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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굴복 바라는 MB 정부는 '평화 프로세스'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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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굴복 바라는 MB 정부는 '평화 프로세스' 역주행"

[한반도평화아카데미]<5강·끝>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인제대학교와 한반도평화포럼,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하는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한반도 평화체제: 피스메이커들이 보는 쟁점과 과제"의 마지막 강의인 제5강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가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주제로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1~4강에 이어 임 이사장의 강연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1990년대 초 국제냉전이 끝나고 분단되었던 나라들이 통일을 이룩하는 등 국제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났으나 한반도는 분단된 채 냉전의 외딴섬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도 남과 북이 탈냉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룩해 왔다.

지난 20년 동안 남과 북은 두 번에 걸쳐서 냉전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그 첫 번째 산물이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이고, 두 번째 산물이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이다. 이 두 문서는 우리 민족 분단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합의서라 할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이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반세기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2007년에는 '6.15 남북공동선언의'의 실천강령이라 할 '10.4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세 성과물은 남북이 지혜를 모으고 고민 끝에 만든 것으로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비록 이 정부 들어 그 연속성이 단절되고 남북관계에 진통이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2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불신과 대결뿐만 아니라 북미 간의 적대관계와 북한의 핵 개발, 군비경쟁과 정전체제 등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남과 북이 주도하여 관련국의 지지와 협조를 얻어 추진해 나가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선결요건인 것이다.

이 강연에서는 1. 남북관계 20년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서 2. 남북관계를 좌우한 기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요약하고, 3. 남북관계 20년의 교훈과 과제를 정리하고자 한다.

1. 화해 협력을 추구한 남북관계 20년

ⓒ프레시안(최형락)

새로운 대북정책의 시작

탈냉전의 새로운 남북관계의 신호탄이 된 것은 '7.7 대통령특별선언' (1988)이었다. 1980년대 말 냉전이 종언을 고하는 국제정세의 지각변동과 함께 6월 민주항쟁으로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욕구와 통일열기가 고조되어갔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전환기를 호기로 포착하여, 지난 40년간 유지해온 반공정책을 넘어 공산권에 문호를 개방하고 교류와 관계개선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는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추진했다.

'7.7 대통령 특별선언'이라 불리는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은 북한을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남북간 왕래, 교류, 교역을 개시하여 통일 번영을 추구해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라 할 정책 전환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의 포용정책을 추진한다. 이것이 나중에 '화해협력정책' 또는 '평화번영정책'이라고 불린 포용정책의 시작이다.

한편 그 이듬해에는 국회 청문회 등을 거쳐 마련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을 발표한다. 이 통일방안이 그대로 유지되어 오늘의 우리의 통일방안이 된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통일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평화적으로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먼저 민족사회의 통합을 이룬 뒤에 국가 차원의 통일을 이룬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화해 협력의 제1단계,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해 나가는 남북연합의 제2단계를 거쳐 제3단계에 완전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7.7 대통령특별선언'과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기축으로 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은 북한으로 하여금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1990.9.~1993.2.)에 나와 탈냉전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게 하는 결정적인 동인이 된다.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먼저 해결해야할 당면과제는 남측이 주장한 유엔공동가입 문제였다.

남북관계의 시작 : 유엔공동가입

북한은 '고려연방제통일방안'에 기초하여 남과 북의 유엔 가입은 분단을 고착시키게 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한편 '만일 유엔에 가입한다면 단일의석으로 가입하자'고 주장했다. 남측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기초하여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부터 먼저 인정'하고 '둘이 화해 협력하여 하나로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했다. 남북 합의에는 실패했으나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유엔에 공동가입하게 된다.

남북의 유엔 공동가입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제사회와 함께 남과 북이 한반도에 두 개 주권국가의 실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북은 더 이상 '하나의 조선론'과 즉각적인 2체제 연방제 통일을 고집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통일을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어 남북관계 정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남과 북은 탈냉전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할 수 있게 된다.

