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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꿈 없는 '진보적 인텔리' 구미에 딱 맞는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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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꿈 없는 '진보적 인텔리' 구미에 딱 맞는 상대"

[화제의 책] 김규항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김규항의 시선엔 일정한 흐름이 있다. "이명박 정부 반대"를 외치는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에게 "내 안의 이명박"을 묻고, 이들을 비판하는 급진적 좌파에게는 "자신을 돌이켜보는 치유와 영성"을 묻는다. 한국의 이념 스펙트럼 속에서 김규항을 왼쪽에 위치시킨다면 그는 자신과 가까운 곳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는 인터뷰어 지승호 씨가 진행한 김규항 인터뷰이다. 김규항은 이 책을 두고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1998년은 공교롭게도 외환 위기 직후,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속히 빠져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책은 그 12년에 대한 소박한 주석서인 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런 푸념도 늘어놓는다.

▲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김규항·지승호 지음, 얄마 펴냄). ⓒ프레시안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나도 자유주의자와 갈등이 많았어요. 그런 게 없었다면 모든 게 좀더 원만했을 겁니다. 페미니즘 논란도 그렇고, 박원순 씨나 시민단체와 갈등도 그렇고, 결국 그런 갈등이었죠. 나도 조·중·동 욕하고, 수구 세력하고 싸우고, 촛불 집회 때 이명박 정권만 욕했다면 <고래가 그랬어> 독자들도 많이 늘어났을 거에요. (웃음) 나도 훨씬 더 살기 편했을 테고, 괜스레 오해나 받고 순혈주의자라는 비아냥거림이나 듣고. 이게 다 예수 탓이죠. 내 팔자야. (웃음)"


그러나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김규항은 "천만에요"라고 답한다. 이 책에서도 그는 몇몇 진보적, 혹은 개혁적 인사들이 보면 얼굴이 붉어질 비판을 서슴없이 내놓는다.

"개혁, 즉 가짜 진보를 통해서 사람들을 최대한 미혹해야 하는 체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문제가 명료해집니다. 일단 출신이랄까, 이미지랄까 하는 것들이 절대 보수로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보수와 갈등하고 싸우는 진보적인 모습도 필요하겠죠. 바로 민주화 운동 세력입니다. 정치적 민주화를 좇는 사람들, 그러나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사람들, 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박원순 같은 분들이죠. 그들의 정치, 그들의 운동이 바로 가짜 진보인 개혁입니다 (…) 그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과 별개로 그분들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수호자들이죠."

"정치화 민주화 이후엔 군사 독재가 아니라 자본의 독재가 가장 주요한 문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군사 독재와의 싸움의 틀에 사람들을 묶어놓는 게 문제인 거죠. (…) 정리하자면 군사 독재가 아니라 군사 독재풍의 신자유주의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걸 한 쪽에선 진보풍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보완하는 겁니다."

김규항은 한발 더 나아가 "진보적 인텔리들에게 이명박 정부야 말로 구미에 맞는 상대 아니냐"고 꼬집기도 한다. "대부분은 신자유주의와 같은 본질적인 싸움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충분히 자유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있거나 중간 계급, 혹은 어지간한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피폭을 직접 맞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내놓는다.

"진보적인 사람이라면 꿈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진보 인텔리들에겐 참 그게 없어요.( …) 꿈이 없으니까 현실에서 상대적인 진보성에 자꾸 집착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권은 진짜 끝내주는 적이죠. 이명박 정권은 1970년대 스타일이거든요. 신자유주의와 싸운다고 하면 불편하고 감당도 안 되지만, 이명박 정권은 비현실적이라 할만큼 오늘의 진보적 인텔리들의 구미에 딱 맞는 상대죠. 마음껏 젊은 시절처럼 비장하고 순정한 얼굴로 함성을 지를 수 있는 적입니다."

대중은 다른가. 이명박 정부 앞에 '촛불 집회'를 벌이고 광화문 일대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던 보통 사람들은 다른가. 그렇지 않다. 살인적인 학벌 경쟁에서 보이듯 이 죽음의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중 그 자신이다. 김규항은 "신자유주의가 참 무섭다"며 이렇게 탄식한다.

"반세기 동안의 포악한 극우 독재가 사람들을 무릎 꿇게 했지만 정신이나 영혼까지 망가뜨리진 못했어요. 그러니까 정치적 민주화도 되었다고 봐요. 그런데 이놈의 신자유주의는 불과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사람들의 영혼을 완전히 망가뜨렸어요. 남보다 많이 갖거나 보통 사람들과 격차를 벌이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사고방식이 이제 더 이상 탐욕스러운 지배 계급만의 사고방식은 아니잖아요. 서민 대중의 사고방식이자, 농민의 사고방식이자, 노동자의 사고방식이 되어 버린 겁니다. 말 그대로 멸망의 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딜레마를 가장 극명하게 확인하는 곳이라면 바로 '교육'이다.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 내에서도 어디서나 '내 아이를 뒤쳐지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변명을 들을 수 있다.

김규항은 "(촛불 집회에서) '쥐박이 물러나라, 쥐박이가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외치다가 자정쯤 돼 아이에게 전화해서 학원 다녀왔는지 확인하는 게 희망을 발견한 건가요?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할 거면 왜 이명박 정권을 욕해요? 현실은 이명박 정권이 최선이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 거죠"라고 꼬집는다.

"기점을 잡자면 1997년 IMF 사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 내가 생존 위기에 빠지면 사회도 국가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생존 공포는 '내 새끼의 생존'에서 더욱 극단화되었어요. 너도나도 할 것없이 아이 교육 문제에 올인하게 된 거죠. 교육 문제라고 말들 하지만 실은 생존 공포죠."

'생존 공포'와 '경쟁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피할 수 없이 격화된 교육열, 그 해법은 무엇일까. 김규항도 무릎을 칠 만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기도 한 것은 그 해법이란 바깥에서 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고래가 그랬어> 잡지를 운영하면서 늘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도록 애쓰는 거라면 제대로 해야 하는 거다. 행복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하다는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요. 사실은 욕망 때문에 더 가난하고, 더 절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제적 공정함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지나치게 많이 쓰고 많이 먹고 있는 부분은 반성해야 해요. (…) 하지만 누르고 빼앗는 사람이나 억눌리고 빼앗기는 사람 모두 방향을 잘못잡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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