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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변화를 원하는가? 세상 이치부터 배워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먼저 받을 것인가 먼저 줄 것인가

작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공개 접촉이 있었다는 얘기들이 돌아다니더니 급기야 쌀 40만 톤 지원 약속설까지 나오더군요.

그런 '설'의 사실 여부를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가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기 때문에 그건 없던 일로 치부되겠지만,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는 한 번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북 지원이 먼저냐 북한의 태도 변화가 먼저냐, 북한의 태도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즉 북한의 태도나 전략을 바꾸도록 만드는 우리의 전략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대북 지원을 일절 안 하고 있습니다. 뭔가 해 줄 것처럼 사인을 보내면서도 실제로 주지는 않고, 그러면서 북한을 우리 페이스로 끌고 오겠다거나 자유자재로 북한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할까요? 북한의 대남 태도를 바꾸려면 실질적으로 지원을 하면서 그걸 레버리지(지렛대)로 삼아야 하는 거지, 줄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안 주고, 잔뜩 기대를 갖도록 해놓고 나서는 태도를 바꾸면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해서는 북한의 태도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퍼주자는 얘기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겠지만, 왜 우리가 먼저 상황을 리드해야 하는지, 그게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좀 할게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 지원 과정에서 북쪽의 태도가 현실적으로 바뀌어 나갔고, 그게 군사 부분에서의 긴장 완화까지 이끌어냈던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이 '대한민국' 표시 쌀 포대를 받은 사연

2002년 8월 말 경추위(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렸어요. 경추위 수석대표는 장관급 회담의 차석대표인 재경부 차관이었어요. 지금 청와대 정책실장을 하고 있는 윤진식씨가 당시 재경부 차관이라서 경추위 수석대표로 나갔습니다.

경추위는 주로 경협 문제를 협의하지만, 계절에 따라서는 대북 쌀 지원 관련 합의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보름이나 한 달 전에 장관급 회담에서 대략적인 합의를 보고 구체적인 내용은 경추위에서 합의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북한이 보름 전에 열린 장관급 회담에서 꺼내지 않은 얘기를 경추위에서 꺼냈어요. 쌀을 2001년보다 좀 더 달라는 거였지요.

당시 나는 회담장인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 CP를 차려놓고 상주하면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체크하면서 회담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접촉을 마치고 나온 재경부 차관이 말하기를 북한이 작년보다 20만 톤을 더 지원해 달란다는 거예요. 2001년에는 태국산 쌀 30만 톤을 보냈는데, 그 해에는 50만 톤을 달라는 거였습니다.

▲ 북한으로 보내졌던 쌀 포대 ⓒ연합뉴스
그래서 내가 회담 대표들을 모아 놓고 '50만 톤은 곤란하다. 10만 톤 올려서 40만 톤은 줄 수 있다고 해라. 다만 이번에는 쌀 포대에 한글로 대한민국이라고 제공자 표시를 박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라'라고 지시했습니다.

2001년에는 쌀 제공자 표시를 한글로 하는 것에 대해 북쪽이 완강히 거부했어요. 받는 사람의 자존심도 있다는 거죠. '어머니 당, 어버이 수령' 덕분에 살고 있는 줄 아는 인민들이 갑자기 남쪽에서 쌀이 오는 걸 알게 되면 곤란하다는 거였겠지요. 어쨌건 첫 해에는 그래서 영어로 'Republic of Korea'라고 쓰고 '쌀 40kg'라고만 한글로 써서 보냈습니다.

왜 '대한민국' 표시를 조건을 걸었느냐? 우선 식량난 때문에 아사자·탈북자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어서 인도적 입장으로도 쌀을 조금은 더 지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북 지원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때는 월드컵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을 때였고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굉장히 크게 느끼고 있었을 땝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가면서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글 표시를 요구했던 겁니다. 물론 투명성 문제도 생각했어요. 그걸 제시하니까 북한은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죠. 그렇다면 그 해에도 태국산 30만 톤을 사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당시 농림부는 우리 쌀 재고 중 최대 100만 톤, 최소 50만 톤 정도를 대북 지원으로 들어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농림부는 언제나 추곡수매가에 영향을 미치는 쌀 재고분을 '격리 처리'해 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창고비도 줄이고, 추곡수매가도 올라가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도시 근로자들 때문에 농림부 하자는 대로 줄 수는 없어요. 그런 어려움이 있어요.

