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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수 "우리는 미디어를 이렇게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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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수 "우리는 미디어를 이렇게 이용했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7> 미국은 어떻게 보수화 되었나 ④

"미국의 우향우(右向右): 보수주의자들은 집권을 위해 뉴미디어와 대안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했나? "America's Right Turn: How conservatives used new and alternative media to take power)

몇 주 전 미국 언론사학회 회장 제임즈 맥퍼슨 교수의 연구를 통해 보수 세력이 언론을 장악해서 미국사회를 어떻게 보수화 했는지를 알아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보수화를 위해 자신들이 언론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내막을 폭로(?)하는 책을 냈다. 위에 소개한 긴 제목이 바로 그 책 이름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보수의 아버지"라고 평한 리차드 비게리(Richard Viguerie)와 "보수운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프랭크(David Franke)가 공저한 책이다.

"리버럴은 보수처럼 언론을 이용하지 못할 것"

두 보수주의 선구자들은 보수가 리버럴의 전통 언론 독점을 허물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치기 위해 뉴미디어와 대안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리버럴은 보수처럼 확고한 사명감과 행동력을 가진 열성분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보수처럼 미디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빈정대기까지 하고 있다. 보수가 언론을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했다 해서 의기양양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언론윤리나 언론 보도의 준칙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언론을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남용한 것에 전혀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보수 세력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두 보수주의 선구자들은 1955년을 미국 현대 보수화의 원년으로 치고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1980년을 일단 보수 세력의 목표 달성시점으로 본다. 두 저자에 의하면 1955년부터 60년대에 미국 국민이 뉴스를 얻는 소스는 ABC, CBS, NBC 3대 지상파 방송과 <AP통신>, 신문으로는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같은 주류신문과 지역신문에 국한돼 90% 이상이 리버럴 성향의 매체였다고 말한다. 발행인이 공화당원인 신문도 공화당이나 보수의 의견은 읽는 사람이 극소수인 사설이나 오피니언 지면에서 볼 수 있을 뿐이며 보수 쪽의 불평이나 의견 관련 뉴스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텔레비전에서도 모두 리버럴에 속하는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나 에드워드 머로우(Edward Murrow) 같은 앵커들이 판을 치고 보수 의견은 들을 수 없었으며 라디오에서도 뉴스는 오락 프로그램이 주종을 이루고 해설에서는 보수 해설자도 있었지만 상업 광고가 붙어야 해서 많지 않았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뉴스 미디어의 90 ~ 95%를 리버럴이 독점하고 있는 상항이었으며 이런 현상은 언론을 공산당이 장악하고 통제하는 소련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시정돼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시정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보도의 정확성과 균형이다. 만약 뉴스가 보수에게 불만스럽더라도 그것이 사실이고 균형에 문제가 없으면 불평하기 어렵다. 보수 측이 이 같은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불평했는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수 측은 특히 반공주의를 강조하면서 리버럴 미디어가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과 투쟁에서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직후이고 한국전쟁이 승자도 패자도 없는 휴전상태로 끝난 1955~ 60년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이 심각한데 이러한 보수의 생각과 입장을 반영해주는 언론이 없었다는 것이다. 보수는 2차 대전 승전 영웅의 한 사람인 아이젠하워까지도 친(親)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고 공화당 정권인 아이젠하워 정부도 스탈린과의 협상에서 보수가 바라는 것처럼 강경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노조 활동을 두고도 좌익 어젠더를 따른다고 비난했다.

보수 운동을 조직하는 책, 그리고 잡지의 탄생

보수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s)들은 같은 우익에 속하지만 나중에 "사회"문제를 둘러싸고 갈라진다. 그렇지만 공산주의 문제에 관한한 행동을 같이 했다. 공산주의와 싸우고 정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보수와 자유지상주자들에게는 리버럴 여론을 견제하기 위해서 보수운동의 조직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보수주의에 관한 책을 출판하고 잡지를 창간해서 보수주의 동조자를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40년대에 각광을 받았던 보수주의 고전들이 출판됐다. 로즈 와일더 래인(Rose Wilder Lane)의 <자유의 발견>, 헨리 위버(Henry Weaver)의 <인간진보의 연원> 존 플린(John Flynn))의 <루즈벨트의 신화>, 하이예크(Hayek)의 <노예가 되는 길> 자유지상주의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아인 랜드(Ayn Rand)의 <원천(Fountainhead)>과 <움추린 아틀라스(Atlas shrugged)> 등이 출판됐다. <움추린 아틀라스>는 1991년 의회도서관과 이달의 북 클럽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성경 다음으로 "미국에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를 끈 책이었다

