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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vs 광개토대왕…일본이 사랑하는 배용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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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vs 광개토대왕…일본이 사랑하는 배용준은?

[모 피디의 그게 모!] '지방 방송'의 설움

스물네 모 - 지역성

모 지역 방송 신입 직원과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다들 첫 사회 생활에 기대감에 들떠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노래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중 한 신입 기자가 자기가 부를 차례가 되자 흥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자자, 다들 지방 방송은 끄시고!"

과연 그 순간 분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기자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고향으로 취업한 경우였는데, 늘 친구들끼리 노래방에서 던지던 농을 아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던진 셈이었다. 하지만 취업 전에는 그 자리의 신입 사원 모두 그 농담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다들 '지방 방송'이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한 첫 순간이었다.

'지역'은 모든 지역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단어지만 '지방'은 서울 중심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지역 방송이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지방 방송'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지역 감정은 '경상도 대 전라도'의 대립이 아니라 '서울 대 비서울'의 갈등이기 때문에, 모든 인프라가 수도 서울 한 곳으로 몰리는 나라에서 지역성이란 거의 나무와 들꽃의 차이라고 할 만큼 가냘픈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가냘픈 지역성을 살려보려고 하다 보면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바로 그 지역의 과거를 윤색하는데 지나치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지역은 어떤 위대한 사람을 배출했고, 어떤 미담이 있었고, 따지고 보면 주변 다른 데보다 살기도 좋고… 하여튼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은 가망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 많은 서울만큼 위대한 사람 많이 배출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많은 곳이 한국에 또 어디 있겠는가. 지역성을 강조할수록 열패감만 커질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 구조를 국제적으로 적용하면 더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서울이 뉴욕이나 파리만큼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거쳐간 곳일까? 서양까지 갈 것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중국과 일본을 쉽게 무시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렇다면 서울과 상하이, 서울과 도쿄을 비교했을 때 서울은 그 이상의 매력이 있는가? 이런 식으로 풀다 보면 서울의 지역성, 아니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지역성이란 얼마나 초라한 것이겠는가.

그래서 결국 지역성이란 과거 지향적인 가치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 지역 사회와 그 안의 삶들에 얼마나 주목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가가 지역성의 요체가 된다. 고아들에게 대안 가정과 교육을 제공하는 자선 단체가 있는 지역을 생각해보자. 그 안에서 벌어지는 고민과 감동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는 따뜻함과 자비로운 정서를 매력으로 하는 도시가 된다. 여기에 그런 인간성이 어떤 전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맥락을 발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대여도 상관없다. 종교적 박해나 반민주적 탄압의 사례가 있던 지역을 생각해보자. 바로 그 슬픈 과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도 종교적 배타성에 주의하고 시민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면 그 역시 훌륭한 매력이 될 것이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혁명의 고향, 프랑스가 가진 시민의 자신감이 그 나라의 매력이고 나치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독일의 새로운 매력이 될 수 있듯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와 살고 있는 현재가 인간이라는 종에게 어떤 보편적인 가치와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는가가, 도시 뿐 아니라 국가의 지역성의 핵심이 될 것이다. 우리 몸엔 우리 것이라는 보호 무역 같은 신토불이 가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가치의 발견. 그리고 그 발견이야말로 그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찾아가고픈 매력이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적 시각에서 어떤 매력이 있는 지역일까. 대한민국 안에서 지역을 대하는 관점을 적용한다면 대한민국 자체가 '지방 방송'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서 '미드'나 '저패니메이션'처럼 세계에 '진출'하여 문화적 '정복'을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정복 전쟁에 열을 올리던 근대의 사고 방식에 알게 모르게 젖어버린다. 배용준이 괜히 광개토대왕을 연기한 게 아니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정복'한 문화 전사의 대우를 상징적인 배역으로 받은 것이다.

▲ 배용준이 괜히 광개토대왕을 연기한 게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정복'한 문화 전사의 대우를 상징적인 배역으로 받은 것이다. ⓒKBS

그러나 일본 관광객들이 여전히 남이섬을 찾는 것은 <겨울 연가>에서 발견한 순수한 사랑의 정서를 다시금 느끼고 싶어서이지 정복 군주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즐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며 우리의 매력이다.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정복과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은 참으로 못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 우리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살아 숨 쉬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가. 혹은 외국인들이 어떤 문화적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겠는가.

청계천이나 4대강에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정체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매카시즘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국민 정서를 통해 해방감을 만끽하라고 할 것인가? 경쟁과 탈락의 획일적 사회 구조에 대해 감동하라고 것인가.

슬픈 이야기는 꽤 많이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 보복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 전임 대통령이 있었다거나, 서울 중심부 광장을 촛불로 붉게 물들였던 평화적 시민집회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떤 외국인이라도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까? 그리고 묻지 않을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너희 사회는 그로 인해 어떤 깨달음을 얻어 어디로 가고 있냐고. 그 때 우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너무나 할 이야기가 많다. 최신 휴대폰을 꺼내서 자랑하는 일 말고도,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에, 우리의 국제적 지역성에 매력을 느끼게 할 이야기가 아직 너무나 많다. 일본인과는 <겨울 연가>를 이야기하고 유럽인들과는 박찬욱과 김기덕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다. 다만 지금 그 이야기들이 틀어 막히고 있을 뿐이다. 누가 우리의 방송을 틀어막는가. 누가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을 주저앉히는가.

다시, '지방 방송'에 대해 생각한다. 이곳은 어떤 지역일까.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의 정치적, 문화적 지도자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그 대답을 갖고 있는가. 아니, 그 질문을 하고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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