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다. 사고 발생 후 거의 두 달 만인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외교·국방·통일부 장관에 의한 일련의 대북 제재 조치가 발표됐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은 한국에 의한 조작이며 자신들과 무관하다면서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단절을 선언했다.
김대중-노무현의 두 정권 때의 협력적인 남북관계는 대결국면으로 바뀌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더구나 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문제도 중국이 한국이 원하는 대북 제재 동참하기 보다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라는 원칙론을 펴는데 그치고 러시아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안이든 의장성명이든 어떠한 형태의 결과를 내놓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한 데 시간은 한국의 편이 아닌 듯하다.
5월 말 이스라엘군이 가자로 향하던 국제 구호선단을 급습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2006년에 신설된 유엔 인권이사회(제네바 소재)는 6월 2일에 열린 긴급회의에서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파견하는 결의안을 찬성 다수로 채택했다. (찬성=32, 반대=3, 기권=9)
표결에서 미국과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반대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이 기권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일의 정례기자회견에서 표결 반대 이유에 대해 모든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는 결의안은 부적절하고 성급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입장을 옹호해왔던 미국의 태도 때문에 지난 1일(뉴욕시간)에 긴급 소집된 안보리에서도 터키 등은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하는 결의안의 채택을 시도했지만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이스라엘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그쳤다.
한국 정부는 6월 4일 박인국 유엔 대사를 통해 천안함 사태를 안보리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공식적으로 제출했지만 한국이 원하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안보리가 처리해야 할 안건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해왔던 미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보리에서의 미국의 정책적 우선순위는 천안함 문제보다 이스라엘 문제에 놓여 있으며, 일본이 2010년부터 다시 비상임이사국이 되었다고는 하나 총리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정권의 명운이 걸린 참의원 선거(7월)를 앞둔 간 나오토 신 정권이 안보리에서 적극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안보리에서 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P5라 불리는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하여 15개 이사국 가운데 9개 국가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비상임이사국은 우간다, 일본, 멕시코, 터키, 오스트리아, 레바논, 나이지리아, 브라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가봉 등 10개국인데, 이들 국가에 대해서 어떠한 외교적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한국 정부가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을 진정으로 원했다면 적어도 5월 20일 조사 결과 발표 직후부터 서울과 뉴욕, 모스크바와 베이징 등에서 가용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했어야 했으며,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안보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도록 요청하고 확답을 받았어야 했다. 또한 전 세계가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는 가운데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이 기권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 이어 6월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대화에서도 천안함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할 것임을 확인하면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했다. 대통령의 대내외적인 호소가 공염불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안보리 이사국 내에서 이미 비공식적인 협의가 시작됐어야 하며, 또한 그 결과가 결의안이든 의장성명이든 이번 주를 넘겨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움직임, 특히 안보리 이사국의 반응과 입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로드맵 없이 외교 당국이 안보리 회부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면 그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