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뿔싸. 내가 무슨 말을 뱉은 거지? 담임선생님은 곤충 형 외계인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2 시절, 진로 상담을 위해 교무실로 내려가 담임선생님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의 신>의 황백현(유승호)처럼 학교에선 내놓았지만 여학생들이 선망하는 꽃미남 격투가 불량 학생이냐, 하면 그럴 리가 있겠는가. 김연아처럼 체육으로 일가를 이룰 것도 아니었다. 세상을 비웃는 천재 형 학생이라거나, 예술적 재능이 충만해 어린 예술가나 연예인이 가능한 처지도 결단코 아니었다. 주변 환경에 의해 학생의 본분보다 조숙한 고민을 해야 하는 처지는 더욱 아니었다. 한 마디로 나는 꾸역꾸역 공부해서 꾸역꾸역 성적을 내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말이다.
나에겐 저 말을 뱉을 만한 개연성이 없었다. 그 날의 상담은 응당 이래야 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괜찮습니다 선생님. 더욱 열심히 해서 내년에 '천하대'에 가야지.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 번호 내려오라 그래라.
아, 아까운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또 이런 고등학생의 허세에 낭비해야 하는가, 라고 선생님이 생각하고 계실 것 같아 진땀이 났다. 하기야 선생님 입장에서 진로 상담 중에 나름 고민을 토로한 학생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가 어디 있냐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잠시 침묵 후 선생님이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리듯 말씀하셨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니? 안 가면 뭐할 건데? 죄송해요 선생님. 저 대학 갈 생각,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대학 갈 욕심, 엄청 있습니다, 라고 바로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건 진심이었다. 물론 살아남고 싶은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이런 대입 시스템은 정말 불합리한 것 같다고 묻고 싶었고, 이해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의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는 것이 어른에겐 당연한 일상이지만, 10대에겐 그 불합리한 현실의 디테일들이 매일의 발견 아니겠는가. 그냥, 나는 내가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 물론 살아남고 싶죠. 하지만 저는 제가 살아남더라도 이건 정말 불합리한 것 같다고,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 뿐 이에요.
▲ 지난 23일 종영한 KBS2TV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공부의 신>은 시스템의 불합리에 대해 말을 아낀다.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한다. ⓒ프레시안 |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은 시스템의 불합리에 대해 말을 아낀다.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한다. 교육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존재하는 제도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 안에서 개개인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에 집중한다. 한 마디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에 대해 언급할 때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대학 입시로 삶의 계급장을 취득하게 만드는 제도와, 그 과정이 사교육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입시 지옥 현상. 삶과 생활, 공동체로서의 학교가 아니라 생존과 경쟁, 순위 매기기로서의 학교가 되어가는 현실이 온당한가. <공부의 신>은 그에 대해 '노력'과 '진심'이라는 다소 김새는 답을 내놓는다. 왜냐하면 <공부의 신>은 '사회과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보내는 '옥중 서신'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남은 자의 '성공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점이야 말로 이 드라마의 성공의 이유이긴하다. 한국 교육 제도가 엉망이라는 것은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이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뭘 어쩌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서울대에 가는 것이 이 현실에서 승리하는 방법인 것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꼴찌들도 노력하고 도전해서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자체는 오히려 시청자의 관심사에 솔직하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며, 그만큼의 감동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이야기의 결론에서 '천하대가 전부는 아니며, 자신이 꿈을 찾아 노력하는 법을 배우는 일 자체가 공부고 그 공부를 해낸 너희들은 모두 승자'라는 지당한 말씀을 전해 주니, 이것이야 말로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이자 성공기 아니겠는가. 존재하는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그 과정 자체가 인생에 득이 된다는 말은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늘 필요한 위로와 격려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위로와 격려일 뿐, 진실은 아니다. 대학 입시에 전념하게 해놓고 사실은 과정이 중요했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지부조화이며 심하면 사기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그리 순진하던가. 이 드라마의 결론은 이 드라마의 전제를 뒤집는다. 