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왜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인간의 자유를 위해 인권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인권은 인간의 자유와 본질적인 이익을 위해 요구되고 있으며, 인권 보장의 책임 주체는 국가를 넘어 비국가 집단으로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인권 관련 구체적 규범의 수도 늘어났으며 범위도 넓어졌다. 인권 보편성의 의미가 크게 확장된 것이다.
이렇게 인권의 보편성의 의미가 크게 확장된 현실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생각할 때, 북한주민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침해와 식량권·생존권은 침해는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북한인권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인권 문제 자체의 존재를 부인하는 북한의 인권 정책 때문에, 북한 '밖'에서 북한인권 실태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는 북한의 인권 실태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하는 것보다 차라리 북한인권 상황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내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책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접근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일도 어렵다. 그렇다 할지라도 북한의 인권 침해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조사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이미 알려져 있는 북한인권 침해의 열악한 상황을 재탕 삼탕 하는 것보다 북한 인권침해의 구조적 원인부터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안'의 논리 및 정치 문화적 요인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 인식의 토대로서 마르크스 인권론
북한은 사회주의체제를 표방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계급론적 인권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 인식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마르크스의 인권론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마르크스는 서구 자본주의 인권론이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무시하고 개인을 단자로만 취급하기 때문에 인간 서로서로를 갈라놓았으며, 따라서 오히려 인간해방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서구 인권개념의 시원을 이루는 프랑스 혁명이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이었으므로 그 인권선언 역시 철저히 부르주아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마르크스는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존재인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이런 공동체적 존재를 방해한다고 인식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라는 공적 영역의 환상 속에서 인간의 자유, 권리, 평등이 보장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잠꼬대"라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과 미국 헌법의 주요 내용인 자유권, 소유권, 평등권, 안전권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자유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이고, 소유권은 자유권을 현실에 적용시킨 것인데 남이야 어찌 됐건 개인이 소유한 것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라고 규정했다. 평등권은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자족적인 단자로 대우받을 권리이고, 안전권은 민간 영역의 최고의 사회적 개념, 즉 경찰의 개념이라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인간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해방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전체 집단에 속한 종적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며, 이런 종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의 힘을 개인적 힘이 아닌 사회적 힘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인간은 사회적 힘을 조직할 줄 알며, 자아와 사회적 힘을 분리하지 않고 비로소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바로 이런 상태에 도달했을 때에 인간해방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인권을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닌 집단의 문제로 보았다. 인권이 원래 집단 특히 국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를 떠나서는 어떤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르크스 인권론의 핵심이었다. 그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인권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오로지 사회관계의 산물로 보기 때문에 천부인권 개념을 관념론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부인했다. 마르크스는 인권은 잘하면 해방으로 가는 곁가지, 잘못하면 해방을 가로막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마르크스가 진정 원했던 것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라기보다 인권요구가 원천적으로 필요 없는 해방된 사회였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논리는 국가에 앞서 존재하는 자연 상태에 근거를 둔 개인적 권리로서 인권의 존재를 배제했다. 즉 인류사회 자체의 계급적 성격으로 인하여 초계급적·추상적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추상적인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인권은 그 성질상 계급적 성격에서 탈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마르크스를 원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인권이론은 자연권과 인권의 절대성, 불변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들이 보는 인간의 권리는 특정 사회유형, 즉 경쟁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나 파악될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착취사회이고, 사유재산권은 인간 간의 분리를 전제로 사회의 속박을 받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사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을 포함한 개인적 권리는 부르주아의 권리라고 했다. 반면에 생존과 안전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사회주의적 권리야말로 진정한 인권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 인권론과 서구 인권개념의 공통점
