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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에 대한 권력의 행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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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에 대한 권력의 행패

[김민웅 칼럼]<48> 용산참사,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하늘 끝 망루로 올라간 사람들

토요일인 1월 9일 오후 두시 반이 넘자, 서울역 광장에서 국민장을 마친 운구행렬이 남영동을 지나 용산 남일당 노제 현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만장이 나부끼는 기다란 행렬이 경찰의 통제 망에 갇히다 시피하면서 참사의 현장으로 힘겹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우리와 같은 철거민들이 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저 위태로운 하늘 끝 망루로 오르는 일이 없도록 이 잘못된 재개발을 바로 잡아 주세요. 없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고 이상림씨의 미망인 전재숙씨가 대표로 전한 인사에 적지 않은 이들이 눈물을 적셨다. 걸으면서도 그 소리가 가슴에 쓰라리게 맴돈다. 참사를 겪은 이후 지난 355일 동안의 고통으로 유가족들은 기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목소리로 일깨우고 있었다. 용산참사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심을 가르는 문제가 되었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은 채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계신 문정현 신부님 좌우로는 이수호 민노당 최고위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종걸 민주당 의원, 방인성 목사, 이강실 목사 등이 선두행렬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내 옆으로는 전종훈 신부님과 명진 스님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문 신부님은 "아. 참 아쉬워. 이렇게 끝날 수는 없는데......"하신다.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겁니다. 2010년, 이렇게 모두 하나가 되어 출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자 문 신부님이 "그것도 그러네."하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많은 시민들이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명박 정권의 살인개발을 규탄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구호를 외치거나 핏대를 세우지 않는 그야말로 침묵의 평화행진이었다.

▲ ⓒ프레시안(사진=최형락)

공권력의 행패 아닌가?

그러나 서울역에서 노제 현장까지 가는 길이 자꾸만 막히고 지체가 되었다. 경찰이 행렬 중간에 끼어들어 행진대열을 반으로 쪼개거나 인도 쪽으로 자꾸 밀어붙이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공권력의 행패였다. 드디어 문 신부님의 화가 폭발하셨다. 행진대열을 어떻게든 가느다랗게 만들려는 경찰의 압박 작전에 냅다 일갈을 하신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시는지, 중간급 지휘자로 보이는 경찰간부가 그 소리에 움찔하고는 슬슬 뒤로 피해 물러선다. 우리 문정현 신부님을 누가 당하랴.

가령 미국에서는 누군지 몰라도 일단 영결차 행렬이 지나면 모든 차량이 진행을 중지한다. 애도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지난 1년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에 있던 고인들의 영결차가 지나는데 경찰이 도리어 그 진행을 가로막고 훼방하고 교통 혼란을 더욱 조장하는 방식으로 행진을 윽박지른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쪽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처지가 된다.

30분이면 될 거리가 2시간 이상 소요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행진 대열 건너편에는 무장한 전투경찰이 계속 이동하면서 시민들을 자극했다. 용산참사 고인들을 추모하는 국민장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끝까지 모멸당하고 있었다.

이런 식이 되면 고인들을 땅에 묻는 것은 날이 저물어 밤이 되어야 가능해진다. 참으로 난폭한 처사가 아닌가? 때마침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고인들의 얼굴이 그려진 대형 초상화가 더욱 처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억울한 죽음이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는 일이 이리도 어렵다. 전종훈 신부님이 기가 막히신지, "작전이구만. 참 야비해. 이거 다시 시작해야하는 거 아냐?"하고 분을 내며 중얼거린다. 명진 스님이 그 말을 받아, "선거에서 확실하게 보여줘야 해. 젊은이들이 대거로 쏟아져 나와 표의 힘을 행사해야 하는데." 하신다.

권력의 포악한 얼굴

용산참사 현장 남일당으로 가는 도로사정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경찰은 원활한 행진대열의 이동이나 불편하지 않은 교통정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노제 현장으로 가는 과정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지침을 받아온 자들처럼 보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들이 행진대열을 교통 혼잡의 주범처럼 비난하도록 만들기 위한 연출에 열중하는 자들처럼 여겨졌다. 그 누구의 죽음이든 우선 경건한 자세로 대하는 기본도 없는 권력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민중은 그 권력의 포악함에 이렇게 짓밟히고 희생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이제 장례식이 마쳐진 것으로 모든 것은 일단락 된 것일까? 권력은 그러기를 기대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이들의 영결행렬조차도 능멸하는 정권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이다. 이런 야만의 권력이 아무런 심판도 받지 않고 그대로 지탱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일들을 이 시대가 곧 잊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착각이다. 기록이 엄연히 살아있고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진상은 하나하나 드러나게 될 것이다.

▲ ⓒ프레시안(사진=최형락)

제대로 흔들자

홍세화 선생이 말한 대로다. 그는 최근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6월의 지방선거가 가진 의미를 깊이 응시한다. "단기 전망이라 하더라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독주 구도를 흔드는 것 말고 어떤 중요한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면서 이렇게 이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던져야 하는 물음이 '어떤 조건으로 뭉칠 것인가?'가 아니라 '뭉치면 정말 이길 수 있을까?'에 있다면, 뭉침의 조건을 앞세우기보다 뭉침의 과정에서 조건이 도출되도록 해야 한다.......뭉침의 열매를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민주당 세력이 차지하고 진보에 돌아올 몫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애당초 지킬 기득권이 없는 진보의 몫이라고 답해야 한다. 독주 세력이 가장 꺼리는 게 무엇일까. 우리는 흔들어야 한다. 부동(不動)의 땅은 동토에 머물 것이며 흔들어야 기포가 생긴다." 기포가 생기면, 권력 이동의 실마리가 풀려간다. 작은 틈새에서 격변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패악을 저지르는 권력은 존재이유를 스스로 파괴한 것이다. 이걸 흔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폭력적인 독주를 막아내지 못하는 한, 우리의 불행은 끊임없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니 제대로 한번 흔들어보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의지가 없는 권력, 공동체의 진정한 연대를 파손하는 정부, 공권력을 정치적 욕망에 동원하는 정권, 민주주의적 소통을 거부하는 집단, 이들 모두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권리는 국민들에게 날이 갈수록 재앙이 되어갈 뿐이다.

이 재앙을 막아내고 2010년의 역사가 진보하도록 하는 연대, 통합, 힘의 결집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속도 또한 중요하다. 연대와 통합이라는 목표와 원칙에 뜻을 같이 한다면, 머뭇거리는 것은 자멸이다. 용산참사와 같은 희생자들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위해, 진보세력은 자신을 던져야 한다. 필요한 모든 것을 하려는 의지를 뿜어내야 한다. 버리면 산다. 던지면 부활한다.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는 머리와 가슴에서 나올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일 뿐이다.

민중들이 겪는 고통을 한 시라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하는 헌신이 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위태로운 망루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더는 없도록 해달라는 저 피맺힌 절규가 들린다면, 이제 남은 선택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데.

막상 닥쳐서 허둥대지 말고 한 시도 허비하지 말고 서로 단단하게 손을 잡을 일이다. 연대와 통합, 그리고 연정의 원칙에 대한 합의와 선언이 그야말로 시급하다. 상황은 뻔하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지금,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첨단의 정치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더는 늑장 부리지 말자. 결단이 늦을수록 속수무책이 된다. 난마와 같이 얽힌 정국에서 판단이 빠르고 쾌속의 추진력이 있는 쪽이 이길 것이다. 자기를 비우는 쪽이 승리의 영광을 고난을 겪는 민중에게 헌사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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