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정으로 볼 때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우리 정부의 외교 공세는 이번 주까지만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반면, 6자회담 재개 쪽으로 가는 관련국들의 움직임은 이제 조금씩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7월말에 한다는 동해 한미 합동훈련은 사실상 천안함 사건 마무리를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천안함 의장성명이 나온 뒤에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나온 북한의 입장 표명을 보면 천안함 사건 이전과 이후에 변화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해제해야 6자회담에 나간다는 전제조건을 뺐다는 겁니다.
북한이 스스로 제재 해제 요구를 내려놨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과 중국간에 긴밀한 협의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고, 미중간에도 유사한 논의를 진행한 끝에 그런 북한의 입장 변화가 나왔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 미북간에도 어떤 형식, 어떤 수준으로건 직·간접적인 물밑 조율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5월 26일 서울에서 했던 발언 속에는 이미 그런 가능성이 묻어 있었어요. 바로 이틀 전(5월 24일)에 한국이 천안함에 대한 독자적인 대북 제재 차원에서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가 여러 가지 조치를 본격 추진하던 시점에 클린턴 장관이 왔는데, 천안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손을 들어 주는 척 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강조했습니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에서 바로 온 게 아니라 베이징에서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하고 서울에 왔어요. 클린턴 장관의 발언 속에는 천안함 사건을 마무리하고 6자회담으로 가야 되는데 한국 정부가 너무 발목을 잡는다는 일종의 짜증도 묻어 있었어요. 또 천안함 문제로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가할 일은 없다는 뜻도 있었습니다.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과 관련된 논의를 어떤 수준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미 결정을 했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 드라이브를 걸고 북한이 잘못을 시인·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6자회담을 열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왔습니다.
그 입장이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실무적인 판단에서 나온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외교·안보라인에서도 정치적으로 문제를 보는 사람들도 있고, 국제정치 그 자체를 냉철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직업 외교관들의 판단은 아니었다고 봐요. 외교 장관은 강하게 얘기하고 다닐지 몰라도 실무자들은 우리 정부의 뜻대로 될 수 없다고 봤을 겁니다.
6.2 지방선거에서 천안함이 한나라당에 역풍으로 작용했지만, 그래도 우리 정부는 6월 4일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면서 대대적인 대북 제재 국면이 올 것처럼 바람몰이를 했어요. 여당이 선거에서 참패를 해서 그런 바람몰이의 용도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6자회담 국면으로 빨리 올라타려는 움직임은 안 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임진강 상류 댐 방류 통보의 의미는?
18일 북한이 임진강 상류 댐 방류를 사전에 통보해 왔다는 건 그냥 흘려보낼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거기에 대남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남쪽에서 군남댐 공사가 끝났기 때문에 북쪽에서 통보를 안 해도 별 문제는 없어요. 통보 없이 방류해도 작년 9월과 같은 사고가 안 난다는 정도는 북쪽에서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방류를 사전 통보해 온 것은 경직될대로 경직돼 있고, 험악한 말이 오가는 남북관계에서 국면 전환에 도움을 주기위해 작은 배려를 통해 손을 내밀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6자회담 국면으로 갈 경우를 대비해서 남쪽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향해서도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쪽으로 끌고 가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은 성의 표시를 한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냥 흘려버리는 것 같아요. 국토해양부에서는 '우리는 이미 준비가 돼있으니까 북한이 저러는 게 하나도 고마울 게 없다'는 식으로 말했고, 통일부 대변인도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서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어요. 정부뿐만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전문가들도 그렇게 얘기를 합디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무시해버려도 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움직임이 있었어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5월에 초청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북한이 미북관계에 대해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5월부터 시작했다는 얘깁니다. 또 북-유엔사 장성급 회담을 하자고 유엔사가 제안하니까 일단 대령급 실무접촉을 갖자고 북한이 수정제안을 해서 실제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을 의미 없는 걸로 치부해버리고 과거의 입장만을 계속 고수하면 우리 정부는 결국 외교적으로 난처한 상황을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3년 3월 1차 북핵 문제가 터진 후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6월부터는 남북관계가 다 끊어졌는데, 93년 연말쯤 되니까 남쪽에서 내부적으로 초조해하는 경향이 노골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미북간에는 양자접촉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남북관계는 접촉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니까 초조했던 겁니다. 그래서 북핵 해결에 일조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남북간 특사 교환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북한도 거기에 약간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북한은 대화 국면을 조성하거나 관계개선의 시동을 걸려고 할 때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아요. 변죽을 울리기만 하는데 그 본심을 우리가 빨리 캐치해서 한 마디 더 얹어서 반응을 보이면 북도 조금 진전된 표현을 쓰고,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접점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1994년 4월 판문점에서 남북간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을 했습니다. 그때 그 유명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습니다. 그걸로 그 접촉은 소득 없이 끝나고 남북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됐는데... 서울 불바다 발언에 대해서는 당시의 정확한 앞뒤 맥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 난데없이 불바다 발언을 한 것은 아닙니다. 남쪽에서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핵전쟁이 나서 평양이 무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먼저 했고, 그러니까 북쪽에서 불바다 발언이 나온 겁니다.
