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며 이런 의문을 던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누구나 가질 법하지만 뚜렷한 답을 제시하는 이 역시 없었던 의문이었다. 이 의문을 풀고자 녹색연합이 9일 오후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권혁태 성공회대학교 교수(일어일본학과)의 토크 콘서트 '두 개의 아토믹 선샤인'을 개최했다.
일본 야마구치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역임했던 권혁태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시민 사회의 변화에 주목해 왔다. 권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2011년 3월 11일의 후쿠시마 사고를 단순한 국제 문제 혹은 환경 문제의 차원으로 보지 말고 일본 자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손문상) |
일본 내 반핵 여론, 한국에서 과장됐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과연 변했는가? 이 질문을 놓고서 권혁태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 언론이 "일본에서 반핵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비판했다. "일본 사회의 반핵 움직임을 한국이 상대적으로 과대 평가,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총선과 지방 선거 등 각종 선거가 있었지만 어느 선거든 간에 핵발전소 폐기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없다"며 "(핵발전소 폐기 공약을 내건 쪽이) 참패한 경우가 더 많으며, 심지어 사고가 일어났던 후쿠시마에서조차도 핵발전소 반대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6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우익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했다. 민주당은 기존 의석의 4분의 3을 잃으며 참패했다. 총선 당시 자민당의 핵발전소 관련 공약을 보면 "핵발전소 폐기"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3년 내 모든 핵발전소의 재가동 여부를 놓고 결론을 내겠다"고 공언해 사실상 핵발전소 유지 뜻을 피력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평화'는 없다?
그간 일본 사회에서는 '핵발전소 폐기는 좌파, 유지는 우파'라는 공식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으킨 어마어마한 피해를 생각하면 온 국민이 좌파에 힘을 실어줘야 마땅하다. 실제로 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ECRR)는 후쿠시마 사고를 놓고서 향후 50년간 약 40만 명의 암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되레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보수 정권이 득세하고 있다. 권혁태 교수는 일본에서 널리 쓰이는 '전후(戰後)'라는 말의 함의를 이해해야 현재 일본의 이 모순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에서 '전후'란 일반적으로 평화, 민주주의, 경제 성장, 풍요로움 등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어서 "이 모든 것이 핵 시대와 결합하여 시작됐으므로 핵발전소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은 이 모든 이념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뜻도 된다"며 "이로써 우익이 '핵이 문제가 아니라 핵 관리 시스템이 문제이고, 그런 시스템의 부실을 만들어낸 전후 그 자체가 문제'라는 말을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급기야 '평화와 민주주의의 시대는 갔다'는 언설조차 사회적으로 팽배해졌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일본 사회가 급격히 '평화 헌법, 비핵 3원칙, 무기 수출 금지 3원칙' 등을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 '평화 국가'의 정체성을 포기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와 '평화 국가'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권혁태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전에 겪은 3번의 피폭 경험이 일본을 이른바 '평화 국가'로 이끈 사실을 상기시켰다.
일본은 히로시마(1945년 8월 6일), 나가사키(1945년 8월 9일)에 미국의 핵공격을 받은 데 이어 비키니 사고(1954년 3월 1일)도 겪었다. 비키니 사고는 태평양의 작은 섬 비키니에서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할 당시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의 참치 잡이 어선이 피폭된 사건이다.
권혁태 교수는 "3번의 피폭 경험 모두 미국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일본은 핵폭탄을 투하한 미국에 잘못을 묻지 못했다"며 "그러면서 어느 순간 '복수'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피폭자는 전부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평화 국가'라는 가면이었다.
▲ 2011년 핵발전소 폭발과 대지진, 쓰나미 참사를 맞이한 일본 후쿠시마 인근 지역이 폐허가 되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일본, 사실상 핵무장 국가다?
권혁태 교수는 "평화 헌법에서는 무장을 금지하고 있다"며 "그런데 자위대는 무엇인가? 주일 미군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군대가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군대가 있으면서도 평화 국가를 주창하는 일본의 모순적 상황을 두고 "결국 관념으로 현실을 은폐하는 '평화 마취 효과'에 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마취 효과의 경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은 핵의 군사적 이용과 평화적 이용을 분리하는 이분법을 사용해 왔다. 여기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은 바로 핵발전소를 뜻한다. 한편, 일본은 핵무장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핵을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권 교수는 "이로써 피폭 경험은 오히려 일본이 핵발전소 대국으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이다. 그는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서 간접적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며 "일본이 일미 안보 조약을 깬다면 진정한 비핵 국가라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사고, 일본 국가주의를 깨우다!
권혁태 교수는 "일본이 핵 폐기로 갈 가능성은 없다"며 오히려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국가주의(Nationalism)를 상기시키는 목소리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다시 등장했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일본은 자신들이 제2차 세계 대전의 가해국이라는 사실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당시 약 7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 역시 피해를 봤다는 사실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일본이 유일한 핵폭탄 피폭국'이라는 인식만을 국가 차원에서 공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가주의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권 교수는 "심지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시민운동가도 이런 국가주의에 바탕을 둔 인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과거 반핵 운동, 평화 운동 진영에서는 국가주의를 거부했었지만 이제 핵발전소를 폐기하려면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다 손잡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들 시민운동가 중 일부는 후쿠시마 사고 후 "핵발전소 폐기를 외치는 극우파"와의 연대를 추진한다. 하지만 이런 '적과의 동침'은 결국은 우파의 국가주의 논리를 승인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우파의 "핵발전소 폐기" 주장 배후에는 일본 우파의 전형적인 국가주의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 지난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피해를 본 미나미소마 시의 한 주택이 약 2년이 흐른 2일에도 비어 있다. ⓒ연합뉴스 |
일본 극우파가 내세우는 핵발전소 폐기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들은 핵발전소를 반대하면서 교묘하게 '핵 무장'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들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이 풍요로운 나라를 오염시키는 핵발전소에 반대한다"면서도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기치 못한 사고나 침략을 당하면 무방비 상태에서 타격을 당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평화 헌법을 개정해 무력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이들은 "위대한 천왕 폐하가 만드신 이 깨끗한 일본 영토를 핵발전소로 오염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가주의 중에서도 아주 복고적인 것이다.
권혁태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사회가 반핵은커녕 국가주의와 결합된 복잡한 핵 담론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의 일본 사회를 바라볼 때 핵발전소, 핵무기, 전후 일본 문제 이 3가지 코드를 가지고 바라봐야만 제대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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