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중심축으로 작동해 온 반세기 한미동맹을 새로운 시대적 환경에 맞도록 변모·격상시킨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개념과 실천방향은 아직 모호하다. 그리고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와 한미 정권 교체 과정에서의 여러 뒤틀린 변수들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을 핵심내용으로 표방하지만, 압도적인 비대칭성이나 냉전적 잔재 등 근본적 문제로 지적되어온 것들이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를 낳고 있다. 각 지향점이 가지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2008년 8월 방한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
가치동맹, 냉전적 군사동맹으로의 복귀
먼저 '가치동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동반자로서의 한미관계를 설정한다. 국가간 동맹은 주로 군사·안보가 중심개념임에도, '가치'가 지향점으로 제시된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사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양국간에 공유해왔다. 물론 미래비전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등장한 배경이 문제다.
냉전적 군사동맹을 벗어나 미래지향의 가치동맹으로 가야한다는 목표는 표면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실상은 전임 정권에서 추진하던 자주성 모색이 한미동맹의 응집성을 약화시켰기에 이를 회복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있다.
특히 대북강경책으로 복귀를 통해, 즉 공통의 적에 대한 위협인식의 재강화를 가치동맹 실현의 가장 중요한 출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탈냉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냉전적이고, 과거의 한미 군사동맹으로 복구시키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게다가 위협인식의 약화를 가치적 동질성이(그것도 이미 존재하던)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북한의 핵도발이 동맹의 응집성을 다소 회복시켜주겠지만, 과거와 같은 응집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군사동맹의 부활이지, 진정한 가치동맹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나머지 두 목표에 의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알아서 기는' 평화구축동맹
한미 전략동맹은 또 '평화구축동맹'을 표방한다. 한미동맹은 소위 '안보·자율성의 교환동맹'의 전형으로, 약소국인 한국이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 강대국인 미국에게 정책의 자율성을 일정 부분 희생하는 관계다.
이는 냉전구조 속에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위계적 한미동맹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구축동맹이라는 목표는 동맹의 목적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의 범위와 강도를 더 커지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른바 '평화구축동맹'은 한미동맹이 '동아시아 지역 및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국제평화 구축에 기여'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동맹의 활동 영역을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까지 확대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이 한반도 외에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쟁과, 핵확산방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미사일방어체제(MD)에 파병 및 참여를 하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양 당사국의 영토에 한정시킨 한미상호조약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은 곧 동맹이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통제력 확장에 대해 그나마 이슈별로 수용과 저항을 오갔다. 대표적 수용사례는 주한미군의 재편성,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그리고 한반도를 벗어날 경우에는 협의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한 것 등이다. 대표적으로 저항한 부분은 PSI나 MD 참여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적극적 수용의 입장으로 돌아섰는데, 그 신호탄으로 지난해 5월 PSI에 대한 전면적 참여를 선언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미국의 요청이나 압박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자발적이고 선제적으로 행동했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선례는 MD참여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결정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일련의 이러한 조치들을 두고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포장하고는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버려질까 두려워' 만든 이름 '신뢰'
전략동맹의 또 다른 지향점은 '신뢰동맹'인데, 이 역시 미래대안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문제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원래 군사동맹은 연루와 방기 사이에 본질적인 딜레마가 존재하는 법이다. 방기는 상대편에 의해 버려질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고, 반대로 연루는 동맹국의 이익을 위해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리는 위험을 말한다.
하나의 가능성을 줄이려는 시도는 다른 가능성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는 앞에서 말한 안보·자율성 교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처음 동맹이 출범할 때는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에 있어 최적의 조합으로 형성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안보환경이나 국제정치 구조가 변함에 따라 초기의 조합이 더 이상 최적이 아니게 된다. 이로 인해 동맹에 문제가 발생하면 재조정한다.
특히 약소국의 경우 이러한 재조정 과정에서 강대국의 필요와 이익에 맞춤으로써 방기를 피하려 한다. 즉, 한국은 미국이라는 강력한 동맹 파트너로부터의 방기를 피하기 위해 미국의 이익과 관련된 영역을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도를 담은 것이 바로 '신뢰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동맹의 형성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연루보다 유난히 방기에 대한 우려가 많았고, 이것이 맹목적인 대미의존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미간의 엄청난 권력 격차와 함께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에서는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방기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인식하였다.
이는 미국 입장으로 보면 동맹의 방기 위협을 통해 한국을 매우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한미간에 문제가 있을 때 마다 미국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주한미군철수 또는 감축 문제인데,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만 모두 여섯 차례였다.
한국이 동맹의 방기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된 또 다른 이유는 미일동맹이라는 대체제의 존재 때문이다. 동맹 형성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미일동맹의 존재는 한국에게 늘 방기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지난 두 정권에서 한미관계가 악화됨과 동시에 미일동맹이 강화되자 국내 보수 세력들이 집요하게 공격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1990년대 이후 냉전 구조가 소멸되고, 북한의 위협이 현저히 감소되었다면 방기에 대한 두려움은 감소하고, 연루의 두려움은 증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이런 상황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방기에 대한 우려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것이 전략동맹에서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방기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동맹 상대국인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공약이 대미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협상력 저하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비대칭적 한미동맹 영구화하나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 및 구조적 변화에 대해 한미 전략동맹이 충분히 대응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반대로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에 대해서는 충실한 반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동맹의 미래비전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미국에 대한 종속적인 군사관계를 제도화해온 과거의 동맹을 답습, 또는 심지어 심화하는 시대 역행의 성격마저 띠고 있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을 포함한 다른 비대칭동맹과 비교해서도 훨씬 더 종속적인 관계가 장기간 제도화된 점을 들어 비대칭적 한미동맹의 영속화 가능성도 우려된다. 21세기 비전으로 제시된 한미 전략동맹이 보다 동등한 한미관계 설정과 더불어 진정으로 국익을 증진하는 '격상(upgrade)'이 되기 위해서는, 예측되는 문제점이나 취약성을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 변경이나 보완이 필수적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