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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느낀 답답함이 헛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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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느낀 답답함이 헛것은 아니었다"

故 서동만 교수 1주기 추모식 및 출판기념식 열려

북한 연구자이자 통일운동가였던 고(故) 서동만 교수 1주기 추모식이 3일 저녁 연세대에서 열렸다.

서동만 교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인 이날 추모식에서는 고인의 저작집 <북조선 연구>와 추모집 <서동만>이 고인에게 헌정되었다.

또한 추모식에서는 서 교수의 일본 유학 시절 스승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사회 활동의 멘토였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친구이자 동지였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추모의 말을 전했다. 부인 김진영 연세대 교수는 유족 대표로 인사를 했다. 이들의 추모사를 모았다.


■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서동만 씨.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동북아시아는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동북아의 정세는 더 악화됐고, 남북관계는 천안함 문제로 극도로 긴장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냉정한 분석이 있었다면 한국은 물론 일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빈자리를 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도쿄대에서 열린 조선학 포럼에 초청되어 '도쿄대에서의 북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신이 도쿄대에 유학을 와서 대학원에서 내 지도를 받았던 것을 계기로 내가 북한 연구회 세미나를 시작했던 일을 소개했습니다.

▲ ⓒ창비
도쿄대에서의 북한 연구는 사실상 나와 당신의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나는 청중들에게 당신의 책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를 보여 주고 북한에 대한 매우 표준적인 연구로, 북한 연구 역사에 남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 당신과 함께 지낸 기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저는 올 2월 <일러전쟁>이란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의 맺음말에 암 투병 중이던 당신이 나를 인천으로 안내했던 일에 관해 썼습니다. 그때 우리는 맥아더 동상 아래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젊은 당신이 없고 노인인 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부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몫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서동만 씨 안녕히 가십시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서동만 교수에 관한 책이 두 권 나왔습니다. 하나는 추모의 글을 모은 책이고, 또 하나는 서 교수의 전공인 북조선 연구에 관한 글을 모은 책입니다. <북조선 연구>는 2부로 나눠져 있는데 서 교수의 두 가지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1부는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적인 학자로서의 성실하고 치밀하고 탄탄한 모습을 보여줬고, 2부는 그런 공부를 바탕으로 많은 학자들과 참여하고 사회에 참여하면서 나온 글들이었습니다. 2부의 글들은 프레시안과 창비를 통해 발표된 것들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저와 여러 가지 교류가 있었습니다.

<북조선 연구>를 보니 1부의 학자적 내공이 있어서 2부의 좋은 글들이 나올 수 있었고, 2부에 나온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1부의 학문적 정진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부에는 '남북이 함께하는 2008년 체제'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남과 북이 각기 다른 궤적을 그려 오면서 남은 남쪽 식으로 북은 북쪽 식으로 시대구분을 했는데 유일하게 근접했던 지점이 6.15 공동선언 이후 '6.15시대'라면서, 2008년부터는 남도 새로워지고 북도 새로워지고 둘이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뜻으로 2008년 체제를 구상했습니다.

▲ ⓒ창비
그 구상이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고, 서 교수도 충분히 알고 갔습니다. 그러나 2008년 체제의 취지 자체는 지금도 살아 있다고 보고 늦어도 2013년에는 그가 2008년 체제로 구상했던 것을 출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꼭 정권교체의 문제만도 아니고, 북에서 2012년에 강성대국을 하겠다고 하니 그걸 계기로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 국민들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선거에서의 승리만이 아니고 북조선 사회에 대한 분석도 그렇고, 남북관계에 대한 분석과 대응에서도 서 교수가 보여준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자세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갈 때 2013년쯤에는 서 교수가 2008년 체제라고 불렀던 한반도 전체의 새 시대가 될 수 있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서 교수의 유지를 잇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작년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서 서동만 교수가 세상을 떠났는데, 마음의 정리가 잘 안 됐습니다.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서 교수도 병으로 돌아가신 그 깊은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평화·통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길 원했고 그것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이 있었고, 나도 거기에 같이 동참했던 사람으로서 정리가 잘 안 됐습니다.

