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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 고집도 버리고 '비핵·개방·3천' 기조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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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 고집도 버리고 '비핵·개방·3천' 기조도 바꿔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판 '개항', 성공의 조건

북한이 최근 투자 유치 차원에서 7개 항구와 평양을 개방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또 8일에는 나진항을 중국에 10년간 추가로 개방하고, 러시아에도 50년 사용 허가를 내줬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그걸 일종의 개항이라고 할 수 있다면,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겁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진출할 때는 언제나 제일 먼저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중국이 1978년 말 4개 현대화 방침을 확정하고 맨 먼저 실행에 옮긴 것도 5개 항구의 개방이었습니다.

북한은 동쪽으로 나진선봉, 청진, 김책, 함흥, 원산, 서쪽으로 신의주, 남포, 그리고 항구는 아니지만 평양을 선정해서 대풍국제투자그룹을 통해 투자 유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대풍그룹은 형식상 민간 사업체지만 실질적으론 북한 당국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당국의 의지가 실린 거죠.

북한이 항구를 개방하거나 항구 지역에 투자를 유치하는 구상은 이미 90년대 초에 있었습니다.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란 걸 추진했었는데, 이제는 그 실패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 게 중요한 과제일 겁니다.

나진·선봉은 북한이 중국을 벤치마킹한 거였는데, 탈냉전 상황에서 서방 자본이 들어 올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했었을 겁니다. 그런데 실패한 이유는, SOC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 외국 자본이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개방·개혁 초기의 중국도 마찬가지였어요. 78년 말에 4개 현대화를 결정하니까 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이나 일본 기업인들의 '차이나 러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지하자원이나 인구가 많아서 매력이 크긴 한데 그 자원과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 철도·도로·항만 같은 SOC가 안 돼 있더란 말예요.

그래서 외국 기업가들이 그 문제를 제기하니까, 중국은 그것까지도 투자자들이 좀 해 달라고 했대요. 그러니 잘 될 리가 있나요. 결국 누가 도와줬느냐. 동남아 지역 화교들이었습니다. 중국이 초기에 동남쪽 항구들을 먼저 개방했던 건 다 그것 때문이었어요.

북한은 중국의 경험을 제대로 벤치마킹 안하고 SOC 준비 없이 나진·선봉을 열었고, 게다가 한국 기업의 진출은 절대 못하게 하면서 나진·선봉 프로젝트는 결국 중간에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걸 추진했던 사람들은 숙청에 가까운 처벌을 당합니다. 남쪽에 경제 시찰을 왔었던 김달현 부총리,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를 했던 김정우 같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이번에 8개 지역 개방도 SOC 문제 해결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울 거예요. 북한이 이번에도 '우리가 왜 중국을 모방해야 하느냐? 하면 우리는 우리식으로 한다'는 말을 또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성공 사례는 참작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되려면 결국 남쪽에서 일정한 지원이 가야 합니다. 물론 미북관계가 빨리 개선돼서 미국의 협조 하에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SOC 개발을 위한 장기 저리 융자, 차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겁니다. 어쨌든 SOC 없이 개방만 해서는 투자가 안 들어옵니다.

과거에 쌀 지원하면서 봤지만, 북한의 항구는 하역 능력도 부족하지만 접안 시설도 빈약해요. 대형 수송선은 접안하기 어렵습니다. 쌀 10만 톤 보내는데도 우리가 서둘러도 저쪽에서 받을 능력이 안 되니까 한 달 이상 걸렸어요. 북한이 항만의 접안·하역 능력을 얼마나 키우느냐, 내륙으로 실어 나르는 SOC를 어떻게 만드느냐...이런 것들이 개방 성패의 관건이 될 겁니다.

