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A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사상 최대의 구제금융을 최종 승인하기 위해 모인 7일 유로존 정상회의는 '유로화 사수 의지'를 선언하는 자리로 변질됐다.
▲ 8일 판롬파위 유럽연합 상임의장과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이 유로화 사수 의지를 밝히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이날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지금 우리는 유로화를 겨냥해 전 세계적으로 조직화한 공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유로존이 단합해 대응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유로존은 현재 비상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해 같은 인식을 보여줬다.
이에 따라 유로존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유로존 회원국은 물론 유럽연합(EU) 이사회, EU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의 안정을 담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full range of means)'을 사용한다는 데 합의했다.
헤르만 판롬파위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수단을 쓰기로 합의했다"라는 대목을 서너 차례나 강조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 역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여러 개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할 것"이라면서 투기세력의 유로화에 대한 공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EU의 의지를 드러냈다.
EU 차원 유로존 사수 대책 나올까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로화는 EU의 핵심적 요소로서 투기세력에 내맡길 수 없다. 우리는 앞선 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단일통화)을 다른 자들이 망쳐놓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도 "우리는 9일 밤까지 유로화를 지키고자 확실한 방어막을 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EU 차원의 이러한 '유로화 사수 의지'는 9일 저녁 열릴 긴급 재무장관회의에서 어떠한 결과물이 도출될 것인지, 금융시장이 10일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EU는 이 회의에서 ▲회원국 구제기금 조성 등 항구적인 재정안정 메커니즘 구축 ▲신용평가회사 등 금융시장 참여자에 대한 규제 강화 ▲회원국 재정건전성 감독 강화 등 구체적인 논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크루그먼 "그리스 사태, 생각할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유로존의 붕괴를 경고하는 비관론이 갈수록 세를 불리고 있다. 특히 유로존이 통화동맹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그리스 사태를 어떡해서든지 해결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달라진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크루그먼 교수는 'A Money Too Far'라는 칼럼에서 "그리스 문제는 유럽의 지도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그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의 비극이 부도로 끝날 것이라는 보고 있지만, 나는 이런 관측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갈수록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부도는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과 동반되거나 퇴출 이후에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이 이처럼 비관적으로 보는 유로존의 위기의 핵심은 부채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부재'다. 크루그먼 교수는 단적으로 캘리포니아와 그리스를 비교한다. 부채 문제로만 보면 캘리포니아가 훨씬 심각하고, 그리스는 캘리포니아와 달리 초강도의 긴축 조치까지 의회가 통과시키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재정위기는 크게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그리스 국민들과 달리 캘리포니아 주민들조차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 연방정부가 버티고 있고, 미국 전체의 경제회복 속에서 캘리포니아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는 긴축재정으로 이미 침체에 빠진 경제가 더욱 침체에 빠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부채 위기에 빠진 경제가 근본적으로 회생하는 길은 오직 경제성장력을 회복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유로존에 묶여 있어 환율 조정 등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단이 없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존할 수 있으려면 논리적으로 3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첫째, 그리스 노동자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대대적인 임금 삭감을 감수하는 것. 두번째, ECB가 대대적인 통화팽창 정책으로 국채를 대량 매입해주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그리스 등 재정위기에 빠진 유로존의 실질 부채를 줄여주는 것. 세번째, 유로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 등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나은 나라들이 취약한 회원국들에게 마치 캘리포니아에 대한 연방정부처럼 역할을 감당해주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물론 문제는 3가지 모두 정치적으로 실행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수순은 '생각할 수 없는 방안'뿐이다. 바로 그리스가 유로에서 퇴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하는 방안'이 아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 사태와 비슷한 전개가 된다는 것이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달러에 대해 페그제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상태가 되자 결국 페그제를 포기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아르헨티나 같은 사태가 그리스에서 일어나면 유럽 전체로 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면서 "유럽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훨씬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 능력과 의지를 발휘하지 않는 한, 사태는 그런 과정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부채더미에 오른 회원국들이 많은 유로존의 경우 회원국 하나가 이탈할 경우 연쇄 부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모뉴먼트 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루이스는 미국의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관료들은 유로존이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맹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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