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혼동이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초래한 측면이 있다. 한국의 국방장관이 북에 대한 '선제타격'을 공식적으로 운위하고, 통일부와 국정원이 주도해서 '급변사태'에 대응한 계획을 마련하고 나서며 남북대결을 격화시키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해외언론에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직접 거론하며 대화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에 맞물려 북 정부도 혼동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으로는 개성관광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시사하고 개성공단 관련 협상을 하는 반면, 국방위원회는 "보복성전"을 운위하고 북의 인민군은 훈련을 빙자해 서해상에 포화를 뿜는다.
이 혼동은 행위자의 의도를 짐작하려 할 때 더욱 심해진다. 한국 정부는 왜 이러는 것일까? 북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설왕설래, 근거 없는 추측과 근거가 취약한 분석은 혼동을 가중시킨다.
▲ 지난달 29일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해병대원들이 북한의 해안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발칸포 전투배치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행위가 시사하는 함의는 훨씬 명확하다. 한반도 군비경쟁의 심화다. 한미연합사는 일찍이 공지전 개념을 한반도에 적용, 유사시 북의 종심을 핵무기를 비롯한 다양한 무기로 초토화한다는 작전계획을 발전시켰다. 북은 이에 대응해 군사력을 전방에 집중하고 장거리포로 서울을 볼모로 잡는 비대칭전술로 맞섰다. 북의 비대칭전술은 선제 핵 타격도 고려할 수 있다는 미국의 대응을 낳았고, 이는 북의 '억제력', 핵무장화를 초래했다.
한편 북의 핵무장은 핵무기가 없는 한국군의 대응타격 및 선제타격론을 낳았고, 이러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무기체계의 도입과 작전계획 등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국방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은 공허한 돌발발언이 아니라 한국군의 실체였던 것이다.
최근 이뤄진 북의 포사격은 한국군의 선제타격에 대한 북의 대응이었다. 불시에 '선(先) 선제타격'할 수 있는 능력, 다수의 지점에 다양한 무기체계를 분산배치해서 하나의 화점에 동시 집중타격할 수 있는 '분산타격' 능력이 그것이다. 한국군이 그간 확보하고 발전시킨 선제타격, 대응타격 능력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그 결과 남북은 '선제타격' 능력과 '선 선제타격,' '대응타격'과 '분산타격'이 대치하는 세계 초유의 화약고가 되었음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새 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도 놀라서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실수로 수천, 수만 발의 포탄이 순식간에 교환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혼동은 이 현실을 애써 무시하는 데서 나타난다. 눈길을 잠시 현실에서 치우고, 현란한 수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한반도의 현실은 혼란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혼동 속에 엄연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군비경쟁의 심화다.
개성공단회담과 금강산·개성 관광 회담은 물론 남북 정상회담이 설사 성사되더라도 군비경쟁의 심화라는 엄중한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 회담이 가져올 변화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혼동은 북미관계에도 존재한다.
혼동의 상당 부분은 북이 초래했다. 북은 미국이 하지 말라고 애원하던 '로켓 발사'를 기어코 했고, 당연히 예상되던 유엔 안전보자이사회의 대응조치에 초강경으로 대응하며 2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 같던 북은 작년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기점으로 180도 태도전환을 했다. 비핵화와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으로 초청해 양자회담까지 개최했다. 이어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며 '평화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북의 '진정성'이 어디에 실려 있는지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미국도 일조했다. 유세 기간 당선이 되면 금방이라도 북과 정상회담을 할 것 같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은커녕 그보다 낮은 급의 양자협상조차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이 평화협정의 체결을 요구하자 그 필요성을 인정하며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듯 하면서도 북의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다. 유엔 제재는 확실히 밀어붙이지만 북과의 외교에는 그와 같은 확실함이 결여되어 있다.
이 기간 한반도 안보현실은 확실히 악화됐다. 북은 2차 핵실험을 했고, 재처리로 플루토늄 확보량을 늘렸다. 이미 확보했던 플루토늄은 '무기화'했다고 하고, 우라늄 농축도 시작했다고 한다. 확실한 핵능력의 증대다.
미국은 북을 겨냥한 핵 억제력을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변환과 주한미군 재배치를 차근히 진행시키고 있다. 2월 1일 발표한 '4개년국방검토(QDR)'에서도 북을 겨냥한 군사전략을 늦추지 않았다. "북한과 이란" 같은 국가가 미군의 군사력 투사를 방해하는 환경에서도 적을 격퇴시키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QDR에서는 이전과 같이 '양대전쟁'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군사작전을 수행하면서도 "능력 있는 호전국 2개국"을 동시에 격퇴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무기체계와 작전개념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북미의 최근 유화적인 발언들로 인해 가려지고 있다. 북은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면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가 이뤄질 것 같이 말하고 있고, 미국은 북의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가 시작되면 평화협정도 될 것 같이 말하고 있다. 평화의 언사들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양국의 군사력은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이제는 혼동을 거둬들여야 할 때다. 현란한 평화의 수사를 거둬들이고 평화의 행동을 실천할 때다. 현재의 혼동은 군사적 긴장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을 제어하고 비핵화와 평화로 가기 위해서도 혼동을 걷어내고 엄중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핵무장과 전쟁 위험이라는 양대 질곡을 벗어나기 위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양대 바퀴를 굴리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하지만 미국은 근시안적으로 북의 핵확산을 막는 기술적 조치에 연연하고, 북은 너무도 통이 크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만을 촉구하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협상을 하나의 틀 안에서 동시적으로 추구하는 '양대 평화전략' 만이 '윈 윈'하는 유일한 출구인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세계 핵안보 정상회의는 '양대 평화전략'을 이행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6자회담 참가국 대표들을 모두 초청해 6자 비핵화 합의와 4자 평화합의를 동시에 정상급 합의문으로 채택할 유일무이의 기회다.
한반도를 횡행하는 평화의 언사들이 이러한 평화의 행동으로 구체화되는 순간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혼동은 평화와 비핵화라는 변화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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