어들어 계속해서 국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여력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삭감밖에 없다. 사람들이 힘들어질 뿐 아니라 삭감에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든다. 예컨대 의료보장에서의 삭감 같은 경우가 그렇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제가 두 교수께 아까 질문했던 것을 좀더 구체화하자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 과정을 추진해 왔는지 궁금하다. 논의를 통해서 한국 국민들과 북한 국민들이 (통일 논의에) 익숙해지게 하는 정지(整地)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맞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수훈 교수는 이전 정부에서 관련 일을(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맡으셨으니 잘 답변해 주실 것 같다.

백낙청 "시민들이 참여하는 통일 과정, 세계체제 변혁에도 중요"

이수훈 : 정부가 불러서 잠시 봉사했는데 '퍼줬다', '잃어버린 10년이다' 욕만 실컷 얻어먹고 '친북 좌파' 꼬리표 붙이고 해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많은 것을 잃기도 한 경험이었다. (웃음) 남과 북은 냉전 기간 동안 적대·대결·불신의 관계였다가 남북대화가 일어나서 7.4 공동성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서로를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군사적인 면에서 북한을 위협이라고 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과 남한을 모두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남한이 (독일 식으로) 북한을 집어삼키는 게 아닌가 하는 위협감이다.

상호가 위협을 느끼며 이 어리석고 불필요한 대립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데 벗어날 방안은 7.4 공동성명에 좀 나와 있고, 노태우 정부 시절의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제시된 바 있다. 김영삼 정부 때 만든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답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서로를 인정하는 보편적 방법론에 해당한다.

이 정신이 남북기본합의서에 들어 있다. 점진적·신기능주의적 통합으로 간다는 합의가 유사 군부 정부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남북 간에 합의됐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바로 그것을 (정책화해서) 펼친 것이고, 노무현 정부는 내용을 대체로 이어받아서 다른 브랜드로 했는데 결국은 햇볕정책이었다.

'퍼줬다', '북한 버릇 잘못 들였다' 이런 말을 하는데 사실 우리 헌법이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고, 남북기본관계법,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에도 전부 이렇게 하라고 돼 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서로 간의 협력을 높이고 심화시켜서 하나의 통합체로 가는 것만이 현재 유일한 대안이다.

백낙청 : 저는 6자회담이 잘 진행되더라도 더 근본적 변화와 맞물리지 못하면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한반도의 경우 정부 당국간 원칙적 합의는 이루어져 있으나 정부에 맡겨놔서는 절대로 해결이 안 된다고 본다. 6.15 선언 당시에도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가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원칙적으로 통일을 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국가연합을 만들어서 권력의 일부를 내놓는 것은 어느 권력도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6.15 선언 실천이나 '중간 단계'(국가 연합 단계)를 향한 움직임을 위해 시민들의 압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구도에서 중요한 발언권을 가진 남한 국민들이 정부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게 하고, 여러 민간 교류도 하고, 남북 통합에 더 적합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개혁 작업도 추진하고 이런 일을 하는 가운데 통일 과정이 진전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른 '한반도식 통일방안', 내용적으로는 시민 참여에 의한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시민이 정부 제쳐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멘, 독일, 베트남에 비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인 참여가 훨씬 많은 그런 통일 과정이 되리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안 하면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시민들이 참여하는 한번도 통일 과정'은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점에서) 월러스틴 교수의 '세계체제의 변혁 과정'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 아닐까 한다.

▲가장 왼쪽은 사회를 맡은 건국대 김성민 교수 ⓒ뉴시스

"한반도 상황은 팔레스타인과 가장 유사"

월러스틴 : 지금까지 두 분이 말씀하신 내용을 요약하면 '최소주의'(가능한 것,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는 의미에서)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교수는 신뢰를, 백 교수는 시민 참여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조금 회의적이다. 남과 북을 통합시키는 데에 나타나는 어려움은 1945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존재했던 어려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금 한반도와 가장 유사한 상황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아닌가 한다. 미리 합의된 협약(이스라엘의 경우 오슬로 협정, 한반도는 남북기본합의서 또는 6.15 선언)이 있고, 양측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자는 의견도 있었고 강하게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세력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각 진영별로 혹은 진영 간에 싸움이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최소주의 접근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부터 정면돌파하자는 최대주의 접근으로 관점을 달리해보자는 것이다.

