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회원국들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유럽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를 모두 가져가라고 촉구할 예정이어서 미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브 레테롬 벨기에 총리의 대변인인 도미니크 디엔느는 벨기에,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5개국이 유럽에 있는 200개 이상의 미국 핵탄두를 없애라는 요구를 수 주 내에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디엔느 대변인은 나토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영토에 핵무기를 배치한 경우는 미국밖에 없다면서, 자신들의 요구는 재래식 무기를 포함한 광범위한 군축 협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레테롬 총리는 한 성명에서 벨기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을 찬성하고 오는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토 무대에서도 그러한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유럽에 배치한 핵탄두는 총 220여 개로 이탈리아와 터키에 각각 90개, 독일과 벨기에에 각각 20개가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폭탄들에 대해 폭격기에 의해 직접 투하되어야 하는 구식 핵탄두라고 평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2004년 130개의 미국 핵무기가 철수된 바 있다.
벨기에의 전직 고위 인사들도 정부의 움직임에 발을 맞췄다. 빌리 클라스 전 나토 사무총장, 루이 미셸 전 외무장관, 장 룩 디엔느 전 총리,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총리 등은 지난 주 현지 언론에 공동 명의의 성명을 게재해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핵무기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며 유럽 내 핵무기 제거를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냉전은 끝났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핵 정책을 세워야 한다"며 "유럽에 있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군사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유럽에서 핵무기를 없애라는 말이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핵 억지력 자체를 없애라는 건 아니며, 나토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토 회원국들은 작년 말 개별 국가가 아니라 나토 전 회원국의 의견을 기반으로 핵무기 제거를 주장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나온 5개국의 이번 요구는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갈등을 이어나가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은 작년 9월 체코와 폴란드에 MD를 설치하는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접해 있는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을 취소하며 한 걸음 물러서는 듯 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미국의 MD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러시아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8일 미국이 MD를 밀어붙이 경우 러시아가 현재 협상중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나토 5개국의 핵무기 제거 요구는 MD를 둘러싼 미러 양국의 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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