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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역사를 되풀이 하려는가

[한반도 브리핑] 한미 군사훈련, 감정적 만족 넘어서는 비용 치를 것

지난 25일부터 동해에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일명 랩터라 불리는 F-22 최정예 전투기, 그리고 이지스 구축함 12척 등이 참가하고, 주한미군의 주력기인 F-16,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한국의 독도함 등이 투입되는 한미 연합 해상훈련 '불굴의 의지'가 진행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에서 예정된 훈련이 동해로 옮겨지긴 했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기는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반발은 물론 '핵 억제력 강화'와 '물리적 보복 성전'까지 외치는 북한의 반발은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더욱이 미 항공모함에 일본 자위대 장교가 탑승해 훈련을 참관한다고 하니, 한-미-일 군사동맹이 점차 완성되어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신냉전'이 도래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불안정한 정전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 60년 가까이 남북은 물론 주변국을 포함해 냉전의 대립체제는 한반도의 분계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20여 년 전 냉전 해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반도의 분계선은 군사적 적대 구조를 재생산하며 유지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냉전의 유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군사적 긴장 앞에서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 역사적 시간 속에서 지금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본다면, 그저 '냉전의 일상'일뿐이며 나아가 '분단의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직도 우리 스스로가 '낡은 패러다임'에 익숙한 채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있는 단단한 속박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지금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동맹의 강화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북한 체제를 흔들고, 나아가서는 중국까지 포함해 동북아시아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와 한국 정부 대북정책의 지향점이 숨어있다.

문제는 이러한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수 십년 간을 반복해 온 '낡은 패러다임'의 전형이며, 실패한 역사의 되풀이라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모습은 지난 20여 년 동안 보아온 익숙한 풍경이며, 훈련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유와 의도, 그리고 숨어있는 목적 역시 낯설지 않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군사적 압력과 금융 제재 등을 통한 경제적 압박, 주변국의 북한 포위·고립, 북한 체제의 동요와 흔들기, 결국에는 북한 체제의 변화 혹은 체제 전환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논리적 설명과 주장은 지난 20여 년, 더 멀리는 지난 60여 년간 지속되어 왔던 것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제제와 압박을 통해 북한 체제에 압력을 가하고 그를 통해 체제의 변화를 꾀한다는 목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한미 연합훈련 '불굴의 의지' 둘째날인 26일 동해상 미 해군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관제센터에서 미군이 항모갑판위의 항공기 현황을 파악하며 항공기 입출항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낡은 패러다임의 속박은 북한 체제에 대한 압박을 통한 변화나 체제 전환에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0년간의 '북·미 갈등'과 상호 적대 정책의 반복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면, '천안함 사건' 이후의 우리의 처지와 우리 주변의 상황 또한 냉전의 패러다임과 유사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유엔에서 종결되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마저 '대화와 협상'과 한반도의 평화에 방점을 찍은 성명이 발표되면서 한국의 외교는 '실패'로 결말이 났다. 단지, 한국의 외교가 '빛나게' 성공한 것이 있다면 한미동맹의 강화와 일본까지 참여하는 군사훈련을 얻어낸 것뿐이다.

중국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러시아마저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보고서를 내면서 전통적인 미일동맹에 올라앉아 미국과 일본만을 쳐다보는 외교적 초라함을 보여줬다. 이마저도 불과 20여 년 전과 유사하지 않는가? 한국과 미국이 한편이 되고, 북한과 중국이 한편이 되는 현재의 대립 구조는 과거 세계가 냉전으로 갈라져 있을 때의 모습과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과거와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미·중간 '신냉전'까지 운위되지만 미·중의 대결과 갈등이 구조화되기 어렵고, 한·중 사이의 무역 규모는 이미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더 커져버렸다. 또한, 한국인의 해외 여행지를 보면 중국이 약 36%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미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있다.

따라서 지금을 '신냉전'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거니와, 그러한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에 못 미치는 인식의 문제는 분명 지적되어야 한다. 세계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둘러싼 인식과 그에 기반한 정책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분명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의 문제라 할 것이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낡은 서랍에서 낯익은 수법을 다시 꺼내어드는 무능력의 표현이라 해야 할까?

어차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미국에 의한 대북 금융 제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북한은 강력 반발할 것이고, 이미 공언한대로 '3차 핵실험'의 모험까지 우려된다. 다시 한 번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으로 요동칠 것이며, 주변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11월로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와 서울 G-20 정상회의, 9월로 예정된 북한의 당대표자회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공방이 아울러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희망하는 대로, 그리고 미국이 그에 호응해 강경한 대북정책을 실시했음에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면? 과거 부시 행정부 시절 경험했던 것처럼 다시 화해와 협력의 정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이 역시 익숙한 20년의 낡은 반복이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핵 무장력은 강화되었고, 한국과 미국의 강경책은 보다 더 왜소화되지 않았는가?

지난 20여 년 간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인해 전쟁의 위기를 몇 차례 넘겨왔다. 전쟁 위기에서 대화와 타협, 다시 전쟁 위기를 반복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간은 그나마 남북관계가 북미간의 위험한 충동을 어느 정도 제어해왔고, 2번의 핵실험이 있었지만 큰 위기 없이 헤쳐 올 수 있었다. 또한 6자회담에서 우리의 발언권도 높아졌고, 그에 맞는 국제적인 외교력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외교로는 더 이상 달라진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역사는 역사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에게만 반복될 뿐이다. 실패한 역사로부터 응당한 교훈을 찾지 못하면 또 다시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낡은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북 강경책과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의한 군사훈련과 제재가 당장의 감정적 만족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더 많은 양보와 비용을 요구했다는 것 역시 오래지 않은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부디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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