북한이 지원량을 늘려 달라고 해서 대뜸 올려주는 건 좀 그렇고, 10만 톤 정도 올려주는 구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내 후임 통일부 장관이 된 정동영 장관 때인 2005년에는 50만 톤까지 올라갔어요.

어쨌든 우리가 그런 조건을 거니까 북한이 버티고 버티다가 회담 마지막 날 새벽 평양에서 답이 왔나 봐요. 한글 제공자 표시만 받아주면 40만 톤 주는 걸 통일부 장관이 확실히 보장하겠냐고 물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우리 조건만 받으면 한나라당 의원들을 책임지고 설득해서 10만 톤을 올려주겠다고 해라" 했더니, 결국 받겠다는 답이 왔어요. 아마 김정일 위원장에게까지 보고되었고, 거기서 결심한 사안일 겁니다.

회담 끝나자마자 바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 다녔어요. 그런데 의외로 제공자 표시를 한글로 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저항이 없었어요. '아, 그러면 줘도 좋다. 줄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반응이었지요. 그래서 그때부터 40만 톤이 가기 시작한 겁니다.

비료도 비슷했어요. 2001년에는 20만 톤을 줬는데, 2002년에 봄 비료 20만 톤을 받아가 놓고 가을 비료 10만 톤을 더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때도 '한글 포대로 받을 수 있으면 내일이라도 보내겠다'고 했더니 받더라고요. 그 전에는 어느 나라 누가 주는지 모르게 적십자 표시만 해서 보냈거든요.

쌀 배분 현장 모니터 수용, 북한이 태도를 바꾼 까닭

협상 경위 설명이 길어졌는데...쌀 40만 톤이 가려면 쌀 포대가 1000만 장 필요합니다. 2005년에 정동영 장관 때 50만 톤을 보냈으니까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쌀이 총 170만 톤 가면서 '대한민국'이라고 써있는 쌀 포대가 4250만 장 북으로 갔습니다. 북한 인구의 거의 두 배입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우선 김정일 위원장이 2005년 6월 정동영 장관을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분명히 했어요. 남쪽에서 쌀과 비료를 제때 보내줘서 인민들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이 인민들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할 테니 남쪽에 가서 분명히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정동영 장관이 돌아와서 그 얘기를 공개했는데,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빅뉴스가 돼버리는 바람에 그냥 묻혀 버렸죠.

그리고 북쪽 사람들의 태도도 점점 달라졌습니다. 남쪽에서 간 회담 대표나 민간단체 대표들을 만나면 그 분위기나 반응이 굉장히 달라지고 있다는 보고를 많이 받았어요. '쌀 40Kg 대한민국'이라고 박힌 포대 4250만 장이 돌아다니는 동안 남쪽에서 쌀이 오고 있다는 걸 북한 주민들도 다 알게 된 겁니다.

우리 쌀 포대는 굉장히 질겨서 폐기하기도 어려워요. 가볍고 불에도 잘 안 타고 그러니까 북쪽에서 여러 용도로 재활용되는 겁니다. 끈 달면 배낭 되는 거고, 바짓가랑이 걷어붙이듯 해서 쌀이나 콩 같은 곡물을 담아서 시장에서 팔고, 그렇게 '대한민국' 포대가 북한 전역에 퍼지면서 북한 주민들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때 보니까 심지어 북한 군인들이 자기 작업도구나 옷들을 넣어 다니는 배낭으로까지 쓰더라고요. 그걸 이유로 군인들이 쌀을 뺏어 먹었다는 분석까지도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쌀이 가고 비료가 가면서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북쪽이 굉장히 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사실 우리 중소기업의 활로이기 때문에 북쪽이 그렇게 나오면 우리한테 좋은 거예요.