애초에 오직 천하대, 국립 천하대 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와서 그 모든 것이 과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물론, 그 과정에서 학생은 성장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장은 시스템이 목표로 하고 보장하는 성장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과제를 수행하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성장이다. 개개인이 피해의식을 갖지 않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배우고 성장하도록 스스로를 다독이긴 해야 할 것이다. 그건 개개인의 미덕이지 수능과 대입시험이라는 과제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덕목이 아니다. 대입시험이야 말로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대학 간판이라는 결과 하나로 승리자를 내놓는 시스템 아니던가. 결국 <공부의 신>은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룰을 전파할 뿐이다. 아마도 이것은 드라마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제작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면적인 이야기의 구조는 신랄한 소재에 민망할 만큼 순진하다. 이보다 더 모범적이고 착할 수 없다.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어. 열심히 살라고 해준 스승이 고맙고, 열심히 살았던 순간이 행복하지. 입시 교육의 지옥도에 위로와 격려만을 남기고 슬쩍 발뺌한 격이다. 왜 지옥이 된 건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 그간 <공부의 신>을 둘러싼 논쟁은 한숨이 나오도록 남의 다리만 긁고 있었다. ⓒKBS |
<공부의 신>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시스템의 문제를 개개인의 미덕 차원으로 환원해 버리는 관점이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교육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학생들의 열패감만 더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간 <공부의 신>을 둘러싼 논쟁은 한숨이 나오도록 남의 다리만 긁고 있었다. 크게 '일본 작품 베끼기', '공교육 비하', '사교육 홍보', '학벌 지상주의'로 요약되는 비판들은 교육 체제와 TV드라마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먼저 '일본 작품 베끼기' 논란. <공부의 신>은 엄연히 판권을 사서 재창작해 현지화한 작품이다. 베끼기는 그런 과정이 없는 표절을 논할 때 쓰는 단어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의 교육 체제와 사회 분위기 상의 유사성을 생각해볼 때, 이번 리메이크는 그 개연성이 충분하다. 호평이 쏟아졌던 <하얀 거탑>과 <연애 시대>도 일본 작품의 리메이크 아니었는가. 결국 이것은 TV드라마에서 감히 입시지상주의 교육 현실을 소재로나마 차용했다는 것에 대한 괘씸죄가 이끌어낸 비판이다. 베끼기 논란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악의적이다.
'학벌 지상주의', '공교육 비판' '사교육 홍보'라는 프레임은 이 드라마가 우리 교육 현실을 받아들이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 사회가 학벌 지상주의이며 공교육에 문제가 많고 아무리 사교육을 잡으려 해도 오히려 번창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은 비루한 현실을 드라마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온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치면 모든 픽션은 불온하다. 픽션의 태동 자체가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욱이 <공부의 신>은 불온하긴 커녕 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자니, 비판 세력들이 오히려 홍보용으로 돌려야 할 판이다. 드라마가 하는 이야기가 자신들의 가치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 언급된 것 자체를 불온하게 생각하는 폭력. <공부의 신>을 둘러싼 논란은 이 사회의 상식 수준을 드러낸다.
사실 이제 우리 사회는 천하대에 간다한들 보장되는 것이 별로 없는 곳이 되었다. 이 나라는 행복과 정의를 논하지 않고 늘 경쟁과 생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패배자와 낙오자 정서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것은 천하대에 갔다 해도, 1등을 했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정서다. 그 승리를 통해 얻는 것이 단지 경쟁에서의 승리일 뿐, 그를 통한 어떤 가치의 획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청자들은 시즌2로 <취업의 신>을 청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의 수많은 예비 패배자와 낙오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면서도 '모든 것은 너하기 나름'이라고 한다면 이건 사실 잔인한 말이다. <공부의 신>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런데 이 순진하고 착한 자기계발서 드라마를 두고 쏟아졌던 비판은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진짜 아쉬웠던 부분을 가려버렸다. <공부의 신>은 고 2 시절, 무심코 뱉었던 민망했던 말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지당한 답변 같은 드라마였다. 나는 어쨌든 그 시절을 통과했고, 그 시절을 통과하는 모습을 어린 배우들을 통해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찡한 구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듣고 싶었던 말은 결국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조차 불온하다니. <공부의 신>은 한국 사회에서, 더욱이 드라마에서 교육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고 금기였는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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