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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흥망성쇠 '아싸비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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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흥망성쇠 '아싸비야'에 달렸다"

[화제의 책] 아랍·이슬람 1400년 <아랍인의 역사>

이슬람이 성립되던 7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아랍·이슬람 세계의 1400년 시간을 조망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역사책 한 권이 번역 출간됐다.

레바논계 영국인 학자 앨버트 후라니가 1991년 출간한 <아랍인의 역사>(앨버트 후라니 지음. 김정명·홍미정 옮김. 심산 펴냄)가 한국어로 옮겨지면서 중동에 관한 한국의 빈약한 지적 기반에 튼튼한 돌 하나가 더 놓여졌다.

재작년 번역된 아이라 라피두스의 <이슬람의 세계사>와 더불어 아랍·이슬람·중동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문헌이 우리말로 쌓여 간다는 것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아랍인의 역사>는 특히 영어권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중동사 개론서로, 출간 당시 세계적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해 찬사를 받았다.

▲ <아랍인의 역사>(앨버트 후라니 지음. 김정명 홍미정 옮김. 심산 펴냄) ⓒ프레시안
아싸비야는 무엇?

중동과 이집트, 그리고 '마그립'이라고 표현하는 북아프리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의 역사를 쓴 <아랍인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집단적 연대의식"이라고 설명되는 '아싸비야'라는 낯선 개념이다.

저자 후라니는 정부나 도시를 만들고 고급문화를 가꾸어 왕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 권력을 지닌 통치자가 필요하다면서, 그 통치자는 '아싸비야'를 가진 추종집단을 규합하고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싸비야를 지닌 집단은 스텝이나 산악 지역에 사는 활력 있는 부족민들 사이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집단은 진짜든 허구든 같은 조상을 둔 한 종족이라는 의식, 그리고 의존 관계와 공통의 종교로 하나로 결속되어 있다. 이같이 강한 결속력을 지닌 추종자 집단을 거느리고 있는 통치자는 손쉽게 왕조를 건설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아랍 세계가 가진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역사 경험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바란다면서 '아싸비야'의 개념으로 1400년 역사를 설명했다.

사실 아싸비아는 14세기 아랍의 역사철학자 이븐 칼둔이 <역사서설>에서 소개한 것인데, 수세기 후 태어난 후라니에 의해 재조명되고 이븐 칼둔 이후 700여 년 동안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까지 활용된 셈이다.

후라니는 이처럼 아랍 왕조의 흥망성쇠를 아싸비아의 생성과 소멸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집단적 연대의식 개념을 아랍 지역이나 과거의 시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동서양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 과정이나 흥망성쇠에도 적용하고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아랍·이슬람의 '혼합 문화' 일관되게 강조

이 책의 두 번째 포인트는 아랍·이슬람 문명이 나름대로 사회적·문화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특성을 지닌 돌연변이가 아니며 다양한 종교·언어·종족과 공존하면서 발전해 온 '혼합 문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아랍·중동의 문화사는 동서간 문명 교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보편성과 수용성이 높았다는 사실은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만 봐도 여러 차례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슬람은 '한손엔 코란, 한손엔 검'이라는 편견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슬람 문명이 발전하고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그리스 철학, 유대교 사상, 기독교 사상이 상호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시각은 수없이 되풀이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다종교·다언어 국가로서 이슬람 세계의 보편성을 드러낸 마지막 나라였고, 그 안에서 기독교 공동체들과 유대교 공동체들이 일정한 지휘를 인정받았다고 강조한다.

▲ 1991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아랍인의 역사> 원문 표지
아랍 역사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저자 앨버트 후라니의 '크로스오버'적 정체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레바논계 영국인으로 맨체스터에서 기독교 계통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후라니는 성년이 된 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학문적 연구의 대상은 이슬람과 아랍의 역사였다.

그런 후라니는 이슬람에 대한 연구는 소통과 존중을 기본적인 전제로 깔고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고, 이런 맥락에서 이슬람의 모습은 기형적으로 과장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후라니가 중동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최고 경지에 이른 울라마(정통 종교학자)나 수피(신비주의) 수도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설명하고, 이슬람 문화의 연속성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번역자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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