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국민들이 언론의 중요성을 깊이 각인하고 있을 때가 있을까. 여전히 여론조사를 해보면 '언론 악법' 문제에는 반대 여론이 두배 이상 높게 나온다. 또 언론 악법 투쟁은 우리 사회 민주화 수준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사실상 일당 독재와 다름 없는 국회, 헌법재판소 등 사법 체계의 철저한 권력 예속, 집권 세력의 폭력성 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언론광장'은 3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창립 6주년 기념으로 '미디어 법 반대 투쟁을 생각한다' 토론회를 열었다. 언론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만든 미디어 법 개정 문제를 놓고 지난 1년간의 과정을 정리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보수 방송 획일화-재집권' MB 시나리오 연기시켰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A4 용지로 12쪽에 달하는 '언론 악법 투쟁 일지'를 발표했다. 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나라당이 두 번 연속 패배한 것을 '언론 악법'의 시작으로 봤다. 그 직후인 2003년 1월 한나라당은 '언론대책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다음해 정병국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언론 관련법 개정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되짚어 보면서 그간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인 권력 다툼이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시나리오는 집권 1년차에 언론 악법 통과시키고 2년 차에 조·중·동 방송 정착시켜 획일화된 보수 방송 환경에서 올해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치뤄 압승하고, 다음 대선 재집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간의 투쟁으로 언론 악법 자체를 폐기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를 연기시키고 있음을 확신한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설사 '조·중·동 방송'이 생긴다해도 강력한 지상파방송과 경쟁해 이들이 자리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언론 악법 투쟁의 성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론 장악이 심화되면서 KBS나 YTN 등의 보도가 약해진 점은 아쉬운 점"이라며 "특히 KBS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비판의 날이 무뎌져갔고 SBS 등 민영 방송 사업자들이 소극적으로 보도하면서 여론 확산의 계기가 차단됐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한나라당은 정권 후반기에 가면 법적 하자 치유를 위해 재개정을 시도할 것"이라며 "이때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들은 원칙적 부분을 지적해 다시 한 번 문제를 바로잡을 재개정 투쟁을 벌여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부작위 소송' 헌법재판소 어떻게 답할지 궁금"
토론자로 참석한 류재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미디어 법 무효 확인 청구에서 "위법하나 무효 청구는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을 비판했다.
류재성 사무처장은 "판결 이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이 헌법재판소는 '유효'라고 한적 없음에도 언론에서 성급하게 유효라고 보도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면피용 발언'"이라며 "헌법재판소 결정문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유효라고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현재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 88명은 헌법재판소에 김형오 국회의장을 상대로 부작위에 의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장의 신문·방송법 가결 선포는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으나 김형오 의장이 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류 사무처장은 "과연 헌법재판소 결정이 과연 '작위' 의무를 국회의장에게 부여한 것인가. 아마 헌법재판소도 그 답을 모를 것"이라며 "그 때문에 '부작위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매우 생소한 소송이고 승소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지만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답변할지 궁금하다"면서 "만약 청구인 결정이 틀렸다, 그런 시정 의무 부과한적 없다고 기각, 각하한다면 지난 10월의 결정은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려하는 것은 기각이나 각하가 아니라 결정하지 않는 경우"라며 "피청구인인 국회의장은 '헌법재판소가 무효 확인 청구를 기각해 유효하다고 확정했기 때문에 작위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냈다. 이제 우리 측도 내일이나 모레쯤 반박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작위 소송'을 청구한 전병헌 의원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 판결이 3개월만에 나왔다"면서 "지금 제소한 '부작위 권한쟁의심판은 보다 명료 간명한 내용이니 만큼 3개월 보다 더 빠른 시일내에 판결을 해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병헌 "보궐 방통위 상임위원, 제대로 '투쟁'할 수 있는 사람"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야당 추천인 이병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최근 사퇴 의사를 표한 것과 관련해 보궐 방통위원 선임 문제를 꺼냈다. 전 위원은 "지난 1년간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한계와 아쉬움을 드러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통위원을 선임할 당시 정치력, 투쟁력, 순발력이 있고, 논리가 정연하고 뱃심이 있는 사람, 보수 정부인 만큼 나이까지 있는 완벽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선임할 것이다. 보궐 임원인만큼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제대로 투쟁할 수 있는 분이 선임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은 최근 언론운동 진영이나 정치권이 침체된 분위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방송에 대한 불법적, 비상식적, 비정상적 개입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생각했을 때도 세종시 문제보다 국민적 폭발력이 더 큰 것이 언론 악법 처리, 언론 장악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여론 다양성'의 진지 될 수 있는가"
한편,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언론노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박경신 교수는 "현 집행부가 아닌 언론노조라는 집단을 지칭할 때 과연 언론노조가 '여론 다양성'의 진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며 "한국 사회는 재벌, 법조 등의 카르텔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투쟁 과정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등이 제기하는 주장 중에 '결국 언론노조는 새 방송이 생기는 것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 아니냐' 등에는 일정한 울림이 있다"며서 "이런 주장은 일부 양보를 통해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최상재 위원장은 "이 싸움의 성과와 관계없이 언론 악법 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그 주력이 입사 10년차 언론인들이라는 것"이라며 "민주정부에서 언론인으로 시작한 이들이 이런 '탄압'받는 현실에 각성하고 있다. 이들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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