1955년 중도 우익 잡지는 소수였고 수명이 짧았다. 그러나 "지하에서" 보수사상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영웅적 역할을 했다고 두 저자는 자부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잡지를 든다면 <휴먼 이벤츠(Human Events)>와 <더 프리맨(The Freeman)>이었다. <휴먼 이벤츠>는 워싱턴 뉴스레터로 스스로 "미국 시민을 위한 주간 분석"이라고 광고했다. 발행부수는 연 13 500부, 구독료는 연 10불이었다. 이 뉴스레터는 첫 호에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표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공산주의와 싸우는 데 있어서 트루만-마살 팀보다 공산주의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용감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논평해 이 간행물의 강한 보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왕년의 공산주의자가 만드는 보수운동 잡지 <내셔널 리뷰>

하지만 보수를 대변하고 보수운동을 하나로 묶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잡지는 윌리엄 버클리(William F. Buckley)가 1955년 창간한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였다. <내셔널 리뷰>는 규모나 기고가들 면면은 <더 프리맨>과 비슷했지만 보수운동을 개척하고 신생 보수운동이 살아남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은 점에서 그 역할이 달랐다. 57년 발행인을 맡았던 위렴 러셔(Rusher)는 이 잡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새 저널은 투쟁을 각오한 잡지로 안전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단순히 보수 원칙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리버럴에 대적해서 정치전쟁을 감행하는 데 몸을 바쳤다". 보수운동의 역사가 리 에드워즈(Lee Edwards)의 말을 빌리면 "<내셔널 리뷰>는 의견 저널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이었다". 두 저자가 1955년을 보수운동의 원년으로 치는 것도 <내셔널 리뷰>가 보수운동사에서 갖는 비중 때문이다.

<내셔널 리뷰>는 편집자와 기고가가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한 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전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다. 잡지는 전통 보수주의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경제와 반공주의 요소를 조화하려 했다. 그러나 세 요소 가운데 지배적인 것은 반공주의였다. 각자가 개인적으로는 이념적 입장이 어디에 있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반공주의 강조가 보수운동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판단됐었다. 첫째 반공주의는 새 운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묶는 접착제였다. 새로운 대중 운동을 만드는 "비결"에서 "동기를 자극하는 요소"가 우선적으로 중요한데 공산주의 위협은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 요인이었다. 공산주의 문제-더 정확히는 공산주의 위협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을 갈라놓고 당황하게 했지만 보수주의자들을 "운동으로" 묶는 접착제였다.

공산주의와 싸우는 잡지가 왕년의 공산주의자들로 필자나 편집진이 구성됐다는 것은 흥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시절에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던 대다수 지식인이나 작가들은 "행동" 지식인, 작가들이었고 그들이 진영을 바꾼 다음에도 그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셔널 리뷰>는 전국적으로 공산주의를 패배시키는 운동의 기관지로 행동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셔널 리뷰>는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전략, 전술, 사고방식을 또 하나의 특징으로 삼았다. 이들은 권력 장악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되는 "우익" 또는 "좌익" 이탈주의자들을 축출함으로써 권력으로 향하는 직선 운동을 유지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뜨거운 문제'와 '떠드는 계급' + '언론'

보수주의자들은 리버럴과 싸워 보수운동을 구축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로 삼는다. 리버럴이 장악한 미디어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뉴미디어, 대안 미디어를 이용했고 보수운동 조직도 만들었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에는 몇 단계가 있었다.

우선 행동하게 만들 동기가 있어야 한다. 동기부여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 동기를 자극할 '뜨거운 문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지근한 쟁점으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떠한 문제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나? 중대한 문제를 지배층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들 수 있다. 국가 안보 위협이 이런 문제에 속한다. 절박한 생활고나 국민을 양분하는 양극화도 이런 문제에 속할 것은 물론이다. 권력층이 너무 부패하거나 권력남용이 묵과할 수준을 넘는 것도 '뜨거운 문제'이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부패나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천안함 사건 처리도 당연히 '뜨거운 문제'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다음은 대중운동이다. 대중 운동은 갑자기 터지는 것이 아니다. 헌신적인 전위 계층이 있어야 한다. 지식인 대학생, 언론처럼 '떠들어 대는 계급'이 이런 전위 계층에 속한다. 성직자들이 무서운 '떠드는 계층'임은 말할 것도 없다. MB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가톨릭 신부와 불교 스님들의 항의를 무시하다 당한 것은 그의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언론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보수 세력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대안 미디어 구축이었다. 이 부분은 다음 회에 상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직접메일이라는 뉴미디어를 통해 보수운동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고 주류 미디어에 눈치 채지 않으면서 보수 조직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보수 세력은 언론을 우리가 지금까지 아는 정상 언론이 아니라 보수운동 반공운동을 벌이기 위한 도구로서 입지를 구축하고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언론에 본받아서는 안 될 반면교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언론이 미국 언론이 하니까 우리도 따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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