▲ 중국을 방문 중인 김영일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이 랴오닝(遼寧)성과 지린(吉林)성을 잇따라 방문, 북중간 화두로 떠오른 양측 접경지역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경협 행보'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라진항 부두에 대해 각각 10년, 50년 기한의 사용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나진항이 어떤 식으로 개발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나진항 전경 ⓒ연합뉴스

북한 개방 원하면 우리도 평화협정에 성의 보여야

또 중국은 굉장히 과감하게 개방·개혁을 했는데, 그게 가능했던 배경도 중요합니다. 대만한테 먹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없었다는 것. 북한은 90년대 초부터 잘못하면 남쪽에 경제적으로 예속되고, 그러다 보면 정치적으로도 예속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적극적으로 나오게 됐어요. 2001년 초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지시로 '21세기적 신사고'라는 말이 나왔고, 그해 1월에는 김 위원장이 상하이에서 '천지개벽' 발언을 하게 됩니다. 또 그런 토대 위에서 2002년 7.1 경제개선관리조치가 나왔고, 2003년에는 종합시장을 허용하게 됩니다.

북한을 개방·개혁으로 끌어내려면 북쪽의 불안감부터 해소해줘야 하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논리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개방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건, 개방 여건은 보장 안 하면서 북한이 스스로개방을 하면 그때에야 도와주겠다는, 바로 그 대목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북한을 개방시키기 위해서라도 체제 문제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해줘야 하는 거예요. 개혁·개방을 하면 도와주겠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돼요. 그 문제는 또 결국 평화협정 문제로 연결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중국·베트남을 따라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중국은 78년 12월 당 11기 3중전회를 열어서 4개 현대화를 결정했는데, 그보다 한참 전에 닉슨 방중 이후 미중관계가 발전되면서 대표부가 교환된 상태였고, 79년 1월 1일부로 수교가 예정된 상태였어요. 그 전에 일중관계는 이미 정상화 됐고.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투자가 들어오고, 정치·군사적 압박은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한 겁니다.

'경공업 다음 농업'…순서를 거꾸로 잡았다

북한이 '중국을 벤치마킹하건 조선식'으로 하건 극복·해결해야 할 문제는 또 있습니다. 농업 진흥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경공업과 농업에서 혁신을 일으키겠다고 했습니다. 순서를 경공업과 농업으로 잡았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비날론 기업소를 올 들어 벌써 2번인가 가고 6일엔 거기서 군중대회까지 했습니다. 경공업의 대표는 의식주 가운데 입는 문젠데, 섬유산업을 진흥해서 입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에는 4개 현대화의 순서가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이거든요. 그 전까지는 중국이나 북한 모두 소련 모델로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중공업을 먼저 일으켰고, 그 후에 경공업을 끌어 올리고 농업도 끌어 올리는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중공업 진흥의 논리에는 미국이 언제 칠지 모르니까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어요. 모택동 시절까지 그랬습니다.

그런데 소련은 중공업 중심으로 나가다가 경공업, 농업이 주저앉아 버렸고, 그래서 식량 문제가 나왔어요. 그래서 결국 개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도 식량 문제 때문에 개방했고, 베트남도 식량 때문에 도이모이(刷新: 베트남판 개방·개혁)란 걸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처음엔 중공업, 군사경제 중심으로 가다가 식량 문제가 나오면서 체제 개혁 과제가 나오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어요. 그러면서 농업이 중시되게 됐습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도 지방의 농업 담당 서기 출신이었고, 중국 개방기에 중용됐던 자오쯔양(趙紫陽) 총리도 지방의 농업 담당 서기로서 업적이 탁월했기 때문에 중앙으로 발탁된 케이스였습니다.

그렇게 중국이 4개 현대화를 외치면서 농업 현대화를 최우선에 두고 공업과 국방을 뒤로 뺀 건 그때까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중시해오던 경제 발전의 순서를 완전히 뒤집은 겁니다.

사회주의권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나라도 60년대 새마을 운동이 그런 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촌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경공업, 중화학 공업으로 가겠다는 거죠. 그렇게 해야 경제가 튼튼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농업보다 경공업을 앞세우고 있단 말예요. 식량난이 심각한데 완전히 순서를 잘못 잡은 거지요.

