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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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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된 의사

[한윤수의 '오랑캐꽃']<179>

니말은 스리랑카에서 4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의사가 되진 못했다. 왜냐? 의사가 되려면 미국이나 영국에서 2년 이상 더 연수해야 하는데 해외 연수를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좌절했지만 대신에 스리랑카에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다. 한 달에 30에서 35만 원 정도 벌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왔다.
다행히도 손재주가 있어서 사장님의 신임을 받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은 순탄했다. 3년 일하고 스리랑카에 갔다 와서 또 1년이 지났으니 벌써 4년이 흘렀다. 행복했다.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차도 샀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원래 그에게는 죽마지우가 두 명 있었다. 그 친구들도 한국에 오고 싶어 해서 병이 생긴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친구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소문을 듣고 한국인 행정사가 접근했다.
"한국으로 오려면 경비가 좀 드는 건 알겠지?"
"물론이죠. 한 사람 당 얼만데요?"
"150."
행정사는 두 사람 데려오는 비용으로 300만원을 현찰로 달라고 했다. 니말은 현명해서 나중에 50만원을 더 주기로 하고 우선 250만원을 은행계좌로 송금했다. 그래서 돈을 주었다는 증거가 통장에 남은 것이다.
오늘 된다 내일 된다 하면서 석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넉 달째가 되면서 행정사는 연락이 거의 되지 않았다.
아뿔사! 속았다는 것을 알고 돈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행정사는 전화도 받지 않고 그를 피했다.

그는 어디에다 호소할지를 몰라 고민하다가 사장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장님은 그를 데리고 경찰서까지 갔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혹시 사기 사건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금전 대차관계로 본 것은 아닐까?

그는 결국 발안센터로 찾아왔다. 내가 보기엔 이건 명백한 사기 사건이었다.

▲ ⓒ한윤수

그를 데리고 시흥경찰서에 가서 다시 한 번 부딪쳐보기로 했다.
내 차로 가려고 했으나 천만의 말씀! 니말은 99년식 소나타를 갖고 있었다. 내 산타모에 비하여 외모도 빛나고 내부도 깨끗했다. 얼마나 정비를 잘했는지 엔진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웬만한 부속은 새 걸로 다 갈아서 거의 새 차 수준이었다. 한국의 정비공들이
"대단해요!"
하며 혀를 내둘렀다니까.
그는 자동차 박사였다! 운전하는 동안에도 스리랑카 친구들한테서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엔진에서 앓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뭐지?"
하는 식으로. 그러면 니말은
"냉각수가 끓는 거야. 써머스타트를 갈아봐."
라는 식으로 대꾸하며 능숙하게 운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바야흐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자동차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행정사가 딱 걸렸다.
시흥경찰서 조사관이 전화하자 별 생각 없이 받은 것이다. 조사관이 물었다.
"돈 언제까지 줄 겁니까?"
"이 달 말까지요."
"만일 그때까지 안 주면 *정식으로 입건할 겁니다. 아셨죠?"
"네. 알았습니다."
행정사는 약속했다.
이제 먹은 돈을 토해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경찰이 개입했으니까.

*정식으로 입건 : 행정사는 약속한 날에도 돈을 주지 않았고 경찰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결국 경찰에서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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