북한이 쌀 분배에 대한 현장 모니터링도 처음엔 잘 안 받으려고 하다가 나중에 조금씩 늘려 받게 된 것도 지원량이 늘어나면서부터입니다. 모니터링을 안 받으면 더 안 줄 것 같으니까 북한의 태도가 바뀐 거예요. 뭘 줘가면서 태도 변화를 유도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2003년 경추위 남측 대표는 지금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김광림 당시 재경부 차관이었어요. 그때 쌀 지원에 대한 투명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쌀 10만 톤 당 분배 현장 세 군데 이상을 공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실행하려고 하니까 북쪽에서 10만 톤 당 딱 세 군데만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김광림 당시 차관이 '아니 세 군데 이상이라고 하면 3+알파란 뜻인데 그럼 적어도 네 군데는 가야 된다'고 주장해서 10만 톤 당 네 군데를 보게 됐어요. 김광림 차관이 협상을 잘 합디다.

그렇게 해서 모니터링을 하러 북쪽으로 갔는데, 그때가 태풍 매미던가 루사던가가 왔을 때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분배 현장에서 북쪽 주민들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태풍이 오는데 동포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쌀을 보내 주겠는가. 우리 참 고맙게 알고 받아먹는다. 그런데 남쪽에서는 참 가슴 아프고 속상한 얘기들이 돌아다닌다더라. 우리한테 쌀을 주면 군인이나 높은 사람들이 다 뺏어간다느니, 주민들한테 주는 척 하고 다시 뺏어간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있다는데, 우리 듣기에 마음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남쪽에서 오는 쌀이 풀기는 좀 떨어지더구만요잉" 2년 이상 된 걸 보내게 되어 있으니까 풀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남쪽에서 기분 나빠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래도 오마니들은 죽 쒀서 드리면 부드럽고 더 좋다고들 하십네다"라고 슬그머니 말을 바꿨대요.

비료에 대해서도 일화가 있어요. 2005년 초여름 쯤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KBS가 보름 정도 북쪽에 체류하면서 취재를 했어요. 그런데 만경대 협동농장 부농장장이 KBS 표시가 있는 마이크에다 대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쪽에서 제때 비료를 보내줘서 인민들이 농사짓는데 수월합니다. 우리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 내용이 KBS 뉴스로 보도됐습니다.

선득후공(先得後供)은 전략이 아니다

또 금강산, 개성 같이 남북 간의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 만나는 군인들의 태도도 점점 바뀌었어요. 그게 뭘 말합니까? 소위 '접적 지역'에서 군인들의 자세가 유연해진다는 게...기초적인 수준이지만 그게 바로 군사적 긴장 완화고, 신뢰 구축의 출발입니다.

분위기만 좋아진 게 아니에요.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 간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상호 협력, 무선 교신, 경고 방송을 들으면 바로바로 움직여 주는 것 같은 게 협조가 잘 됐어요. 그건 2004년 6월 3~4일 설악산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2차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인데, 협조하지 않으면 쌀·비료 지원이 제대로 안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북한 군부가 동의한 겁니다.

물론 지금은 다 무효가 됐고 지나간 얘기가 되어버렸어요. 22일 보도된 통일연구원 여론조사를 보니까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햇볕정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북쪽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완전히 리셋됐어요.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우리말을 들어야 쌀과 비료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그렇게 움직이지는 쉽지 않지요. 작은 것부터 지원을 시작하고 조금씩 늘려 줘가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거나 서로 도움이 되는 문제에 대해 상대측의 협조를 끌어내는 식으로 접근하는 선공후득(先供後得) 방식이 훨씬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 아닌가요?

지금 정부처럼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임금 문제도 받아주겠다, 즉 선득후공(先得後供)하려고 하면 협상도 잘 안 되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게 다른 말로 하면 전략이라는 겁니다. 전략 없이 그냥 정책 목표만 가지고 북한을 움직이겠다고 하면 목적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안 될 겁니다. 선공후득이 그나마 전략적이지 선득후공은 전략도 아니고, 통하지도 않습니다.

