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을 닮아갈 것으로 우려되는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현재 미국에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8월 실업률은 9.6%로 전달보다 다시 0.1% 증가하며 기록적인 실업사태가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 큰 문제는 '사실상 실업률'은 무려 16.7%에 달해 지난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 미국의 기록적인 실업사태 속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구직에 실패하거나 단순 임시직을 얻는 데 그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우리나라 정부는 '사실상 실업률'을 공식통계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지만, 미국은 불완전 고용을 뜻하는 'U-6' 실업률 등 고용시장의 실태를 보여주는 다양한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9.6%의 실업률은 일할 의사가 있고, 조사 직전 4주간 활발하게 구직활동에 참가했으나 구직에 실패한 사람들만을 실업자로 간주하는 이른바 '공식실업률'이다.
일자리 이동이 잦은 미국의 고용시장 특성상 공식실업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한 번 해고된 사람이 다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게다가 'U-6' 실업률은 구직활동을 중단해 경제활동인구에서 아예 제외됐거나 전업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시간제 근로자로 남아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실업률로, 이 실업률이 공식실업률의 두 배에 가깝다는 것은 고용의 질도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WSJ>는 "공식 실업률과 실질 실업률이 크게 차이가 난 것은 시간제 근로자의 수가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됐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지만, 경기침체 이전의 일자리 수준에 못 미치는 일자리들이 많다는 것이다.
중간 계층 일자리 급감, 저임금 임시직 급증
앞서 <뉴욕타임스(NYT)>도 "금융위기 이후 고용사정이 나빠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어렵게 새 일자리를 찾았지만 과거와 같은 수준의 임금은 받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수천 억 달러의 재정지출로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저임금의 단순 임시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랜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하고 높은 임금도 받을 수 있는 일자리 증가보다 단순 서비스 노동을 필요로 하는 저임금 일자리가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일자리 양극화 현상은 악화되고 있다. 중간 정도의 기술에 중간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는 점차 사라져간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일자리 양극화는 금융위기 이후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MIT 대학 노동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토 교수는 저임금 일자리가 8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90년대 들어 속도가 붙고 2000년대 들어 급증한 반면, 일반사무직, 조립라인 노동자나 기술공과 같은 일자리는 많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미국에서 중간 계층의 일자리가 급감하고, 금융위기를 계기로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일자리 양극화는 소득 불평등을 더욱 부추긴다. 그 결과 소비로 지탱한다는 미국 경제에서 소비수요의 주체가 될 여력을 가진 노동자 가구가 감소하고 있다. '세계의 소비시장' 역할을 떠맡아온 미국의 내수가 위축된다는 것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경제가 우려할 사태다.
미국의 내수 위축, '세계적인 더블딥' 초래 우려
불길한 것은 '금융위기 전문가'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을 갈수록 높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까지 포함한 세계적인 '동반 더블딥'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전개과정까지 정확히 예언해 세계적인 스타 경제학자가 된 루비니 교수는 3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경제 포럼에서 "미국의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노동시장이 매우 취약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면서 "미국과 일본은 물론 상당수 유럽국가 등 선진국들에서 '더블딥'(이중침체)이 발생할 위험이 상당히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루비니 교수는 "불안전 고용상태에 있는 근로자 등을 포함할 경우 미국의 실업률은 거의 17%선에 이른다"면서 "미국에서 더블딥이 발생할 확률은 40% 이상이며, 설혹 미미한 성장이 이뤄지더라도 사실상 경기침체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의 경고는 사실상 대책도 없다는 진단이 곁들여져 더욱 암울하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실업률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민간 부문에서 매월 15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돼야한다.
또한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향후 3년간 매월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그만한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루비니 교수의 지적이다.
이같은 진단은 국제금융계의 석학으로 최근 금융위기의 역사를 고찰한 책을 펴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금융위기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에서 미국의 금융위기도 예외가 아니다"는 진단을 연상케 한다.
로고프 교수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10년 넘게 판 구멍이며, 여기에서 빠져나오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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