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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공동조사 요구,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인가?

[김민웅 칼럼]<52> 2008년 3월, 이명박 "남북기본합의서 가장 중요하다" 발언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자' 라고

다음은 지난 2008년 3월 27일 중앙일보 사설의 전문이다. 문단을 나누어 읽어보기로 하자. 우선 제목은 <'기본합의서' 복귀 옳다>로 되어 있다. 이 사설이 나가기 바로 전 날인 3월 26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되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발표된 이후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것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기본합의서"라고 말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공동선언을 기본합의서의 하위개념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는 "과거식의 남북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화만을 위한 대화' '무작정 지원'은 이제 거두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제대로 방향을 잡은 대북 접근이다. -

이렇게 중앙일보가 남북 기본합의서를 평가하고 주시한 까닭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가치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논리 위에 중앙일보 사설은 다음과 같이 남북 기본합의서의 완벽성을 거론하고 있다. 근거가 되는 문서의 가치를 최대한 강조한 것이다.

-기본합의서는 남북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을 위해 양측이 취해야 할 조치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상대방 체제의 인정·존중, 내부 문제 불간섭, 무력행사 금지 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 자유왕래·접촉 등 그 내용이 거의 완벽하다.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의 장전으로 간주돼 왔다. 발효 당시 북한도 이를 높게 평가했다. 따라서 남북이 기본합의서를 토대로 주고받기 협상을 해왔다면 남북관계가 보다 진전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

완벽한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이 구체적이고 체제 인정부터 시작해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무력이 아닌 평화적 해결까지 포함된 사안이라 "거의 완벽하다"고 짚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이 사설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주고받기"라는 방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주축이 되었다는 식으로 논지를 펼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이런 대목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기본합의서는 실종됐다. 그 대신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수용하고, 지원하려는 정책이 추진됐다. 대북 대화의 목표가 없었다. 대화 자체에 목을 맸고, 대화가 끊어지면 큰일 난 것처럼 허둥댔다. 대화의 주도권은 북한이 쥘 수밖에 없었다. 6·15나 10·4 공동선언은 이런 잘못된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특히 이들 선언에 들어 있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용어에 숨어 있는 '남·남 분열 전술'을 외면했다. 이러니 일방적 대북지원만 있지,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은 요원했던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나 10.4 공동선언이 이 사설에서는 잘못된 정책기조의 산물로 격하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질타한다. 그와 함께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이 "남-남 분열전술"이라고 비판한다. 결론으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향후 남북대화의 준거 틀은 기본합의서가 돼야 한다. 6·15나 10·4 선언 내용은 이 틀 안에서 선별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문제는 북한의 반발이다. 이들 선언의 이행 여부를 주시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굴복해선 안 된다. 설사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동안 잘못된 대화방식은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북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

남-북간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남북 기본 합의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6.15 공동선언이나 10.4 선언도 다 이 틀 속에서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기본합의서가 1992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이후의 남북관계 발전을 반영하는 6.15 공동성명이나 10.4 공동성명의 가치를 하위개념으로 보는 시각은 역사적 사고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쟁과 합의서 위반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의 이 사설은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근거로 내세웠고 그에 따른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차적으로 발언의 사실여부가 문제 되지 않고, 남북 기본합의서의 가치를 이토록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 남북기본합의서의 문제해결방식에 동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6.15 공동성명이나 10.4 공동성명에 대한 존중과 의지가 없는 정권에서 그나마 남북 기본합의서는 중시한다니 다행스럽다.

따라서 남과 북 사이의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이 사설의 제목대로 "'기본합의서' 복귀 옳다"는 주장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 남북기본합의서가 천안함 정국에서 다시 주시되고 있다.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면서 검열단 파견이라는 방식으로 공동조사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문제는 북한의 반발이다."라고 했는데,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을 둘러싸고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른 문제 해결방식에 북한이 반발하기보다는 도리어 그에 따른 문제 해결을 제의하고 나오지 않았는가?

자, 그렇다면 어찌 할 것인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남북 기본합의서가 가장 중요한 준거틀이라고 한 대통령의 2년 전 발언은 망각되어도 좋은가? 아니면 이번 경우는 남북 기본합의서 적용의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또는 2년 전 남북 기본합의서를 중시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남북 기본합의서에 대한 인식이 그간 달라졌다고 할 것인가? 그런데 2008년 3월의 발언 이후 이명박 정권은 단 한 차례도 남북기본합의서 유효성을 부인한 바 없으며 그 가치의 소멸을 인정한 바도 없다.

그러기에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유엔헌장, 정전협정과 함께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을 들어 북한을 비난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유효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 위반사안은 9조, "상대방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남북합의서 위반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먼저 들고 나왔고, 이에 대해 북한이 대답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위반했다고 남쪽이 주장한다면 그 기본합의서 문제 해결방식으로 이를 처리하자는 논리를 내세웠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과 북이 모두 지켜야 하는 합의

남북기본합의서 기본합의서 제2장 10조는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되어 있으며, 부속합의서 제2장 8조는 "남과 북은 어느 일방이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이 합의서를 위반하는 경우, 공동조사를 하여야 하며 위반사건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문서에 기록된 사실의 문제다.

그렇다면 천안함 사건은 현재 남과 북 사이에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남은 북의 소행이라며 증거제시를 했으며, 북은 남의 모략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남과 북 사이에 진상규명을 놓고 의견대립과 분쟁사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만일 북의 소행이 사실이라면 이는 부속합의서 2장 8조가 규정한 바대로 합의서 위반사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동조사와 책임규명이 있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따라서 공동조사는 우리가 먼저 요구했어야 하는 사안이다. 아닌가?