화해·협력·불가침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는 탈냉전을 지향하는 남북관계의 발전방향을 제시한 강령적 성격을 띤 합의문서이다. 남과 북은 유엔 공동가입 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외적으로는 각각 주권 국가이지만, "남북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인정하는데 합의한다. 그리고 분단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호를 사용한 문서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①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 존중하자, (내정 불간섭, 비방 중상 중지, 파괴 전복행위 금지 등) ②화해하자, ③다방면으로 교류 협력하자, ④전쟁하지 말자(불가침), ⑤불가침을 보장하기 위해 군비통제를 하자, 즉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면서 군비감축을 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⑥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여기서 ⑤의 '남북 사이의' 평화상태라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이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 북한에서는 남북간이 아닌 북미간의 합의를 주장했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한 발 양보한 것이다.

이 강령적인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세부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3개의 부속합의서(화해/불가침/교류협력)가 채택됐고, 그 이행기구인 4개의 공동위원회 (화해/군사/경제교류협럭/사회문화교류협력) 구성에도 합의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탈냉전의 새 시대를 맞아 한반도에서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우선 남과 북이 싸우지 말고 서로 인정 존중하고 화해 협력하는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방향을 제시한 남북관계의 기본장전인 것이다.

왜 '남북기본합의서'가 실천되지 못했나?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려면 북미관계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고, 남과 북이 유엔에 공동가입함으로써 한반도의 냉전 구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미국에 특사를 보내 관계개선을 위한 북미고위급회담을 제의했다. 국제핵사찰 수용을 통보하고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미군의 남한 주둔에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했다. 북한이 요구하던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를 '단계적 철수'라는 표현으로 바꿨고 이 역시 (북미간이 아닌 남북간의 합의를 명시한 데 이어)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한 양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관계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적대적 봉쇄정책을 계속했다. 공산권 붕괴로 생존 위기에 처한 북한은 미국의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억제용으로, 그리고 또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룩하기 위한 협상용으로 핵개발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만일 이 때에 미국이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했더라면 북핵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되고,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도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핵확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북정책과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고, 냉전구조 해체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한편 김영삼 정부는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핵 연계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북한이 '수령' 김일성의 사망과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위기에 봉착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북한은 고장난 비행기와 같아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며 붕괴임박론에 입각한 방관정책 쪽으로 기울어짐으로써 남북관계는 냉각되고 소중한 5년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연계전략이 아닌) '병행전략'으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했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와의 정책공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환의 기회를 인식하지 못하고 역사의 흐름에 역행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추진

1998년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려는 '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을 추진한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해 나가려한 것이다. 이 화해·협력·(북한의)변화·평화라는 것이 햇볕정책의 4대 요소다.

또한 미국 클린턴 행정부를 설득하고 협력하여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한다. 평화프로세스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로서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라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일본, 한국이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면서 대량살상무기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클린턴 행정부는 한국의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전략'을 수용하여, 한미일 3국 공조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한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핵 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약속하는 '제네바합의'를 채택하여 북한 핵활동을 동결시킨데 이어 미사일협상에서도 진전을 이룩한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 6.15 남북공동선언(2000)을 채택하고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게 된다.

한편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이정표를 제시한 '북미 공동코뮈니케'(2000.10.12)를 채택하고,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미 국무부 장관(올브라이트)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미관계도 급진전하게 된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도 평양을 방문,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수교를 추진하기로 하는 '평양선언'(2002.9.17)을 채택하게 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이런 성과는 북한과 미국·일본 간의 관계이긴 하지만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화해 협력 시대를 연 '6.15 남북공동선언'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한 공통인식을 도출하고, 불신과 대결의 반세기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기약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해 실천해 나갔다.

통일문제는 남북관계 개선 발전의 대전제가 된다. 한 쪽은 '적화통일'을, 다른 한 쪽은 '흡수통일'을 기도한다면 화해 협력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두 정상은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룩해야 하며,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자주와 평화의 원칙에 따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기로 합의한다.

통일은 화해 협력으로 시작하여 변화와 창조의 과정을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오고 가고 돕고 나누면서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상황'(de facto unification)부터 실현하고, 완전한 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은 이를 위해 '남북연합'을 구성하여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남과 북이 효율적으로 공동관리해 나가자는데 합의한 것이다.4) 또한 이 선언은 실천선언이다. 남과 북은 당장에 실천 가능한 다섯 가지의 중점사업에 합의하고 실천을 통해 신뢰를 다져나가게 된다.

