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국회는 없다. 국민적 논의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국정현안을 한나라당이 번번이 다수의 의석을 내세워 강행처리, 단독처리하는 바람에 국회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한나라당이 다수의 힘을 믿고 기계적으로 밀어붙여 정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민주당을 비롯한 소수당은 존재감마저 상실한 형국이다. 이에 맞서 야권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와도 손잡고 연합공천, 선거연합, 연합정부, 공동정부 등 갖가지 이름으로 대항세력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입장 차, 온도 차이로 말미암아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정권창출 성공에 이은 다수의석 확보에 도취되어 정치적 반대자를 이념으로 착색해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성이 강한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상황은 엄중한데 민주당이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착시적 오류에서 비롯된 오판이다. 어떤 정치현안도 민주당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하고도 남는다. 그 결과 국민의 눈에는 민주당은 상처뿐인 좌절감을 안고 무력감에 안주하는 모양으로 비친다. 그 모습을 바라본 국민은 실망감을 넘어서 기대감을 저버린 느낌이다. 한나라당의 전횡에 따라 정국이 요동쳐도 답보상태에 머무는 민주당 지지율이 그것을 말한다.
민주당이 의지를 관철한 정치 현안이 있나?
한나라당은 집권 이후 줄곧 반대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2008년 12월 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다. 당일 안건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었다. 한미 FTA는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다수의 국민이 반대한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야당이 반대한다는 핑계로 사전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야당의원의 참석을 아예 봉쇄하고 의결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문제의 해머가 등장했던 것이다. 그 짓 말고는 야당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불법 날치기의 이유가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 먼저 비준해서 미국내에서 거론되는 재협상론에 쇄기를 박는다는 이른바 선제공격론이란다. 가당찮은 논리로 국가적 수치를 저질렀지만 미국은 아직까지 어떤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언론관련법을 2009년 7월 22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채 날치기 처리했다. 재투표에 사전투표, 대리투표까지 등장했다. 말이 사전투표, 대리투표이지 그것은 부정투표이다. 헌법재판소가 절차상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이것은 국회에서 재논의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유효하다고 우기며 법을 공표한 데 이어 시행령 시행을 강행했다. 불법상태에서 조·중·동에게 종합편성채널을 주려는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회도 헌재도 필요 없다는 자세다.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이 의원직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 시민사회단체와 손잡고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국민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폈다. 그 때 민주당 의원 모두 한나라당의 유희물로 전락한 국회를 버리고 총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투쟁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언론관련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고 날치기를 주도한 김형오 국회의장은 의회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 또 민주당은 정치쟁점화해서 사퇴를 받아내는 투쟁을 벌여서야 한다. 그런데 그가 사회봉을 잡은 정기국회에 참석했다. 이것은 그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민주당이 4대강을 반대한다며 관련예산 삭감을 주장하며 심사를 지연시켰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일반 회의실로 옮겨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야당 위원들에게는 장소변경을 고지조차하지도 않았다. 야당이 뒤늦게 알고 뛰어갔지만 출입구를 이미 봉쇄된 상태였다. 법적효력을 마땅히 따져야 할 일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예산 부수법안 9건을 직권상정하려고 법안심사 기일을 지정했다. 하지만 심사기일 지정공문이 법제사법위원회가 산회한 다음 도착하여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럼에도 예산안을 야당 의원들의 반대 시위 속에 통과시켰다. 법정처리시한을 29일이나 넘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단독처리의 법적효력에 관해 논란이 잠시 있는 듯하다 이제는 없던 일처럼 되고 말았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예사로 무시한다. 한나라당이 소수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소수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국회라면 민주당은 그 존재이유-가치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4대강을 요란하게 반대했지만 예산안 통과와 함께 그 소리도 강 건너갔는지 조용하다. 이제 민주당이 세종시 원안수정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수롭게 보지 않는 눈치다. 국회에서 다수의 힘으로 누르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차기 대선주자로 가장 유력한 박근혜 의원이 반대한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하다. 친박계의 향배만이 원안수정의 장벽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민주당, '김대중-노무현' 집권에서 배워라
민주당이 반복되는 다수의 횡포 앞에 번번이 당하는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언제까지 소수의 한계만 한탄하며 무력감에 빠져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이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한 야권연대 논의에서 중심점에 서지 못한 느낌이다. 민주당이 반대만 한다는 비난을 의식한 나머지 생활정치를 강조하며 뉴민주당 플랜을 내놓았다. 정책정당으로서 거듭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너무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한들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실현가능성이 있느냐는 문제다. 언론은 물론이고 지지자들도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그야 말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은 장악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무참하게 유린되고 있다. 경찰의 곤봉과 검찰의 기소권에 의한 법치주의가 법의 지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6월 항쟁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민주주의가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의 독선 앞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민주당이 의회주의를 신봉한다고 국회를 지키고 있지만 결과는 매번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도와주는 들러리 노릇이나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과연 대화의 상대이고 정치의 상대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이명박 정권을 뛰어 넘는 결단의 시기가 왔다. 연고지역인 호남에서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곧 당선이라는 기득권에 탐닉해 있다가는 언제 독배를 마실지 모른다. MB아성을 뚫고 지방선거에 이어 대선에서 승기를 잡자면 지역, 이념, 계층을 뛰어 넘어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 모든 기득권을 버린다는 각오와 용기를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다기화한 정치세력을 흡인하는 자력발산이 가능하다. 민주당이 야권연대 논의에서도 구심점역을 맡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다. 그 해답은 김대중-노무현의 집권에 있다. DJ의 집권은 이질적인 JP와의 연대, 이른바 DJP가 성공을 이끌어냈다. 노무현의 집권도 호남+일부 PK+일부 계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같은 연대가 없었다면 집권은 불가능했다. 이 길만이 민주당이 거듭나고 살 방향이다.
지금 진행되는 야권연합 또는 야권연대가 너무 지지부진하다. 서둘려야 한다. 시간과 국민은 민주당을 기다리지 않는다. 정권에 의해 포획된 언론이 상습적으로 온갖 구실을 붙여 공격할 테지만 그것을 여론으로 잘못 알고 당황할 필요가 없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행동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준다면 의제여론(pseudo-opinion)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국민의 절반 가량은 지지정당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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