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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외교 파문' 부른 '이명박 외교', DJ에게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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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외교 파문' 부른 '이명박 외교', DJ에게서 배워라

작년 5월 5일 인민대회당, 김대중-시진핑 회담

꼬박 1년 전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서 생애 마지막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2009년 5월 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을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차기 국가 주석으로 거론되는 시진핑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 인내심과 탁월한 지혜, 화해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일을 했다. 나는 6자회담은 반드시 성공하고 북핵은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 문제, 동북아 문제에 대해 좋은 합의를 보았다. 실천만이 문제다. 합의를 실천하면 북한도 좋고 미국도 좋고 6자회담 참가국도 다 좋다. 인내심과 지혜를 가지고 9.19 성명으로 돌아가 실천해야 한다. 중국이 더 한 층의 좋은 방향으로 노력해주길 바란다."

이에 시 부주석은 "중국은 한반도의 이웃, 남북의 공동의 친구다. 중국은 진심으로 남북이 화해·협력하기를 바라고, 중국은 (6자회담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화답했다.

▲ 작년 5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 부주석(오른쪽에서 세번째)을 만나는 장면. 시 부 주석의 왼쪽에는 현재 중국 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서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09년 5월 18일 서울 하이야트 호텔, 김대중-클린턴 만찬

김 전 대통령은 중국에서 돌아온 다음날(5월 8일) 동교동 사저로 찾아온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 중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 18일에는 내한중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만찬을 했다. 이것은 생애 마지막 공식 만찬이 됐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장문의 편지를 작성했다. 클린턴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김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북핵 문제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힐러리 장관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동시에 클린턴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복원을 위해 역할을 해주기를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5월 18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김대중 대통령, <마지막 일기 -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2009년 5월 18일자)

김 대통령은 '메모'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외교문서'라고 표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편지를 전달받고 말했다.

"나의 임무는 2가지다. 첫째는 이 '외교문서'를 힐러리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둘째는 힐러리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2010년 5월 5일 인민대회당, 김정일-후진타오 회담

김대중-시진핑 회담이 있은 지 꼬박 1년이 지난 5월 5일 김정일 위원장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만찬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직 회담 결과가 알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6자회담 복귀 문제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년 전 김대중-시진핑 회담에서 확인된 입장들이 교환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 정부도, 한나라당도, 보수언론들도 '중국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으로 외교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지금의 사태는 한마디로 '외교파문'이다.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 방문 3일전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알려주었는지 정확히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애당초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고에 관한 중국의 협력만을 생각했다. 6자회담 복원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의 협력 문제는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이 대통령의 태도는 국내에서는 통했지만,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한중 외교파문', 2008년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흡사

지금 이명박 정부가 당하고 있는 외교적 수모는 국제외교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일이다. 외교란 '국익'을 추구하는 냉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미국의 부시 정부가 북한의 테러지원국을 해제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일본의 아소 정부는 북핵 선결과 납치자 문제의 해결을 앞세우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빼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일본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테러지원국 문제를 털어 버리고 북핵을 진전시키는 게 미국의 국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중국이 이번에 천안함 사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자신의 국익에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이후 2년 반 동안 6자회담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방관했다. 더욱이 6자회담의 지렛대 역할을 해온 남북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6자회담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남북관계를 유지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중국은 한국 정부에 이런 외교적 결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도, 중국도 이미 한국의 이명박 정부에 기대를 접은 것 같다. 북한과 중국은 6자회담이든, 남북관계든 이명박 정부 임기중에는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천안함 사고를 빌미로 한반도 상황을 대결과 갈등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판단하여 북한과 중국이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영향력이 한강까지 미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이러한 상황이다. 김 대통령은 2007년 가을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해, 미국의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 말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잘 해서 북한으로 진출하면 우리의 영향력이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미친다, 그렇지 않고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대립하고 적대하여 북한이 중국과 협력하게 되면 중국의 영향력이 휴전선, 한강까지 밀려오게 된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이익인지는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북한의 접근에 대해 한미공조로 응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미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슈퍼 파워로 성장한 중국의 입장을 거슬러가면서까지 한국 정부 입장을 지지할지는 모를 일이다.

더욱이 천안함 사고에 대해 워싱턴과 서울의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다. 위싱턴은 한국에서 나오는 북한 관련설에 신중한 입장이고, '대북 군사보복'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의 우선적 대외전략상 고려의 대상도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세계'를 외치고 있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대화는 동북아 안정에 필수적인 미국의 국익이다.

그런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남북관계나 6자회담 문제를 천안함과 연계시키는 방식에 계속 동의할지 의문이다. 중국이 북한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 입장을 끝까지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는 냉전시대의 외교적 사고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국익'은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

천안함을 6자회담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다. 이번 '한중 외교파문'으로 한국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은 크게 체면을 상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제1교역국인 중국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천안함만 내세우며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외교적 고립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제 해법은 분명하다. 천안함 사고를 6자회담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아직 사고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마당에 북한연계설을 전제로 해서 한반도 외교를 망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가 9.19공동성명을 만들어 냈듯이 6자회담을 복원하는 데 한국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다시 잡아야 한다. 6자회담에 대해 미국, 일본 정부와 입장을 조율하고, 중국, 러시아와도 다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중국에게 왕따 당했지만, 만일 한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로 나간다면 6자회담 모든 참가국에 왕따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관계를 더 이상의 파탄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6자회담의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 남북관계는 남북이 한반도 문제의 주인임을 6자회담 참가국에 알려주는 증거였다. 주인이 소 닭 보듯 하고, 오히려 도움을 주려고 하는 나라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누가 도와주려 하겠는가. 오히려 참가국들의 반감만 살 것이다.

6월이면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 된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의 남북관계의 파탄, 6자회담 외교 실패를 인정하고, 대북정책과 북핵정책을 전면 전환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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