마르크스 인권론이 갖고 있는 부정적 입장은 그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사회의 태생적인 비인간적 속성에 대한 비판이지, 인권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가 기존의 서구 자유주의적 인권이론에 대해 비판적이라 하여 모든 권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언론·출판의 자유, 보통선거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지지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박애 구호를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혁명의 민주적 권리까지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적 권리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비난했다. 마르크스는 정치적 권리가 모든 불평등을 타파할 수는 없어도 불평등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의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주의 명제는 각 개인의 권리주장을 정치적·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하고 조정하는가에 대한 문제보다 사회적 협력을 어떻게 조직해 낼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권리를 타인의 침해를 막는 장치로 보기보다 조화로운 공동체적 삶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한다. 권리와 의무를 반대개념으로 보지 않고 모든 사람이 권리를 가지려면 당연히 그것에 상응하는 대응의무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마르크스가 사적 소유를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비난했다고 해서 자유 압제에 대한 인민의 저항권, 인민이 스스로 지킬 권리까지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자유사상을 더욱 확장시키고자 했다. 자유권을 사적 소유의 속박과 그것의 파멸적인 침해로부터 해방시켜, '인간해방'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유를 사적 소유를 비판할 수 있는 토대로 간주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소유의 자유'가 아니라 '소유로부터의 자유' 개념이 나온다. 봉건사회로부터의 이기적 개인의 해방이 아닌, 모든 종류의 계급사회로부터 인류의 해방을 촉구하고자 하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론적으로 볼 때, 원론적인 마르크스 인권론에 담겨 있는 인권개념은 완벽한 인권의 이상적인 가치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완벽한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평등을 인권의 이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원론적인 사회주의 이론에 포함되어 있는 인권의 이상가치는 완벽한 인본주의적 인권 가치와 통한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인권론과 서구 인권개념의 차이점
그러면 서구 자유주의 인권이론과 마르크스 인권이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서구 인권개념은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발전해 왔다. 국가와 개인에 따라 인권이 서로 다를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인권은 절대성과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인식되었다.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있어 국가의 권력을 확장하느냐 제한하느냐의 문제는 서구 인권 이론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중심 화두였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는 서구의 인권이론은 오히려 인간해방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인권을 오직 인권을 발생시킨 사회관계의 산물로 인식했으며, 관념에 근거를 둔 인권을 부정했다. 그리고 인권을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닌 집단에 관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 서구 인권이론과의 차이이다.
마르크스 인권론을 이어받은 사회주의자들은 개인발전과 사회발전이 상호 연동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어느 한 구성원의 생명활동과 자아실현은 그대로 다른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명활동과 자아실현에 필수 불가결한 구성요소가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어느 한 개인의 생명활동과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충족은 분명히 그 자신에게는 권리로 규정되지만, 이는 곧바로 다른 사회구성원의 생명활동과 자아실현을 위해 공헌해야 할 의무의 출발점이 된다고 본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인권 현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인권 이론가들의 다양한 인권 담론과 사회주의 국가의 인권 현실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에 입각하여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로 출범했던 소련은 혁명 초기부터 언론과 사상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를 탄압했다. 이러한 탄압은 결과적으로 인권의 핵심이자 발원지인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인권탄압의 현실 속에서도 소련의 '사회주의헌법'은 인민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었다. 헌법에 규정해 놓은 인권과 소련의 인권 현실은 원론적 사회주의 이상과 사회주의 현실만큼이나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제2차 대전 후 소련을 모델로 하여 수립된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또한 헌법적 보장과 그 실행 사이에서 많은 괴리를 보였다. 사회주의를 지켜 낼 필요성을 이유로 인민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인간 존엄과 인권에 대한 철저한 무시 속에 사회주의 독재가 정당화되었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기 전까지 여러 사회주의 국가 사이에서 헌법을 개정하는 등, 인권개선에 대한 법적인 노력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문화혁명 이후의 중국에서도 새 헌법이 등장했지만 인권의 실행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경우도 헌법과 법률에 '인권'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체제 내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 존재하고 실행되는가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결국 사회주의 이상 실현의 역사적 실패와 그에 따른 반인권적 폐해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회주의 국가 정치체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 정치체제의 구조 자체가 반인권적이거나 인권에 비우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권침해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국가의 구조적 특성이 인권의 폐해 정도를 결정짓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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