내 기억으로 그때 북쪽 대표단한테 쪽지가 들어왔어요. 남쪽에서 먼저 핵전쟁 발언을 하니까 자기네 대표도 강하게 대응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겠죠. 남북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과 평양의 지휘부는 각각 회담 상황을 모니터로 보고 듣고 있다가 필요시에는 쪽지를 집어넣습니다. 세게 반격을 하라 던지 회담을 대충 마무리 하라 던지...그렇게 해서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은 파탄이 나고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미북간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6월에 영변 폭격 계획을 흘렸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한국 정부 내의 강경파들은 남북관계가 풀릴 만하면 강한 발언을 해서, 또는 저쪽의 메시지를 무시하면서, 혹은 미국에 마지못해 협조하다가도 막판에 강경 발언을 함으로써 대화 분위기가 파탄 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계속 유연하게만 나갈 수 없어요. 서울 불바다 발언을 전후로 한 상황이 바로 그런 거였어요.
그 때를 거울삼아서, 북한이 임진강 댐 방류를 친절하게도 사전 통보하는 속뜻을 우리가 잘 읽어내고 대응한다면 앞으로 모양새 구기지 않고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찬스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정당, 시민사회단체, 농민단체, 학계 대표들이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통일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 결성 기자회견에서 대북 쌀 지원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강경으로 돌아간 외교장관, 무엇을 원하는가
중·북이 앞장서고 러시아와 미국이 슬그머니 동조하면서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본격화하기 전에 남북은 어떤 식으로건 지금과 같은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6자회담에서 남북의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되면 6자회담의 목적 달성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6자회담 목적이 달성 안 되면 북한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판단입니다. 북한이 회담에서 경제적 지원이나 뜯어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6자회담이 소용없다고 하지만, 6자회담이 안돼서 북핵문제가 해결 안 되면 가장 손해보는 나라는 우리에요.
그러니까 6자회담을 빨리 시작하고 해결 쪽으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할 책임은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정부가 움직이는 걸 보면 그야말로 배짱이에요. 심지어 외교장관은 18일 KTV 인터뷰에서 북한이 요즘 하지도 않는 얘기를 거론했더라고요. 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6자회담을 하자는 것에 대해서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결의안 1874호를 무력화해달라는 요구"라고 해석했던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북한은 요즘 제재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874호는 이미 중국 때문에 작년 8월부터 사실상 솜방망이가 됐어요. 우리 정부는 자꾸 1874호가 효과를 내고 있으니까 북한이 아파서 6자회담에 나올 거라는 희망사항을 얘기해 왔는데, 나중에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을지도 모르는 소리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고위 책임자들은 NCND(부정도 긍정도 안 하고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음)로 가면서 서서히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9일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온 직후 정부 반응을 보면 혹시나 출구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잠깐 들었었는데, 외교부 장관은 다시 옛날로 돌아갔어요. 글쎄 모르죠. 6자회담을 재개하고 싶어 하는 미국을 상대로 협상 카드로 천안함 사건을 쓰려고 그러는 건지...한미 FTA같은 데서 미국하고 딜을 하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있는 건지...
어쨌거나 한미 '2+2 회담', ARF 외교장관 회담을 전후해서 우리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6자회담은 금년 하반기에도 열리기 어려울 거고,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외교안보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 생기리라고 봅니다.
천안함과 6자회담에 대한 미국 쪽 발언의 수위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과정을 추적해 보면, 미국은 북미 양자접촉을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양자접촉을 할 겁니다. 북-유엔사 회담도 일종의 북미 양자회담입니다. 판문점에서 그런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은 판문점에서 그런 자리가 마련되는 틈을 이용해서 평화협정에 대한 복안을 미국이 받아들이기 쉽게 얘기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미국의 발목을 잡으면, 결국 93~95년 미북관계와 남북관계처럼 완전히 별도로 노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물론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우리의 기대를 많이 무너뜨려 왔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건설하겠다고 작년 4월 프라하에서 연설했고, 또 클린턴 장관도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의 우선순위를 높여 주겠다고 3번씩이나 말해놓고도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았어요.