'사회주의적 생산양식' 강조도 거꾸로 가는 것

또 중국의 농업 현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인민공사 해체. 북한식으로 말하면 협동농장을 없애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농가책임생산제로 전환했고, 그러면서 수확량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토지소유권은 안 줘도 경작권을 주고, 생산물 중 일부만 국가에 공출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처분할 수 있게 해줬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농사를 지을 때 정성을 들이게 됐습니다. 문화대혁명 기간 인민공사를 고수하는 바람에 굶어 죽는 사람이 10년 동안 총 6600만 명, 연간으로는 660만 명이었는데, 그걸 폐지하면서 중국에 식량 문제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중국은 그러면서 향진(鄕鎭)기업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농촌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농산물을 도시 사람들을 위한 공산품으로 만드는 일도 하게 한 건데, 그게 경공업을 일으키는 하나의 수단이 됐습니다. 농가 소득도 자연히 올라갔어요. 농업이 제대로 되니까 경공업도 제대로 되고, 결국 경제 성장도 이루게 된 거예요.

북한도 성공하려면 그 순서를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오히려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을 포기하기는커녕 수정도 안 하려고 하거든요.

물론 북한도 7.1 조치 이후에 농가책임생산제 비슷한 걸 하긴 했어요. 200명 단위로 끊어서 책임을 주고 나머지 초과 생산분에 대해선 처분권도 주고, 나중에는 심지어 20~30명 단위로까지 책임생산 단위를 줄여보기도 하고, 또 두 가족을 한 단위로 묶어서 경쟁도 붙여 보고...그러니까 생산량이 올라갔어요. 그런데 그게 자본주의 마인드를 뿌리내리게 할까봐서 없었던 일로 했습니다. 그러니 곡물 생산 자체가 늘어나지 않았지요.

86년 연말에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서 모든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가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중국이 농가책임생산제로 가고 있을 때 북한은 모든 농장을 국영농장화한다는 결정을 한 거예요. 정반대로 가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럼 농업 문제 해결 어려워요. 협동농장 제도를 기본으로 하더라도 탄력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거꾸로 가고 있어요.

減軍 없이 농업 진흥 없다

또 중국이 농업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병력 감축입니다. 국방 현대화는 한편으로는 중공업을 육성하겠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비를 현대화해서 필요 없는 병력을 감축시키는 거였습니다. 400만 병력을 300만으로 줄이면서, 지금은 훨씬 더 줄었을 텐데...한 200만 쯤 됐을 텐데, 어쨌든 그 양질의 잉여 인력이 농촌과 공장의 노동력으로 들어갔어요.

북한의 농업은 비료·농약이 부족해서 잘 안 되는 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촌에 노동력이 없어서 안 되는 측면도 큽니다. 농가책임생산제로 바꾸건 협동농장을 유지하건, 지금처럼 117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농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겠다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2300만 인구 중에 20%가 넘는 양질의 노동력이 군대에 갇혀 있으니 산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북한이 과감하게 중국식으로 감군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미국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 남쪽이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북한이 핵만 포기하면 다 되는데 우리가 먼저 손을 쓸 필요가 있느냐...그런 반론이 나올 수 있겠죠. 그런데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겁니다. 미국이나 한국도 이런 문제를 유념해서 북한이 개방·개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베트남 얘기를 하나만 덧붙이자면...베트남은 원래 쌀 수출국이었어요. 한국전쟁 끝나고 미국이 우리한테 보내준 안남미가 바로 베트남 쌀이었습니다. 안남은 베트남의 옛 이름이죠. 그런데 1975년 공산화 후에는 그 나라가 식량 부족국가가 됐어요. 80년대 후반 도이모이를 하면서 겨우 다시 쌀 수출국으로 돌아섰어요. 사회주의적 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한 식량난은 비켜갈 수 없다는 게 공식처럼 된 거예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베트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됐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비핵화하고 개방하면 3000불을 만들어 주겠다는 '비핵·개방·3000' 논리에 집착하면 북한은 영원히 안 바뀌어요. 못 바꿉니다. 비핵화와 개방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물론 북한이 비핵화와 개방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평화협정에 대해 성의를 보여줘야 합니다.

비핵화가 되고 평화협정이 되면 개방의 속도는 빨라집니다. 또 북한이 개방·개혁으로 나갈 때 우리 경제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는 겁니다. 북한에 퍼준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크고 넓게 봐야 합니다. 중국이 나진항을 10년간 더 쓰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퍼주기 하려고요? 아니에요. 자기네 동북 3성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장기 임차하는 겁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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