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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vs <공부의 신> vs <파스타>,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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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vs <공부의 신> vs <파스타>, 승자는?

[모 피디의 그게 모!] 격돌! '2010 월화 드라마'

여덟 모 - 월화 드라마 삼국지

미실이 가도 선덕 여왕의 치세는 얼마나 길었던가. 이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100년만의 폭설에 강추위까지 몰아닥쳤다. 사람들이 TV를 보지 어딜 가겠는가. 진인사 대천명. 할 일을 마쳤으니 이제 하늘의 뜻, 아니 시청자의 뜻만을 기다릴 뿐.

방송 3사 월화 드라마 팀들에 있어 1월 4일은 모두 2010년의 첫 미니시리즈 1회를 방송하는 가슴 졸이는 날이었다. 한 날 한 시 1회 방송. 진검승부다. 편성 탓, 시청률의 흐름 탓, 대세 탓을 할 게 없다. 일단 기획과 캐스팅으로 사전 승부를 보자.

▲ 방송 3사 월화 드라마 팀들에 있어 1월 4일은 모두 2010년의 첫 미니시리즈 1회를 방송하는 가슴 졸이는 날이었다.

사전 승부

SBS 제중원 : 구한말, 백정이 의사되는 이야기
캐스팅 : 박용우, 연정훈, 한혜진

KBS 공부의 신 : 꼴찌가 명문대 가는 이야기
캐스팅 : 유승호, 김수로, 배두나, 고아성

MBC 파스타 : 레스토랑에서 요리하고 연애하는 이야기
캐스팅 : 공효진, 이선균, 이하늬, 알렉스

타깃 시청층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제중원>은 극성 강한 정통 드라마를, <공부의 신>은 신랄한 학원물을, <파스타>는 트렌디 멜로물을 표방한다. '기대감'의 측면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아무래도 <파스타> 쪽이다. 좋은 멜로물을 원하는 시청자는 많지만 기획과 캐스팅만으로는 기시감이 든다.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 프린스 1호점>, <달콤한 나의 도시>등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가 될 듯한데, 작년에 같은 계열의 기획인 <트리플>이 성공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공효진과 이선균은 좋은 배우들이지만 우리는 이미 그들이 멜로물에서 어떤 연기를 주로 선 보이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좋은 멜로물은 드라마 업계의 지지 않는 태양이다. 결국 얼마나 매력 있고 공감 가고 신선하게 트렌디 멜로의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인데, 그건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것.

기획에서 가장 안정감을 보여주는 것은 <제중원>이다. 일단 제작 규모가 가장 크고 충성도 높은 전 연령대 시청자가 따라 붙곤 하는 사극 장르다. <하얀 거탑>의 작가와 <신의 저울>의 감독이 만든다는 정보는 전문직 드라마의 향기도 기대하게 한다. 혼란의 시기인 구한말에 백정이 서양 의학을 배워 의사가 되는 내용이라니, 신분 상승의 욕망과 좌절, 라이벌과의 승부와 가슴 아픈 사랑 등이 그려질 것이다. 지나치게 무거워져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제중원>은 좋은 드라마란 타이틀을 약속 받은 듯한 기획이다.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박용우를 주연으로 기용한 점도 극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진지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 편 좀처럼 보지 못했던 의외성이 느껴지는 기획이 <공부의 신>이다. '꼴찌 명문대 가기'라는 기획은 눈에 확 띈다. 그러나 눈에 띄는 만큼, 다큐도 예능물도 아닌 드라마가 과연 공부법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남는다. 또 유승호, 고아성, 이현우 등의 캐스팅도 일면 화려해보이지만 불안한 측면이 있다. 한국 영화 드라마에서 강렬한 기억을 남긴 고등학생 캐릭터를 되새겨 보자. <비트>의 정우성, 임창정, <학교>의 장혁, 배두나, <로망스>의 김재원, <여고괴담>시리즈의 김규리, 최강희, 김규리(김민선), 박예진, 이영진,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 이정진, 한가인, <친구>의 유오성, 장동건…. 교복 안에 유폐되었다 뿐이지 사실상 성인의 꼴을 갖추고 있던 배우들이었다(<어린 신부>의 문근영은 예외로 하자). 그런데 <공부의 신>에서의 고교생들은 진짜 제 나이의 학생들로써 아직 아역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배우들이다. 드라마의 주요 주인공이 보통 20대일진대, <공부의 신>은 10대 학생과 30대 선생의 느낌으로 캐릭터들이 양분되어 있다. 겨울 방학 시즌의 가족 시청자를 기대할 순 있지만 일반적인 드라마의 소구 지점과는 다르다.

그래서 드라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근소한 차이로 <제중원>이 앞서되 <파스타>와 <공부의 신>이 바짝 뒤쫓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했다. <제중원>의 극성과 안정감, 규모에 대한 신뢰가 담긴 예상이었다. 물론 시청률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진검 승부

이거 큰 일이다. 각자의 무기가 너무 달라 합을 겨루기가 요원하다.

