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국가>라는 저자로 유명한 미국의 금융전문가 배리 리톨츠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빅픽처'를 통해 현대의 정치경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자고 도발적인 제안을 했다.
리톨츠가 운영하는 '빅픽처'는 CEO들이 꼭 챙겨보는 거시경제 전문블로그로 세계적인 인기를 글고 있으며, 그는 <구제금융 국가>를 통해,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대형금융업체들을 지원함으로써 '실패한 자본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 미국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 미국 정계를 로비로 무력화시키는 기업으로 악명 높은 골드만삭스.. 대기업들이 정치판을 규정하는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위협이 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프레임은 '사물을 바라보는 틀'로 현실에서 정말 중요한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정치판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프레임' 경쟁이 벌어진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 '민주 대 반민주', '북풍 대 노풍' 등의 프레임들을 설정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한 것도 비근한 예이다.
문제는 정치판에서 제공하는 프레임은 권력 다툼을 위한 것일 뿐 유권자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좌, 우 프레임은 시대착오적 관점"
이와 관련, 리톨츠는 '거시적인 프레임'을 의미하는 패러다임부터 바꿀 것을 촉구해 주목된다. 그는 지금도 정치적 패러다임으로 가장 흔한 '좌, 우' 편가르기 프레임부터 시대착오적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The Left Right Paradigm is Over: Its You vs. Corporations'라는 글을 통해 미국도 이런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치도 오랫동안 좌, 우의 패러다임 속에 각종 이슈마다 다양한 하부 프레임으로 규정돼 왔다. 진보와 보수, 낙태에 대한 찬반, 감세와 정부지출 확대, 전쟁과 평화,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우선, 친노조와 반노조, 동성결혼과 전통적 가정, 시장 규제와 자유시장 등 좌, 우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슈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리톨츠는 "좌, 우 패러다임은 낡은 것이고, 새로운 역학관계로 대체됐다"면서 "현재 우리는 개인에 대해 기업의 영향력과 권위가 커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와 영향력이 거대하게 집중된 곳에는 권력 남용이 등장한다"면서 "기업은 돈과 입법에 대한 영향력, 선거 기부 등으로 이미 정치 과정에서 거의 전적으로 개인을 대체했다"고 개탄했다.
기업에 의해 개인이 왜소해지고 있다는 진단은 새삼스럽게 신선한 통찰력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시각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경우는 드물다. 리톨츠는 "현재 개인 대 기업의 대결에서 인간이 지고 있다"고 말한다.
리톨츠는 여러 분야에서 이런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몇가지 사례들을 열거했다.
-에너지와 금융부문의 많은 규제가 기업들에 의해 설정됐다.
-기업의 로비는 입법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을 기업이 활용하는 공공자산에 대응하는 수준보다 훨씬 초과해 확장하는 능력을 지녔다.
-선거에서 개인 기부는 기업에 의한 PAC(정치활동위원회)와 선거 후원으로 대체됐다.
-미국 대법원은 기업에게 인간과 동등한 표현의 자유를 권리로 인정했다.
리톨츠는 "이런 문제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립하는 사안들이라기보다는 기업 대 개인의 대립"이라면서 "좌파, 우파라는 낡은 프레임에 갖혀 있는 사람들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업체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좌파, 우파의 프레임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우파라는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권 때 구제금융을 실시했고, 좌파라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도 추가 구제금융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좌파, 우파의 변화가 어떤 차이를 가져왔느냐"면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주류 언론에 도전하는 UCC 등이 희망의 싹
정부 지출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는 크지 않다. 부시와 오바마는 좌, 우 패러다임의 대표자들로 여겨지지만 둘다 엄청난 감세 정책을 유지하고, 군사비에 돈을 퍼부었으며, 재정적자를 불렸다.
이제 좌, 우파의 행동에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어진 시대는 좌, 우 프레임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미국 사회는 여러 면에서 좌, 우 프레임의 역학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정당 소속감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의회에 대한 신뢰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투표 참가율이 매우 저조하다.
다행히 기업의 힘이 집중되는 흐름에 대응하는 반격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다. 기업화된 주류 언론 매체들은 UCC(사용자 제작 컨텐츠)로 점점 대체되고 있다. 유튜브와 각종 블로그들은 점점 새로운 소비자(특히 젊은 사용자들)들에게 중요한 매체가 되고 있다.
미국의 유권자 둥 좌, 우 프레임을 탈피한 사람들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기업과 개인 사이의 전선은 뚜렷하게 그어져 있지 않다.
리톨츠는 "이 싸움판에서 케인스 대 하이예크, 프리드먼 대 크루그먼 같은 지적 논쟁은 초점이 잘못된 것이다. 이 싸움은 당신과 BP의 CEO 토니 헤이워드, 당신과 골드만삭스의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싸움이며, 당신들은 지고 있다"면서 "향후 10년에 걸쳐 이 싸움이 미국의 정치지형을 규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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