한편, 북한이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른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면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게 되는 셈인가? 아니면, "좋다, 한번 해보자, 결정적 증거가 있는데 어딜 발뺌을 해? 보낼 테면 보내봐."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북한의 검열단 파견 수용요구에 대해 김태영 국방장관은 3월 21일, "언어도단이고 적반하장"이라며 "(검열단 파견은) 강도나 살인범이 현장을 검열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남북 기본합의서는 왜 필요한 건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조항은 왜 있는 것인가?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남과 북 사이에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노력하면 어떻게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무력충돌, 응분의 댓가, 전쟁불사 등의 험악한 말로 한반도의 상황을 군사적 긴장과 대결국면으로 끌고 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남북기본합의서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작동되는 것으로 그 가치를 현실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데도 이를 부인하면서까지 대치상태를 심화시키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북쪽의 반박 이전에, 이번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을 놓고 이명박 정권과 군이 내놓은 공식발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거부하기 위한 의도적 불신이 결코 아니다. 한나라당이 걸핏하면 "북의 대변자"냐고 윽박지르듯, 북의 입장을 어떻게든 옹호하기 위한 논리도 아니다.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 과정에서 보인 이명박 정권과 군의 자세가 국민적 설득력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납득되지 않는 군의 모습

한번 잠깐만이라도 돌아보자. 사고 발생 이후 보인 정부와 군의 갈팡질팡과 계속 번복된 해명, 과정상 제기될 수 있는 의문에 대해 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식으로 (북의 기습이라고 한다면 이미 경계망이 뚫린 것으로 명예는 실추될 대로 되었는데 뭐가 더 실추될 명예가 남아 있다고 여겼을까?) 유언비어 유포 등 일부 인사들을 공안사범으로 고발해버린 일, 46명의 젊은 병사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는데 책임지는 자 아무도 없는 뻔뻔함, 이런 모습에서 우리 사회는 이건 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경계실패와 병력손실에 대한 엄단이 전혀 없는 점이다. 전방의 초소 하나 뚫려도 사단장의 운명이 바뀌는 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더더군다나 당시 군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이었다. 시간과 좌표를 비롯해서 각종 보고가 1퍼센트의 오차도 없이 정확을 기해야 할 상황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군의 후속 처리치고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을 지경인데다가, 책임지고 머리 숙여 사죄를 해도 모자를 판에 있는 이들이 머리를 빳빳이 들고 북의 소행을 마침내 입증했다며 자랑스러운 듯 한 얼굴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럴 진데 그런 모습의 군과 정부의 발표를 두고 아, 그랬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믿는가? 오죽하면 KBS는 5월 22일 저녁,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과 관련해 정부발표를 그대로 따라 남북관계를 대치국면으로 몰아가려는 인사들만 모아놓고 비판적 견해는 일체 묵살해버린 체 일방적인 논조와 주장만 내세웠겠는가? 문제제기를 두려워 한 것인가?

정부발표 믿을 의무 없고, 문제제기 권리 있다

국민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을 의무가 없으며, 의혹이 들면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이미 독재 권력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불법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파괴하는 첫 걸음이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의 진상에 대해 정말 속 시원히 알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문에 대한 이명박 정권과 군의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다. 의문을 제기한 사람을 공안사범으로 검찰이 다루는 것을 보면서 공식발표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위험해지는 사회를 감지하게 된다. 이건 "합리적 의심"에 근거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의 권리를 봉쇄해버리는 제도폭력이다.

만일, 북이 서해 인근에서 침몰된 자신의 초계함이 남측의 어뢰 때문이라며 그 책임을 남쪽에 돌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 것인가? 우리가 전혀 책임질 이유 없는 사태에 대해 북이 책임을 요구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지라고 한다면 그건 명백한 도발이자 전쟁으로 가는 길을 여는 수순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에 만일 평화적으로, 공정하게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무대와 장치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곧바로 전쟁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옳겠는가?

월드컵 축제가 열리는데...

혹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천안함 정국으로 지방선거를 뒤덮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보정국의 한계는 뻔해진다. 그러니 부디 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적 오판에 국제적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월드컵 축제와 군사적 긴장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에 더하여 천안함 사건을 놓고 중국과의 긴장지속이 얼마나 갈 수 있다고 믿는가? 그런 식으로 자꾸 북한을 중국의 품에 안겨주어야 속이 풀리겠는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북을 범인으로 놓고 일방적 증거제시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북의 문제 제기 이전에, 우리 사회 내부의 의문 해소도 아직 깨끗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북이 남북 기본합의서를 기초로 공동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한 무대 아닌가? 중국을 빼놓고 국제사회를 설득시켰다고 자평하는 그 치밀한 논리와 과학적 증거, 객관적 자료를 통해 북을 옴짝달싹못하게 할 수 있는 실력발휘의 기회를 놓치면 되겠는가? 더군다나 이 김에 남북기본합의서를 가장 중요한 문서로 만들 수 있는 현실적 계기도 마련할 수 있지 않은가?

2008년 3월의 대통령 이명박의 발언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 말이 진실임을 입증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명백해질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합의 위반 시 공동조사와 책임규명. 재발방지를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이 친북좌파라는 낙인이 찍히는 일이 된다면, 대통령부터 그 낙인을 먼저 받아야 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발표된 이후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것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기본합의서"라고 말했다.-

(2008년 3월 27일/중앙일보 사설)

읽어볼수록 자꾸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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