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 시대 위대한 영혼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 시대 위대한 영혼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김민웅 칼럼]<49> 폭력, 착취, 거짓에 항거하여 진리와 자유를 옹호한 한 평생

조작된 "대중의 생각"이라는 감옥을 부수는 일

한 시대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고 죽음을 가져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흑인은 백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잔혹하기 짝이 없는 노예제도를 유지시켰고, 유태인들은 우수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믿은 결과 이들에 대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베트남에 공산주의가 권력을 쥐는 것을 저지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하는 선택이라는 생각은 무려 1백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다.

사실은 권력아 만들어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대중의 생각이 괴물 같은 이데올로기가 되고, 권력의 수단으로 작동할 때 대중은 결국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자신의 진정한 이익은 그로써 박탈된다. 권력은 대중의 뇌를 조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그래서 때로 대중들은 자신의 벗과 형제자매를 권력에게 고발하고 범죄자로 몰기도 하며, 이들을 희생 제물로 삼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건 이데올로기로 구축한 감옥이다. 이걸 부수려는 시도와 행위는 모두 권력의 견제와 압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깨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자기희생을 각오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역사가 변화하고 대중이 눈을 뜨는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한번 그렇게 바뀐 생각은 세상을 바꾸고 시대가 암울한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어렵게 만들어 준다.

▲ 평화 시위에서 연설하고 있는 하워드 진

작은 행동의 큰 의미

지난 1월 27일 88세로 타계한 미국의 역사가이자 사회운동가로 1950년대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양심으로 존경을 받아온 하워드 진이 바로 그런 사람의 하나이다. 그는 역사가 변화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의 출현에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소소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의 생각을 문제 삼았으나 대중을 멸시하지 않았으며 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찾았다. 이들의 아주 작은 행동변화가 수백, 수천, 수백 만 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거대한 역사적 변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건, 그의 말을 따르자면 "인간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방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에 저항하여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치를 둔 모습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곧 놀라운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작은 행동이기도 하고 때로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는 선택이기도 한 일들이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생명을 구해냈다. 흑백으로 분리된 레스토랑의 식사 규칙을 깬 사람들, 버스에서 백인이 요구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관습에 도전한 사람들, 징집영장을 보관한 사무실에 들어가 영장을 모조리 태워버린 사람들, 전쟁을 정당화시킨 국가최고기밀 문서를 몰래 유출해 복사한 뒤 언론에 공개한 사람들, 대학의 관료적 횡포에 저항한 사람들, 이 모두가 다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한 몫을 한 이들이다.

위험한 선택

하워드 진은 이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진 현장에 있었거나 그 당사자이기도 했으며 이들을 지켜내고 옹호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던졌다. 흑백 차별과 분리정책에 항의하여 나선 시위에서 경찰에게 맞고 체포, 구금되기도 했으며 FBI의 추적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교수직을 박탈당할 위기도 여러 차례 겪는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조지아 주 애틀란타의 흑인 여대 스펠만 컬리지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대학에 적을 옮기고 나서도 하워드 진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용기 있는 행동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 현대사의 양심 그 자체였다.

개인의 양심은 국가안보를 위해 포기되어야 한다, 흑인은 백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볼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전쟁은 언제나 정당하다, 이런 식의 생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을 때 여론조사를 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명백할 것이다. 국가주의 앞에서 양심의 가치를 앞세우거나 흑인과 백인의 인간적 존엄성이 동일하다고 주장한다거나 또는 미국의 전쟁을 비판하는 것은 권력과 대중들로부터 지탄받고 격리당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이런 행동에 나서기 이전에 이미,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성장하고 청년시절 해군 기지 조선소에서 뼈 빠지는 육체노동을 감당하면서 현실의 모순과 진보적 사상의 힘을 그 내면에 길러나갔다. 1922년생인 그는 스무 살의 나이에 2차 대전 폭격수로 참전한 이후 전쟁의 본질이 파시즘에 대한 전쟁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죽여서라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제국주의 체제를 완결하겠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현실과 역사에 대한 그때까지의 생각을 완전히 바꾼다.

여기에는 이미 전쟁의 대세가 결정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투의지를 이미 잃은 독일병사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의 머리위에 포탄을 떨어뜨리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탄이 크게 작용한다. 전후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위한 승리의 추가와 소련의 동아시아 패권을 견제하기 위한 핵폭탄에 의한 일본 민간인 대학살이라는 사태는 그로 하여금 미국의 국가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역사를 새롭게 읽게 하다

이후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뉴욕대학에 들어간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그의 첫 직장인 남부 조지아 스펠만 컬리지로 향한다. 1960년대 인권운동의 점화가 이루어지는 현장으로 간 셈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단지 대학 강단에만 머물지 않고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외쳐지는 거리 그 어디서나 자신의 의사를 서슴없이 표현하고 권력의 억압을 정면으로 마주한 당찬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그에 못지않은 미국의 양심 노암 촘스키, 반전운동의 기수 다니엘 베리건 신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하바드대 경제학 박사이자 미 국무부 관리였던 다니엘 엘즈버거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나타나는 곳이면 그 어디든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수만 명이 모여들었다. 대중은 어리석지 않았으며, 흑인들에 대한 인권탄압과 베트남 전쟁의 폭력은 이로써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부 흑인들의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이들의 저항운동에 하워드 진이 함께 하면서 그는 미국 역사의 이면을 파헤쳐나간다. 이 결과가 1980년 출간 된 이후 수백 만부가 팔려나간 <미국 민중사>였으며, 반전운동을 통해 미국의 폭력과 법의 계급성을 폭로한 <독립선언서들(Declarations of Independence : 국내에서는 <오만한 제국>으로 번역됨)>이다.