미국이 동맹국과 협의·협조를 한답시고 저렇게 시간을 자꾸 끌면 오바마 임기 내에 북한은 핵실험 또 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거고, 이명박 정부 내의 강경파들은 대책없이 목청을 높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에 6자회담도 못 열고 남북대화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건 햇볕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보수정권이면 보수정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줄여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최소한의 책임도 다할 수 없는 쪽으로 자꾸 가고 있습니다.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북한 붕괴 가능성을 믿고 그러나? 아니면 관성 때문에? 3월 26일 천안함 사건 이후 3개월 이상 유지했던 입장을 갑자기 바꾸는 게 어려워서? 그것도 아닌 것 같고...7월 28일 재보선을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노리는 것 같지도 않고...왜 이러는지 판독이 안 돼요.
MB 정부 '해석의 능력' 남북관계에도 적용하라
거듭 말하지만 정부는 임진강 문제에 대한 북측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진전시켜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논의를 슬슬 시작한다면 자연스럽게 일이 풀려 갈 겁니다.
또 농림부가 재고 쌀 30만 톤을 사료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런 짓은 정말 하면 안 됩니다. 보수적인 기독교 지도자들마저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소망교회의 곽선희 원로목사,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서명에 동참했어요.
그럼 일단 종교계 쪽에서 성명만 내지 말고 사료로 만들겠다는 재고 쌀 30만 톤 중에서 일부를 사서 보내고, 거기에 정부는 못 이기는 척 매칭펀드로 쌀을 좀 더 내준다거나, 그런 식으로 일을 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보면 6자회담 재개 이후 남북관계의 모양이 나쁘지 않게 만들어 두자는 거지만, 그런 전략적 계산을 떠나서, 인도적 차원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는 해가면서 북과의 기싸움도 해야합니다.
북쪽에서 식량이 모자라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숱하게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남쪽에서는 2010년에 남는 쌀을 공업용으로 쓰고 막걸리 만들어 먹고 그래도 남으니까 그걸 사료로 돌려쓴다는 얘기들이 정부 당국자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포 대신 가축들에게 쌀을 주었다는 기록이 남는다고 생각해 봐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겁니다. 그런 결정을 한 분들의 후손들은 자기 조상들을 참으로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또 남는 쌀을 사료로 쓴 다는 게 기정사실화되면 국제적으로도 국격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부가 국격, 국격 하는데 국격이 뭡니까? 동족이 굶어죽는 걸 보고도 남는 쌀을 짐승이 먹는 사료로 만드는 게 높은 국격입니까? 북한 동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6자회담으로 가는 출구를 찾는 정치·외교적인 조치는 그것대로 슬기롭게 할 필요가 있고, 그러면서 임진강 방류 사전 통보처럼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서쪽에서 기미를 보였지만, 그걸 발판삼아 동쪽에 있는 금강산 관광 같은 문제를 논의해 보자고 해야 합니다.
천안함 문제에 대해 북쪽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욕심이에요.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96년 정동진 잠수함 침투 때도 북한은 남한 정부가 아닌 미국에다 대고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식으로 사과했어요. 그것도 사건 발생 100일 만에.
남북관계가 나쁠 때는 북한은 사과, 재발 방지 약속, 책임자 처벌 같은 걸 결코 하지 않아요. 2002년 서해교전 때는 남북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북쪽에서 바로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 와서 자기들이 먼저 쐈다고 시인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할 테니까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중에 문서로도 시인·사과했어요.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거는 건 비현실적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따지고 싶으면 하다못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국장급 회담이라도 하자고 해서 거기서 따지라 이겁니다. 그럼 북한이 어떤 식으로건 언급을 할 겁니다. 자기들과 무관하다고 무조건 부인하는 게 아니라, 조금 진전된 말을 할지도 몰라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이 공격을 했다고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시인·사과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남북이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말을 북한이 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나와서 그런 식의 얘기를 하면 '사실상 시인했다'고 해석해 버릴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명박 정부 5년간 남북관계가 최악이었고,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쌀을 가축한테 줬다는 해괴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정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런 불안한 정세가 11월까지 계속되면 G20 정상회의도 의미가 퇴색돼요. 87년 KAL기 테러는 다음 해에 대통령이 바뀌고 그러면서 유야무야됐지만, 지금 이 정부는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아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만들기 어렵지만, 다행히 G20 정상회의가 있으니까, 그걸 잘 치르기 위해서라도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걸고 남북대화를 하면 국민들도 이해할 겁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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