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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아프간 전쟁기밀' 폭로, '제2의 펜타곤 페이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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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아프간 전쟁기밀' 폭로, '제2의 펜타곤 페이퍼'되나

적나라한 민간인 학살 기록 유출에 <WSJ> "전쟁 회의감 증폭"

줄리언 아산지(Julian assange)라는 올해 39세의 해커 출신 호주인이 미국 정부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 扮)가 '매트릭스'로 불리는 거짓세상의 실체를 까발리듯, 미국이 벌이는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영국의 <가디언>과 미국의 <뉴욕타임스>, 독일의 <슈피겔> 등 세계적인 3대 진보 매체가 아산지가 제공한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들을 토대로 동시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비밀문서들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저지른 무려 144건의 민간인 학살 사례가 담겨있다.

▲ ⓒ로이터=뉴시스

<가디언>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기밀 유출"

<가디언>은 아산지가 제공한 20만 페이지 분량, 9만2201 건의 비밀문건에 대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밀 유출'이라면서, 이 문건들이 작성된 시기가 2004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조지 W. 부시와 현재의 버락 오바마 정부에 이르는 6년간에 걸쳐 있다고 전했다.

민간인 피살 사례가 이처럼 많은 배경과 관련해 이번 같은 폭로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연합군의 오폭. 오인 사격으로 수백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초래됐다는 알려진 사실 이외에도, 미국 국방부가 육군과 해군 특수부대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373'과 같은 비밀부대를 편성해 이슬람 반군 지도자급 인사 70여명을 제거하러 투입이 됐는데, 그 과정에서 오인 사격 등으로 최소 195명의 민간인이 피살됐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 매년 10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받는 파키스탄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 집권시 '양다리 전략'을 구사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무소불위의 친위조직으로 알려진 ISI라는 정보부를 통해 탈레반과도 내통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파키스탄 정보부(ISI) 간부들은 탈레반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트럭 65대 분량의 무기와 탄약, 1000여대의 모터사이클, 7000여점의 박격포와 AK소총 등 무기를 공급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9년 전쟁에 오히려 탈레반 강해진 이유 설명"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이번 기밀 보고서는 미국이 2001년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이후 9년 동안 3000억 달러의 돈을 쏟아 붓고도 탈레반이 어느 때보다 강해진 이유를 설명해준다"면서 "아프간 전쟁의 상황은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보다 훨씬 암울하다(grim)는 점을 보여준다"고도 지적했다.

아산지는 이미 지난 4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 통신 기자 2명과 어린이들이 포함된 민간인 10여명을 사살하는 지난 2007년의 학살 장면이 담긴 동영상(제목 'collateral murder')을 공개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폭로 작업이 아산지 혼자 이뤄낸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2006년 12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이름을 딴 '위키리크스(Wikileaks.org)'라는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국적을 초월한 최초의 네트워크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특이한 형태로 보이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정보공개법이 있는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등에 서버를 분산해 예기치 않은 서버 차단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며, 상근자는 10명 이내이지만 전문적인 능력을 기부하는 1000여 명의 협력자들과 각종 지원을 해주는 1만 여명의 지지자들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미국 정부는 아산지와 위키리크스의 활동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제보자에 대한 보호도 철저하다. 일단 제보를 받는 순간 제보자에 관련된 모든 자료는 폐기한다. 스스로도 제보자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또한 제보된 내용은 자체 검증을 거쳐 상당한 신뢰를 지닌 것으로 확인된 것만 폭로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아산지는 자신이 공개하는 일련의 비밀문건들을 '펜타곤 페이퍼'에 비유했다. '펜타곤 페이퍼'는 1971년 미 국방부 출신의 다니엘 엘스버그가 <뉴욕타임스>에 공개한 베트남전 관련 비밀문서(7000여 페이지)로, 이 문서에 의해 베트남전은 미국이 조작한 사건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64년 미국의 해군 구축함 매덕스호가 베트콩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전에 직접 뛰어들기 위한 저지른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이 이 문서로 폭로돼 미국 안팎에서 반전운동을 폭발시켰으며, '통킹만 사건'의 기획자인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도 1995년 뒤늦게 통킹만 사건이 자작극이었음을 시인했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칼럼리스트 제럴드 사이브는 아산지가 폭로한 비밀문건들이 '제2의 펜타곤 페이퍼'의 역할을 할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닉슨 시대처럼, 이번 폭로가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의 '메가톤급 폭로'에 대해 백악관은 속수무책이다. 제임스 존스(Jones)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개인이나 개별 기관이 이 같은 정보들을 공개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국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우리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등 아산지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할 뿐이다.

아산지 "정보 흐름 극대화, 큰 파장 일으킬 것"

이이 맞서 아산지는 26일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문건 공개는 시작에 불과하다. 추가로 공개할 문건 1만5000건을 검토 중"이라고 경고하고 미국 <CNN> 방송의 '래리 킹 라이브'에 화상 인터뷰 형식으로 출연해 "문건 공개로 탈레반이 기뻐할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우리가 폭로한 기밀은 아프간 전쟁 전반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던 중요 사건들의 실체를 밝힐 명백한 증거"라고 백악관의 비난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그는 "문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무고한 민간인 사살 의혹 사건이 여러 건 있었음에도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연합군의 민간인 오폭 사건 책임은 법정에서라도 끝까지 밝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산지는 정부에 맞서 이런 폭로 활동을 하는 동기에 대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소개하기도 했다. 부모가 베트남전 반대 시위장에서 만나 결혼한 사이라는 점이 말해주듯 '태생적인 반골'인 아산지는 "건축가였던 아버지는 '관대하고 유능한 사람은 희생자를 만들지 않고 그들을 보호한다'고 가르쳤다"면서 "작은 에너지가 큰 파장을 일으키듯 올바른 개혁을 위한 행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보 흐름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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