한반도 상황에 (남북이 주도권을 갖는 것에) 회의적인 이유는, 그나마 진전을 이룬 사례를 보면 양측의 관계 당사자가 전혀 관여할 수 없었던 외부 상황의 개선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한반도의 경우 한국이 중국·일본과의 3국 연합체나 공동체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한다면 공동의 이익을 찾을 수 있는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

뭔가 중요한 것(남한, 중국, 일본의 공동체)에서 우리만 제외됐다는 생각을 북한에서 가지기 시작한다면 3국 체제를 통해 통일을 이루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외부 요건이 달라진다면 감수성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고 통일이 좀더 매력을 가진 방안이 될 것이다.

백낙청 :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남북 상황은 너무 다르므로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최소주의 접근 문제는 6.15 선언 이전 남북간의 쟁점이었다. 남한에서는 최소주의를 북한에서는 최대주의를 주장했는데 사실 북한에서는 야금야금 침식되는게 아닌가 걱정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 갈등을 절묘하게 다룬 것이 6.15 선언의 2항이다.

또 외부 상황에 대해 동아시아 지역 연대체를 말씀하셨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그에 따르면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유지 작업과 북핵 문제 해결,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 관련국들간 관계 정상화 및 외교관계 수립을 동시에 합의했던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는 것은 이 문제들을 동시에 풀어가는 그런 의미다. 월러스틴 교수의 염려보다 훨씬 진전되어 있다고 본다.

월러스틴 : 이스라엘 측에서 귀하게 여기는 뭔가를 포기해야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면에서 비교한 것이다. 포기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말한 것이고 최소주의 접근이 중요한 이슈까지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치 않다고 말한 것이다.

월러스틴 "천안함,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

김성민 : 천안함 사건이나 3대 세습과 관련해 북한에 대해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단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백낙청 : 천안함이 북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우리의 북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 생각을 정리하자는 것과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모든 교류를 단절하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생각을 정리하자는 것은 특히 남북 협력에 참여하고 지지해 온 이수훈 교수나 저 같은 사람이 북한 정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가를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는 그런 말이다.

북한 3대 세습을 저는 북한 사회의 성격이나 체제의 성격을 털어놓고 솔직하고 심층적인 토론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수훈 : 북한이 붕괴하면 우리가 들어가서 먹겠다는 그것이 이른바 급변사태 논의다. 이것은 김정일의 건강 문제가 본격화됐던 2008년 여름 이후에 더욱 무게를 갖는 중대한 담론이 된 것이다. 그런데 급변사태를 계속 중요한 시나리오로, 정책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대단히 많고 정부도 좀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기다린다' 등의 언술에도 나타나고 비핵화 노력이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나 6자회담에도 아주 소극적인 데에서도 나타난다.

3대 세습과 관련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또 진보/보수를 떠나 포용적 관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다각적인 문제를 3대 세습이라고 하는 북한의 조치가 제기한다고 본다.

월러스틴 : 저는 천안함에 대해서는 뭐라 판단할 능력이 없다. 언론 보도도 봤고 정부 발표도 봤지만 폭발의 성격 같은 것은 제 역량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대단히 악화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분쟁은 모호한 사건으로 출발하지만 강경파들이 기회를 즉각적으로 포착해 군사주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모든 것을) 장악해 버린다. 그러나 5년 후에는 아무도 천안함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모호한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고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50년, 100년을 두고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논쟁할 것이다.

미국의 9.11 테러, (케네디 또는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 등도 끝없이 토론하고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제가 보기에 (천안함 문제나 미국의 미스터리는) 그렇게 많은 지적 에너지를 소모할 일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는 잊혀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많은 열정과 감성이 개입해 있지만 지금 5세인 어린이가 20세 청년이 됐을 때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이해(理解)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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