동·서독 관계에서도 그랬어요. 서독은 동독이 필요로 하지 않다고 해도 자꾸 지원을 해서 지원에 인이 박히게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의존성을 토대로 방송 개방이나 왕래조건 완화를 유도했거든요. 지원을 일절 하지 않으면서 태도 변화를 먼저 하라고 해가지고는 쉽게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겁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대북 인도적 지원이 북쪽의 민심과 당국의 태도를 바꾸었고, 경협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작은 신뢰지만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략이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정책은 논리적으로 체계가 서야 되지만, 전략은 논리적일 필요가 없어요. 아니 전략이 논리적이면 실은 아무 것도 못 이루어 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략이 매우 논리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원칙있는 남북관계'로 변화시키고 글로벌 수준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싶으면 북쪽이 따라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선비는 항심을 가져야

끝으로,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통일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22일 토론회에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를 발표했는데요...우선 좀 이상한 게, 작년 1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두 달 이상 가지고 있다가 지금 내놨어요. 여론조사 항목이 수 백 개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첫 번째 대목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북핵 해법이라는 그랜드 바겐에 대해 국민의 84.1%가 찬성한다고 했어요. 작년 9월 한미 정상회담 전후해서 나온 그랜드 바겐에 대해서는 외교통상부마저 지난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고에서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 방법에 대해 5국과 계속 협의 중"이라고 했어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걸 실토한 겁니다. 제목만 있는 구상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명했길래 국민들의 84.1%가 지지하나요?

어떤 여론조사기관 사장 말씀이, 여론조사라는 게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하더군요. 유도성 질문, 조사자에게 유리한 결론이 나오도록 교묘하게 살살 유도하는 식으로 해서 숫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설문조사 방식으로 하는 정책 홍보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관련 부처가 "구체 내용과 추진방법은 (지금 5개월째) 5국과 협의중"이라고 국회에 보고하기 2개월 전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그랜드 바겐에 대해 84.1%가 지지를 했다? 그 설문지 원문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여론조사를 해서 청와대·통일부에 보고가 들어가면, 어찌 보면 나라 일을 결국 망치는 거예요. 창안자들이 그랜드 바겐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국민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걸 관련국한테 얘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기들이 알기에 아직 구체적인 내용도 없는 정책을 84.1%가 지지한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통일연구원은 1991년에 출범했는데, 내가 그해 1월 초대 부원장으로 발령이 나서 출범 준비를 하고 2년 좀 넘게 연구진들과 함께 초창기 연구원의 기틀을 닦았었습니다. 그 후 청와대에 가서 3년 넘게 일하다가 96년 말에 다시 통일연구원장으로 갔어요. 그러다 보니 연구원에 대해서는 애착도 있고 연구원의 문화나 풍토, 같이 일했던 연구진들의 기개나 성향 등등에 대해서 조금은 압니다. 그런데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좀 통일연구원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정부와 정면으로 각을 세우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란 건 정부가 올바로 일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기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KDI(한국개발연구원)를 만든 게 최초였는데, 그때도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라는 취지로 만들지 않았어요. 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장기적인 관점에서 챙겨야 할 걸 건의해 달라는 거였거든요.

과거 통일연구원은 그랬어요. 노태우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17년여 동안 연구원 박사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무조건 '옳소!' 박수 치지 않았습니다. 내부 보고서 형식으로 문제점을 얼마든지 지적하고 밖에 나가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말했어요.

예외가 한 건 있었군요. 2005~6년 쯤에 어느 일간지에 정부 정책을 너무 강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한 박사 연구원 한 사람이 문책 인사를 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내부 보고서가 아니라 언론에 공개적으로, 그것도 강한 비판을 하는 바람에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번 여론조사도 그렇지만, 요즘 나오는 일반 연구보고서들을 보면 이건 좀 심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정부 정책이 구구절절 옳고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얘기만 하려면 뭐 하러 그 많은 박사 연구원들까지 초빙해서 연구를 합니까? 다 내 후배들이고 그렇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얘기라고 듣지 말고...이런 식으로 숫자놀음을 해서 정부 정책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하면 연구원의 존립 근거가 훼손됩니다.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어요.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항심(恒心)을 가지고 연구해야 됩니다. 과거에 자기가 글을 쓰고 발표를 했으면, 그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라도 그 기조는 최소한 견지해야 돼요. 정권이 바뀌어도 문제 자체의 특수성이나 보편성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해서, 정부 정책이 옳으면 옳은 대로 거기에 이것만 좀 더 보태서 하면 좋겠다고 하고, 잘못 나가면 이렇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오히려 복잡해진다는 권고도 해야 하는 겁니다.

절대 왕권 시대인 조선조에서도 홍문관, 예문관을 두고 선비들로 하여금 조정의 잘잘못을 가려서 건의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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