<미국 민중사>는 콜럼버스의 미 대륙 상륙의 역사적 해석을 완전히 바꾼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 역사의 출발선에 놓여 진 야만적 약탈과 전쟁, 정복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미국인 자신의 자화상을 고통스럽게 목격하도록 만든 책으로 이제는 필독서가 되었으니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게 된다. <독립선언서들>은 미국의 이데올로기부터 법과 정의, 경제적 평등과 역사 등에 대한 날카로운 그의 비판의식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논쟁의 힘을 든든하게 얻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정치와 역사, 교육과 법에 대한 책, 미국 무정부주의 여성운동가 엠마 골드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희곡 <엠마>. <소호에 온 마르크스> 등 무수한 저작을 남겼다.

<미국 민중사>로 유명해지기 전인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한참이었던 1967년, 그는 130페이지에 달하는 작은 소책자 <베트남, 철수 논리(Vietnam: The Logic of Withdrawal)>를 펴낸다. 이 책은 반전 운동 현장이면 어디든 배포되는 팜플렛이 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그 어떤 논리를 동원하더라도 베트남 전쟁의 현실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폭격하는 행위"라고 못 박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이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미군을 질서 있게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이 시기 그의 논리가 미국 정부를 즉각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미국 대중들을 움직였고 그 결과는 그의 희망대로 되었다.

하워드 진에 대한 기억

1980년 광주학살이 있고 난 직후 미국으로 유학 갔던 필자는 그 시기 출간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고 전율했다. "광주"를 겪고 나서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했던 그 당시, 하워드 진은 미국인의 목소리로 미국의 역사적 죄를 고백했고 무엇을 극복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와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치열하게 역설했다. 그러고 나서 10년 뒤, <독립 선언서들(오만한 제국)>을 밤을 새워 읽은 기억이 새롭다. 역사학자가 마치 법 철학자처럼 현실의 민감한 사안들을 놓고 치밀하게 논증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 첫 장의 한 구절,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단지 흥밋거리이거나 지적 토론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고 충분히 결론내릴 수 있다."라는 대목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은 단지 고정관념의 비 융통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폭력이 되고 죽음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깨우침은 지금까지 의미 있게 내면화하고 있는 철학의 하나다.

이후 편지로 교류했던 하워드 진은 2003년, 필자가 <밀실의 제국: 전쟁국가 미국의 제국 수호 메카니즘/ 한겨레신문사>의 내용과 출간 소식을 알리자 책 뒤에 실을 짧은 글 하나를 보내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고마운 일이었다. "이 책은 한국인 학자가 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중요한 비판서로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아메리카 제국의 문제에 대한 학위논문을 쓴 필자에게 격려를 보냈던 하워드 진은 한국에서 온 한 젊은 학자가 자신의 책을 읽고 감동하고 편지로나마 서로 의견을 나누었던 것을 기뻐했던 모양이다. 이제 그의 타계 소식을 듣고 글을 쓰자니 그의 정의에 대한 헌신과 지적 비범함이 더욱 마음에 깊게 스며든다.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다시 하워드 진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 절차와 목적 모두가 다 파괴당하고 있다. 법은 정의를 지켜내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 아니라 권력과 재력을 지닌 자들의 이익을 방어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불법적 존재로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영향력 있는 보수 언론과 권력이 장악한 매체는 거짓을 양산하면서 권력의 나팔수가 되고 있으며, 이런 와중에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대중들의 의지는 약화되고 있거나 생활의 압박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식인들은 대체로 침묵을 지키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으며, 부당한 권력의 명령과 요구에 용기를 가지고 저항하는 일은 과거의 일처럼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가고 있다.

이런 때에 하워드 진을 다시 읽는다면 우리 안에서 새로운 용기와 의지, 그리고 번뜩이는 논리의 힘이 솟아날 것이다. 그의 글은 언제나 생생하고 긴장 넘치는 문체와 내용으로 가득하며 정의를 위한 투쟁에 대한 확신을 길러준다. 놓칠 뻔했던 초심도 다시 세우고 저항자체가 대안이 되는 이유를 알게 해주며 우리를 점점 더 강하게 만들어 주며 그로써 역사의 새로운 무대를 함께 세워나가는 기쁨도 새삼 일깨워 줄 것이다.

하워드 진의 자전적 저작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에서 그가 자신의 뜻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고 소개한, 베트남 전쟁 징집 거부로 4년형을 받고 투옥된 그의 보스턴 대학 제자인 필립 서피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건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철학자 미구엘 우나무노가 한 말의 인용이다.

"때로 침묵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침묵하지 않는 양심,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하워드 진은 그 침묵을 깨는 용기와 의지, 그리고 지적 성실함의 가치를 이 시대의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그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능력이 아니겠는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