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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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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고전 읽기

[화제의 책] 정혜윤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 귀하고 아름다운 시라는 것을 대부분 아주 늦게 발견한다. 삶의 어느 한 순간 시 구절이 생각날 때, '함량미달'인 글 사이에서 이들 시를 다시 발견할 때, 그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정혜윤이 새 책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민음사 펴냄)을 냈다. <침대와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줄게> 등의 책을 낸 '독서가' 정혜윤은 이번엔 '고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정혜윤 지음, 민음사 펴냄.) ⓒ프레시안
정혜윤의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정혜윤이라는 화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그의 책에서 항상 '자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탐미적인 독서기이든, 런던을 헤매는 여행기이든 그는 자신이 그리고 독자가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상투적이거나 상품화된 방식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방식으로.

한국에서 간행되는 '세계문학전집'에는 대부분 고전의 끝에 '해석'을 달아놓는다. 그동안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온 고전 읽기는 대부분 이러한 '해석 이해하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미 문학을, 프랑스 문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의 해석이나 역자의 해석이 독자 각각의 글읽기에 앞선다. 이것은 '정설'이 있고 '다수설'이 있는 세계다.

정혜윤이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의 고전은 고전 중에서도 잘 알려진, 고전의 전범과 같은 책들이다. 이 책들은 세기에 걸쳐 수없이 읽혀왔고 수없는 해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고전 읽기에 정혜윤은 질문을 던진다. 그 고전을 읽는 너는 어떤데? 어떤 장면에서 설레고 어떤 장면에서 슬펐는데?

"가끔 고전을 읽다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 나의 경우 제인 에어를 만나기 전 로체스터의 삶이 제인 에어를 만난 후의 삶보다 아직도 훨씬 더 궁금하며, 내가 웬디라면 우리들의 엄마가 돼 달라는, 키스도 할 줄 모르는, 밤마다 신데렐라 이야기나 들려 달라는 피터팬 옆에 단 하루라도 붙어 있었을까 의심스러우며 (사실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나라면 손목에 갈고리를 달고 피아노를 치는 거친 남자 후크의 내면과 자아에 반드시 호기심을 품을 것 같으니.)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가 28년 몇 개월이 흐른 뒤에 꼭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인데 내가 그라면 답답한 마음에 타로 점이라도 쳐 보고 싶었을 것 같다."

"나는 개츠비의 피로와 쓸쓸함과 낙담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욕망을 가졌던 개츠비지만 두 손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젖가슴을 가득 쥐어본 적도 없었고 그녀의 마음과 세계를 한 순간이라도 돌려놓아 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위해 희생했단 말인가?"

말하자면 정혜윤의 책읽기는 책과 대화를 나누는 '능동적 책읽기'다. 다만 정혜윤이 일반적인 독자들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독서량이다. 이 책 속에서도 정혜윤은 가끔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하나의 책에서 다른 책으로 뛰어 다닌다. 때로는 중첩된 이미지를 따라서, 때로는 책과 책 사이에 연결된 의미를 따라서. <마담 보바리>에 대해서는 이 책을 소재로 삼아 쓴 <플로베르의 앵무새>라는 책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 <위대한 개츠비> 독서기에서는 저자 피츠제럴드가 다른 작품에서 냈던 시를 끌어오기도 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주인공 남자 '나'는 의사다. 엠마의 남편과 같은 직업이다. 안정되고 수동적이란 점에서 둘은 성격도 비슷하다. 그가 털어놓는 그의 아내 엘렌 이야기! 그 이야기는 그에겐 가장 절실하고 순수한 이야기다.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는 간통한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죽은 지 100년이 넘은 작가, 간통한 유부녀 엠마 보바리를 죽여 버린 플로베르의 모든 것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럼 황금 모자를 쓰려무나,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높이 뛰어오를 수 있거들랑 그녀를 위해 높이 뛰어 오르려무나,
그녀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사랑하는 이여,
황금 모자 쓰고 높이 뛰어오르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을 차지해야겠어요!'

-토마스 파크 딘빌리어스 (피츠제럴드의 <낙원의 이쪽>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

그리고 바로 이 시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긴 행로는 시작되고 또 끝난다. 자본주의 대도시에 사는 부유한 페넬로페를 찾아가기 전에 우선 황금 모자부터 마련하고 보는 가난한 오디세우스처럼. <위대한 개츠비>는 개츠비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인물인 닉 캐러웨이가 어린 시절에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충고를 되새기며 시작한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정혜윤은 이 책의 서문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의 말을 따 "고전과 현대 문학을 골고루 섞어 읽기"를 추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오웰의 <1984>는 하루키의 <1Q84>와 함께,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나 <분노의 포도>는 매카시의 '국경 3부작'과 함께, 디킨스의 소설은 닉 혼비의 소설과 함께 읽는다면 누구에게나 재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최근 고전 읽기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프레시안>에서도 도서평론가 이권우와 함께 '고전과 서평'에 관한 강좌를 진행한다. 일단 고전이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나면 고전만큼 충실하고 재미있는 소설이 없다. 정혜윤은 "내 마음을 움직였던 문장과 장면을 그냥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마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을 수줍게 떨면서 공개하는 것처럼. '제일 좋은 걸 보여주고 싶어.' 난 속으로 이렇게 수없이 되뇌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는 고전을 읽어낼 중요한 도구로 "바로 당신"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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