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김정일 비판하는 김정은을 상상할 수 있나?
필자가 앞선 두 글에서 주장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김정일 위원장이 머지 않은 시기에 사망하더라도 북한에서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약, 세간의 예상대로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권력을 계승한다면, 김정은이 중국-베트남과 같은 과감한 개혁 개방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계승한 데에서 권력의 정통성을 찾고 있는 김정은이 기존 노선을 뛰어넘어 과감한 정책 전환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중국-베트남 수준의 개혁 개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임 노선을 비판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데서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지에 기반해 김 위원장 사후의 북한을 전망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이 김 위원장 사망 직후의 북한 권력은 장성택의 후견 아래 김정은이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중이고 장성택이 지난달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는 등 2인자의 위치를 확고히 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한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를 열어 장성택 국방위원회 위원을 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이는 김정은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오른쪽 두번째 인물이 장성택 ⓒ연합뉴스 |
하지만, 김정은-장성택 체제가 얼마나 견고하게 지속될 지는 미지수이다. 권력은 속성상 나눠가질 수 없는 만큼 김정은과 장성택의 협조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알 수 없고, 일각에서 예상하듯이 강경 군부의 움직임이나 기타 예상치 못한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은 추정의 범주에 속하는 만큼, 더 이상의 추정을 확대시키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 위원장 사후의 북한내 권력구도는 김정은이 다른 세력을 물리치고 3대 세습을 확고히 하느냐, 김정은이 권력을 잃고 다른 사람이 권력을 쟁취하느냐중 하나로 정리될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김정은이 탁월한 권력투쟁 능력을 발휘해 3대 세습을 확고히 한다면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북한에서 과감한 개혁 개방은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정통성을 김일성 김정일을 계승한 데에서 찾고 있는 상황에서, 전임 노선의 과오를 시정하며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현재까지 김정은의 유년시절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 ⓒ연합뉴스 |
반면, 몇 차례의 권력투쟁 끝에 김정은 이외의 다른 사람이 권력을 차지한다면, 북한의 개혁 개방 가능성은 일반적으로 더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과도기적으로 보수 강경 세력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도 있지만, 수령의 정통성을 계승하지도 못한 보수 강경 세력이 경제적 난관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김정은 이후의 새로운 지도자가 안정적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을 추진해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할 필요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정일 사후 북한의 개혁 개방 가능성은 상당 부분 3대 세습의 안정화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의 개혁 개방이 개혁적 리더십의 등장과 함께 가능한 것이라면,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에 대응하는 장기적 플랜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권력 변동에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거의 없는 만큼, 장기적으로 북한에 개혁적 지도자가 등장했을때 우리가 개혁 개방의 주요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남북관계를 관리해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식량이나 보건 의료 지원 등 인도적 대북 지원과 소규모 교류 협력 사업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해,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곳은 남한이라는 인식을 유지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처럼 많은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이 가능한 곳도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천안함 사건을 이유로 남북관계의 상당 부분을 단절한 소위 '5.24 조치'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전면적이고 대규모적인 대북 투자나 지원은 북한에 개혁적 리더십이 등장할 때까지는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왕조적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대규모적인 경제 지원은 3대 세습의 공고화에 기여해 장기적으로 북한의 개혁 개방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이나 개성공단을 통한 북한으로의 현금 유입도 3대 세습의 안정화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지만, 남한의 대북 봉쇄만으로 북한 정권 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면,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거나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확대할 수 있는 사업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
세간의 관측대로 김정일 위원장의 수명이 오래 남지 않았다면, 김정일 이후의 북한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김정일 사후의 북한 상황을 분단상태 해소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북한에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좀 더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분석 하에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비한 대북정책을 차근차근 실행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정책은 단기적인 남북관계의 굴곡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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