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필자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필자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UDC(The Union for Democratic Communication)'라는 학회에 속해있다. 이 학회 모든 회원들에게 단체로 발송된 이 메일은 첫머리에 이명박 정부를 한국의 신보수 정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학회의 단체 메일에 한국 정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서 반가운 마음도 들고, 놀랍기도 해서 서둘러 메일을 읽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메일은 읽어 내려가던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내용이었다. 필자와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외국 교수들이 이 메일을 보고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로시 키드 교수 "'미디액트' 가장 최근의 언론자유 억압 사례"
학회 회원들에게 단체메일을 발송한 샌프란시스코 대학(University of San Francisco) 미디어 학과의 도로시 키드(Dorothy Kidd) 교수는 신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08년 집권한 이후, 한국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독립 언론사와 영화사들의 문을 닫게 만들고, 언론사와 문화예술 단체들에게 지원하던 지원금을 삭감하는 등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도로시 키드 교수는 특히, 가장 최근에 행해진 이명박 정부의 언론자유 억압 사례로 공공미디어 센터인 '미디액트(MediAct)'에 대한 탄압을 사례로 들었다. 키드 교수는 '미디액트'가 한국 독재정권 붕괴 이후 한국의 미디어 시스템을 민주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미디액트'가 그동안 수많은 미디어 제작자들을 양성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들을 전달할 수 있도록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미디어 정책들을 개발하고 입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졸속심사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영상 미디어 센터인 '미디액트'의 운영진을 참여정부 때 구성된 기존의 운영진에서 얼마 전 급조된 친정부 보수성향의 '시민영상 문화기구'라는 새로운 단체로 교체하면서 한국의 독립 미디어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영진위로부터 영상미디어 센터의 새로운 운영진으로 선발된 '시민영상 문화기구'는 1차 심사에서 꼴찌로 탈락한 '문화미래포럼'이라는 단체의 사업 계획서와 거의 유사한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2차 심사에 제출해 1등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1차 공모 때 꼴찌로 탈락한 '문화 미래포럼' 회원이었던 교수 2명이 2차 심사의 심사위원으로 선발 되었고, 이중 한 명은 심사위원장을 맡아 자신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유사한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시민영상 문화기구'를 1등으로 선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브랜드' 아무리 강조하면 뭐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이미지가 곧 경쟁력이라며 '국가브랜드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국가 이미지 제고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해 왔다. 그런데, 회의석상에서 아무리 말로 외치고 강조해도 외국인에게 비친 이명박 정부의 현장에서의 정책추진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모습이라면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영진위의 영상미디어 센터 운영진 선발 과정을 통해 외국의 언론학자들에게 비친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와 문화예술과 관련된 정책의 반민주적이고 후진적인 모습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언론학 교수들에게 비친 이러한 한국정부의 반민주적인 사례는 수업시간에 교수들을 통해 외국 학생들에게 반민주적인 미디어 정책 사례로 소개될 수 있어 그 파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들어 서방 주요 선진국들의 회의인 G20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의장국이 되어 대외 이미지가 제고되었다고 홍보하면서, 그 위상에 걸맞은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것으로 이는 누구든 자유로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고, 정부 정책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과 절차를 통해 추진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진정 이명박 정부가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사회가 이명박 정부의 진정성을 믿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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