그것은 ①민족의 동맥인 철도·도로의 연결, ②개성산업공단의 건설(현재 100여 개 기업, 북측 노동자 4만여 명), ③금강산 관광사업(193만 명) 뿐만 아니라 백두산 관광 등 관광사업의 확대, ④ 이산가족 상봉(4000 가족, 2만 명), ⑤사회·문화·경제 등 여러 분야의 교류 협력(44만 명 왕래) 등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남북 당국간 대화(240회)를 추진하고, 연 평균 2억 달러에 상당하는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도 제공한다는 내용도 있다.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반세기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 수 있게 된다. 남북 간에 시민참여의 공간이 넓어지면서 왕래와 교류 협력을 통해 서로 상대방을 보다 더 잘 알게 되고, 점차 적대의식이 수그러들고, 긴장이 완화되며 민족공동체의식이 함양되고 신뢰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시작으로서는 소중한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제2차 북핵위기와 '10.4 선언'

노무현 정부 시기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제거해야할 '악의 축'으로 지정하고(부시 독트린), 8년간 지켜온 제네바합의를 파기하여 제2차 핵위기가 조성되는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정체된 시기였다. 그러나 '선 핵폐기'만을 북한에 강요한 강경책은 핵개발을 저지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북한정권을 붕괴시키거나 굴복시키지도 못한 채 핵실험까지 초래하는 등 역효과를 자초했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한미일 3국의 대북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안보 협력문제 등과 함께 해결해 나가야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훌륭한 '9.19 공동성명'(2005)을 산출했다. 그러나 한쪽은 관계정상화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고, 다른 한족은 핵억제력 확보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상호불신을 증폭시키면서 부정적인 작용-반작용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부시 행정부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화해협력정책을 계승한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10월 4일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채택한다. 이 선언은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약 40개의 대소 협력사업을 제시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도 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여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로 한 것과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 등은 중요한 성과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선'이 아닌 '면' 개념을 기반으로 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넘어서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행하는 남북관계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인 '퍼주기'로 북한의 생명을 연장시켜왔다며 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부정하고 차별화를 추진했다. 이 정부는 '비핵개방3000'과 같이 '先 북핵문제 해결, 後 남북관계'라는 입장을 주장하며 북한의 굴복과 붕괴를 위해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강경책을 취해왔다.

6.15 공동선언은 묵살하고 10.4 선언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화해 협력의 공든 탑은 무너지고 남북관계는 냉각되었다. 이것은 마치 부시 전 대통령(조지 W. 부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것은 전부 틀려먹었다"(ABC : Anything But Cleanton)는 정책을 편 것처럼 이전 정권에서 이룬 것을 모두 부정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굴복과 급변사태를 기다리는 잘못된 정책으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장기적인 비전이 없는 이러한 근시안적인 정책으로는 평화와 통일은 멀어지고 긴장이 고조될 뿐만 아니라 북한이 중국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된다. 북한이 넘어지지도 않겠지만 넘어진다 해도 남쪽으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기대는 쪽으로 넘어질 거라는 얘기다.

지난 20년간 북한의 기본 입장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중국에 의존해서 발전할 수밖에 없다. 20년 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중국이 가진 기술과 자본은 북한이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하다.

중국 또한 북한이 필요해졌다. 지금 중국은 동북 3성 개발을 추진 중이고 물류 운송 등을 위해서는 바다(항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롄항까지 나오기는 너무 멀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나선이나 청진항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랄 것이다.

또 북한의 지하자원도 무시할 수 없다.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이 7000조 원 규모에 달한다고 한다. 남한 전체의 자원 매장량은 290조인데 그보다 24배나 많은 것이다. 자칫하면 이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중국에 팔아먹는' 정책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적 전환의 기회를 인식하지 못하여 실기하고 역사의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남북관계를 좌우한 기본적인 문제들

남북관계 20년의 전개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네 가지의 중요한 요소 즉 통일관, 대북시각, 북핵전략 및 대북정책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첫째, 기본적인 문제는 어떤 통일을 지향하는가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통일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연합제를 통한 점진적 단계적 평화통일을 지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통해 통일을 과정으로 인식하고 연합제를 통한 점진적 평화통일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다리며 흡수통일을 꿈꾸는 세력이 있다.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부상하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와 영향력에 유의해야할 것이다.