오늘 동영상으로 서 교수를 다시 보니 마음이 더 아프고 슬퍼집니다. 작년에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그렇습니다. 죽음 때문에 헤어지는 건 견디기 어려운 슬픔인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서동만 교수가 돌아가신 후 1년간 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했는데, 죽음을 통해 우리가 살아서 더 깊은 관계로 만나게 되고 삶의 의미를 더 깊게 정리하고 드높이게 만드는 그런 삶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창비
삶과 죽음을 넘어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순결하게 헌신했던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역사란 걸 만드는 것이고, 그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참 많이 외면당하고 사실 실패했습니다. 서 교수도 많이 아팠고 저도 아팠는데, 그 의미가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그 과정에서 겪은 아픔이 빛나는 의미를 획득하는 역사 속에 우리 삶이 놓여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행히 어제 선거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무력해지고 민주주의가 허망하게 무너지고 남북관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헛 게 아니었다는, 서 교수가 아팠고 노 대통령이 몸을 던진 것이 헛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서 간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우리 가슴속에서 공유하는 따뜻하고 뜨겁고 버릴 수 없는 순수한, 삶이 슬프지만 가야만 하는 것을 계속 나눠갔으면 합니다.

■ 김진영 연세대 교수

추모집 제목에 써 있는 '서동만'이라는 자필 표지를 보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몸이 불편하신 동만 씨 어머님은 그 책을 받고 매우 기뻐하면서 하늘나라에 가서 읽어줘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은 서동만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를 위해, 특히 저와 딸 화열이를 위해 필요했습니다. 책을 만드는데 수고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에 가끔 나가지만 영생, 불멸, 하늘나라 같은 말을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믿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은, 서동만이란 사람이 나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날씨가 아주 좋다거나 아름다운 음악이 들린다거나 세상이 조금이라도 살만하다고 생각될 때 그와 제가 함께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할 때는 그의 부재가 느껴져서 슬픈 게 사실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저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습니다. 후배 혹은 제자로서 선생님들로부터 추모사를 듣는 것은 면목 없는 일인데, 1년이 지나서도 다시 추모사를 해 주신 와다 하루키, 백낙청, 김학준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들은 첼로 연주는 사실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서 교수와의 결혼을 신고·자축했던) 부암동에서 들었던 곡입니다. 첼리스트 김해은 씨가 직접 같은 곡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 음악을 통해 처음과 끝이 이어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은 끝에 대한 약속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서동만과 제가 시작함으로써 이뤄졌던 그 약속을 다만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

서동만의 마누라답게, 화열이는 딸답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내 마누라답다'는 말이 저에 대한 가장 큰 찬사였고, 지금까지 힘이 되는 말입니다. 여기 오신 그 어떤 분들보다 그의 삶에 최후에 진입했던 제가 이런 말을 하게 돼서 슬프고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를 인정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가족과 선생님들이 계셔서 이런 인사를 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고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서동만 교수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론을 전공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의 지도 아래 쓴 박사 학위 논문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1945~1961>는 북한 연구의 한 획을 그은 역작으로 평가된다.

95년 귀국한 서동만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거쳐 2001년 상지대 교수가 됐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한 후 2004년 상지대로 복귀했다.

그 후 <프레시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집필과 연구 활동에 몰두하던 그는 2009년 6월 4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냉철한 시각의 진보주의자, 치열하고 엄격했던 학자, 객관적으로 북한을 바라보고자 했던 통일운동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추모집은 와다 교수, 백낙청 교수 외에도 최명 서울대 명예교수, 김학준 동아일보 고문, 조성우 민화협 공동의장 등 서 교수를 그리워하는 선후배, 친구, 가족들의 글로 채워져 있다. 저작집 <북조선 연구>에는 95년부터 2007년까지 발표했던 학술논문과 칼럼 중 고인의 연구 방향과 성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 엄선 수록되어 있다.

▲ 추모집 <서동만, 죽은 건 네가 아니다>(삶과 꿈 펴냄) 와 저작집 <북조선 연구>(창비 펴냄) 표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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