먼저, M본부의 <파스타>. 파스타 레스토랑의 주방을 축구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역동성으로 연출한 직업 묘사도 훌륭하지만, 이선균의 캐릭터는 강마에 김명민과 접신한 듯하다. 그간 이선균이라는 배우와 같이 했던 신사적이면서도 우울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에서 크게 앞으로 나아가, 독설을 내뱉으며 소리를 꽥꽥 지르는 거침없는 나쁜 남자의 모습을 만들었으며, 그에 맞서는 공효진의 의뭉스럽고 씩씩한 매력은 배가됐다. 이선균과 공효진은 대중과 함께 한국 드라마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조금씩 쌓아 나간 배우들이다. <하얀 거탑>, <커피 프린스 1호점>, <달콤한 나의 도시>의 '그 이선균'이 보여주는 연기 변주와, <네 멋대로 해라>, <눈사람>, <고맙습니다>의 '그 공효진'이 보여주는 연기 변주는 꽤 근사하고 의외로 신선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내 주방에 여자란 없다'는 신조를 가진 이선균의 캐릭터와 '3년만에 요리사 명함을 달게 됐는데 결코 쫓겨날 수 없다'는 공효진 캐릭터는 서로 조응하며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고, 앞으로 사각관계의 주인공이 될 알렉스와 이하늬의 등장도 새로운 기대를 불어 넣는다. 말랑말랑하고 간질간질한 멜로물을 매끄러운 화면으로 보고 싶었는가. 그렇다면 <파스타>가 제대로 된 요리를 내 놓고 있는 셈이다.

S본부의 <제중원>. 구한말의 역사에서 어떤 쾌감을 길어 올리는 일은 죄책감을 동반한다.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세는 영웅을 낳는 법. 박용우가 연기하는 백정 '소근개'는 백정의 업에 충실하게 살았기에 살을 찢고 뼈를 자르는 서양 의학의 외과의로서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버려진 영웅이 라이벌과 연인을 만나 점점 보석으로 변해가는 동안 보는 사람의 마음도 같이 뜨거워질 것이다. 사극이 궁 밖을 벗어났다는 신선함과 그럼에도 유지되는 서사의 유장한 무게감은 드라마를 감상하는 자세를 바로 잡게 한다. <파스타>가 낄낄대고 꼼지락대며 보는 것이 제 맛이라면 <제중원>은 양미간을 살포시 찌푸리고 가슴을 두드리며 보아야 한달까. 구한말의 젊은이들이 신분을 막론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며 품는 각자의 욕망과 꿈은 무척 현대적이며, 남자 주인공들은 '어머니의 상실'이라는, 각자 물러설 수 없는 이유 하나씩 가슴 속에 품고 있다. 박용우의 처연한 백정 연기는 시청자들이 바로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드라마의 기둥 줄기가 되고, 연정훈의 차가운 연기는 둘 사이의 갈등을 곧추 세운다. 우리는 이미 이 주인공들이 앞으로 겪어나갈 역사의 질곡을 알고 있다. 다음 주에는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역사의 큰 매듭을 해쳐나가는 묵직한 정통 드라마이자 한국에서 서양의학이 태동했던 시기를 그리는 <제중원>은, 예상대로 안정감과 뜨거움이 같이 있는 새로운 사극이다.

K본부의 <공부의 신>. 10여년 전 드라마 <학교>에서 교복 저고리 앞 주머니에 손을 꽂고 두 눈을 치켜뜨던 고등학생 배두나가 선생님이 되어 돌아왔다. 반갑다. 왕년의 스타가 연속극의 어머니가 되어서 돌아온 느낌과는 또 다르다. 배두나는 여전히 배두나다. <학교>에서 배두나가 교실에서 삶을 살아냈다면 지금은 교무실에서 살아낸다는 것이 다르다. 개성을 간직한 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역할이 바뀐 것일 뿐. 그리고 그 새로운 세대를 아직 젖살과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친구들이 채웠다. '태왕' 유승호, '세종' 이현우, <괴물>에게 잡혀갔던 고아성, '티아라'의 지연과 이찬호 군까지, 다섯 명의 고교생들이 발랄하게 누군가의 아역이 아닌 자기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는 것이 예쁘게 잡힌다. 전 세대를 풍미했던 언니 오빠(배두나와 김수로)들이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주는 모습은 그 구도 자체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러나 피상적인 수준의 학생과 선생에 대한 묘사와, 입시 교육에 대한 선명한 관점이나 구체적인 방법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불안 요소로 보인다. 그래도 원작인 <드래곤 사쿠라>에서 말했던 대로, '입시지옥을 뚫고 패자가 되지 않는 법'을 역설하는 김수로의 웅변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힘이 있고,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의 흔들리는 눈빛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흔든다. 또한 겨울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기에 가장 부담 없이 적합한 장르라는 점에서 <공부의 신>은 또 다른 강점이 있다.

사실 방송 3사의 월화 수목 밤 10시대의 드라마 3파전은 제작자의 입장에선 지독한 출혈 경쟁이다. 사운을 걸고 블록버스터를 내놓지만 살아남는 것은 대개 1등 한 편이며 승자독식의 원칙에 따라 다른 드라마들은 게토화 된다. 상생의 원리에 따르려면 방송 3사가 회당 방송시간을 줄이고 주1회 방송 등의 룰을 만들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서로 엇갈려가며 내는 것이 순리겠지만, 경쟁의 원리가 결국 늘 이런 대격돌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하게 만들어낸 2010년의 첫 월화드라마들은 꽤나 모양새가 좋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순위를 가리고 누가 이겼네 누가 졌네 하는 기사가 많다. 그러나 드라마 삼국지는 무협지가 아니지 않은가. 제작자야 시청률과 순위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시청자들까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발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를 행복하게 골라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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