둘째,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붕괴임박론'과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라는 '점진적 변화론'이 그것이다.

1990년대 초 동구권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때 "북한도 1~2년 내에 루마니아처럼 갑자기 붕괴될 것이다"라는 것이 미국의 정보판단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붕괴되지 않자 '수년 내'에 붕괴될 것이라고 수정했다. 부시 행정부에 이르러서는 '악의 축'인 북한정권을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붕괴론'으로 변질되었다.

이와는 달리, 북한은 '동구권모델'이 아니라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당 1당 독재체제 하에서 개방 개혁을 추진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가는 '아시아모델'을 따르게 될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이 해제되면 변화가 촉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점진적 변화론의 입장이다.

노-김-노(노태우-김대중-노무현)정부는 점진적 변화론의 시각에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 그러나 YS-MB(김영삼-이명박)정부는 붕괴임박론 또는 붕괴론적 시각에서 압박과 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1990년대 초부터 대두된 북한 핵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북핵문제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는 연계전략과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병행전략이다.

연계전략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는 전면적인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하며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先핵문제 해결, 後남북관계 개선'의 입장이다. 이는 YS-MB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 병행전략은 이와 달리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로서 두 나라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폐기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노-김-노 정부의 입장이다.

넷째, 어떤 대북정책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선택할 수 있는 대북 정책에는 이론상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냉전시대에 취했던 바와 같은 '제로-섬 게임' 식의 대결정책이다. 승패의 게임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무시방관정책이다. 북한이 굴복하거나 붕괴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또는 압박과 제재로 촉진시킨다는 정책이다. 그리고 포용정책이 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상대'하여 관계개선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며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 나가려는 정책이다. 노-김-노 정부는 포용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YS-MB정부는 방관정책을 선호한 편이다.

3. 교훈과 과제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난 20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한반도문제는 당사자인 남과 북이 주도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통일철학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부터 개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년의 경험은 '과정으로서의 통일', 즉 '先사실상의 통일상황 실현, 後법적 통일'이라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점진적 변화론의 시각에서 화해 협력의 포용정책을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할 때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평화와 통일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 노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문제에 깊이 개입해온 미국이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한 남북관계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민족공조와 국제공조가 상호보완적 성격을 발휘하도록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의 정책공조를 통해 미·북 관계개선과 안보위협 해소 노력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듯이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다차원적이고 포괄적인 국제공조 노력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요체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은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은 미·북 적대관계를 해소하여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안보환경을 조성하고 상호신뢰를 조성하며 평화를 보장하는데 있다. 비핵개방 3000과 같이 결코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에 종속시키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우리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한편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정전상태를 끝내고 평화체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협상하기 위한 4자회담(미, 중, 남북한) 개최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한 목소리를 내어 주도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고, 성사되어도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중요한 문제는 분단을 고착시키는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 체제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 체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억제력을 통해 분단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소극적 평화는 참된 평화가 될 수가 없다. 분단 상태에서는 남북의 정통성 경쟁과 대결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보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① 우선 경제적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 향상을 위하여 남북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여 상호의존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유럽이 경제공동체(EEC)를 구성하여 국가연합(EU)을 이룩하고 정치적 통합을 지향하고 있듯이, 남과 북도 경제공동체를 형성 발전시켜 경제통합을 통해 정치통합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결코 북한이 중국의 경제권에 종속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②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군비통제를 실현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것을 보면 통일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의 국방비 지출도 이에 못지않다. 남과 북은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와 함께 축소지향적인 군사력 균형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는 북핵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군비통제와 경제공동체 형성은 서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며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

③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관리해 나가기 위한 협력기구인 '남북연합'을 구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미 합의한 바 있는 '남북연합'은 '법적 통일'에 앞서 남북이 서로 오고가고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상황'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④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지역 안보 협력기구를 창설 운영하는데 우리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다루어온 6자회담이 그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평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은 동북아 안보 협력기구와 병존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불신과 대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난 20년간 남북이 지혜를 모아 어렵게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선언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합의의 실천을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부터 조속히 풀고, 우리 민족이 당면한 역사적 과제인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주도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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