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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그 이전에 '당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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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그 이전에 '당신'이 있었다

[모 피디의 그게 모!]<10> 전설이 된 사람, 김현식

열 모 - 요절한 예술가

전설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도 이렇게 비가 왔을까. 김현식이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

갸웃. 이게 노래를 잘 부르는 건지 못 부르는 건지. 가수는 어디가고 왜 늘 흑백의 LP 표지 그림만 '가요 톱 텐'이 나오는 브라운관을 메우는 건지. 그런데 왜 경건하리만치 처절한 느낌이 드는 건지. 한 때 미성이었던 김현식의 갈라진 목소리는 충격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휘감기던 묵직한 정서는 경이였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김현식의 사후에 발표되었다. 성공과 인기, 욕망을 쫓는 화려한 쇼 무대 위에 울려 퍼졌던 그의 노래는 어쩌면 결혼식장에 찾아온 장례식의 상주 같았다. 내 귀의 캔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문득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했던 그 노래는, 시한부임을 예감하던 한 인간의 유서였다.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죽음이 데려간 하나의 세계와 끝내 이루지 못한 가능성을 안타까워한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우리 자신에게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일찍 떠난 사람들을 기림으로써 우리의 삶도 그렇게 허무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위로하는 것이다. 푸른 빛이 미처 지워지기도 전에 나뭇가지를 떠난 나뭇잎 같은 요절한 가수들. 한 장의 음반을 비명처럼 남기고 간 유재하와 쓸쓸한 목소리만큼이나 쓸쓸하게 스스로 삶을 마감했던 김광석, 그리고 피를 토하듯 노래를 불러 내놓던 김현식. 우리는 하염없이 가슴을 움켜쥐며 그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살아보지 못한 나이와 시간을 살아나간다. 생명의 유지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질없는 삶을 떠난 젊은이들은 남은 사람들의 허무를 위로하기 위해 전설로 자리매김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람인 것에 절망하고, 사람인 것에 안도하며,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죽음을 앞두었다는 사실만큼 우리가 사람이라는 진실의 폐부를 찌르는 것은 없다. 김현식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우리는 죽음을 앞둔 예술가가 삶을 노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그 음악을 담기 위해 모인 동료들을 떠올린다. 상품성이니, 판매량이니, 인기니, 스타니 이전에, 삶과 죽음이 주는 경건함, 그 안에서 사람을 표현하고자하는 진실함을 듣는다. 그 안에 녹아든 촌스럽고 한스럽고 우직하던 80년대의 정서를 듣는다.

그런데 가끔씩 전설은 탐욕스럽다. 김현식의 전설이 김현식의 노래들을 잡아먹을 때가 있다. 삶의 비극성과 드라마가 그가 성취한 노래보다 더 주목 받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으면 잘 팔리는 법. 우리는 <비처럼 음악처럼>의 '당신'에서 김현식을 떠올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 너무 말이 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탐식한다. 이름값을 우걱우걱 먹어치운다. 자꾸 존재 자체를 전설로 추어올리려 한다.

하지만 가수의 진정한 가치는 노래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노래에서 가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자신과 자신이 마주 앉는 그 순간을 매개하는 마법으로서 노래와 가수가 존재하며, 노래는 들을 때마다 곁을 지키고 선 충실한 연인이 된다. 가수의 전설은 그 노래를 들을 때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 김현식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우리는 죽음을 앞둔 예술가가 삶을 노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그 음악을 담기 위해 모인 동료들을 떠올린다.ⓒ뉴시스

그래서,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나는 김현식이 아닌 나의 '당신'을 생각하려 한다.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과,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내 안의 그 감정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게 해준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감사한다. 나의 찬사는 그가 아니라 그의 노래에 바쳐지며, 나의 감상은 그의 권위가 아니라 나의 행복에 바쳐진다.

가객 김현식이 간지 20년. 세상은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바뀌었다. 가수도 노래도, 대중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전설이 되어버린 요절한 예술가들은 우리가 정말 무엇을 바라며 음악을 들었는지를, 왜 그 노래들을 하염없이 따라 불렀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돕는다. 달콤한 귀엣말의 홍수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한 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 하지만 그래서 기억할수록 오롯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마음들. 그런 마음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주변으로 모여 전설의 모자이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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