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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학교 새해 답사…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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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토학교 새해 답사…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

[알림] 답사 키워드는 <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

새해 벽두, 국토학교(교장 박태순. 소설가)가 신춘국토기행 제10강을 준비합니다. 이번 답사 주제는 <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이며 답사 키워드는 '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입니다.

제10강은 1월 넷째 주말인 23-24일 1박2일로, 임진강-한탄강의 봄을 밟으며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고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여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새로운 공간성의 국토를 찾아보고자" 마련됩니다.

박태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 배경 설명>을 들어봅니다.

임진강은 나루(津)에 임하여 있는(臨) 강이라는 뜻이 되겠는데 흡사 나루가 강보다 먼저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한반도 허리에 띠를 두르게 하는 대상(帶狀)의 형상으로 흐르는 강인지라 고대로부터 남북왕래의 군사요충지를 이루었다. 임진강의 대표적인 나루는 물론 임진나루였지만 장단나루(長湍渡)를 비롯하여 여러 나루와 호로고루성, 당포성 등 성곽들도 많았다.

한탄강(漢灘江)은 '추가령 열곡(裂谷)'이라는 특수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추가령은 원산 부근에 있는 산봉우리라 하는데 한탄강은 화산 폭발로 생겨난 주상절리라 부르는 기하무늬의 현무암 바위 벼랑 사이로 흘러내린다. 한탄강은 연천군 전곡읍에서 임진강에 합류되고 임진강은 다시 파주시 문산읍의 조강(祖江)에서 한강과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 임진강ⓒ파주시

한강-임진강-한탄강의 분단선을 찾아나서는 신춘국토답사를 어찌 기획해보는가.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1950년의 치열한 싸움(열전)과 그로부터 전개된 냉혹한 싸움(냉전)은 2010년인 금년에 이미 60년째에 이르고 있다. <6.25의 환갑>을 과연 어떻게 맞아야 하는 것인지 분단의 일선지대에서 살피고 사색하고 명상해보아야 할 바들이 참으로 많다.

파주시의 파(坡)는 방죽, 제방을 가리킨다. 특히 임진강은 층층단애의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장파리, 금파리, 동파리 등에 자연적인 제방이 많았기에 이처럼 파주는 '방파제의 도시'가 되었다.

역사지리부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장단군의 단(湍)은 여울, 급류를 뜻한다. 유서 깊었던 이 고을은 임진강의 여울목들을 끼어 기다랗게 대평원을 펼쳐놓고 있었다. 연천군의 연(漣)은 잔잔한 물결이 연이어 일렁거리는 형상을 가리키는데 역시 임진강과 한탄강을 연달아 보듬고 있는 고을임을 알리는 지명이다.

포천시의 포(抱)는 껴안고 있다는 뜻인데 포천천과 영평천과 한탄강을 실제로도 겹겹으로 껴안고 있다. 철원군은 대평원을 펼쳐놓고 있는데 '쇠울타리 고원'이라는 뜻이 되니 궁예가 태봉국의 도읍지로 삼기 이전부터 이미 금성탕지(金城湯池)의 길지로 인식되고 있었던 듯하다.

한탄강-임진강-한강이 산자수명의 화려금수강산을 펼쳐왔음은 이에 인접된 고을들의 지명으로서도 능히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국토의 S자형 몸매의 한 허리를 댕강 끊어놓은 60년의 세월 동안 이 지역이 감당해야만 했던 온갖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당장에 바꿔놓을 수는 없다.

난해한 군사용어에 외래어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한냉(寒冷)의 전선(戰線)을 이루어 볼모지대이면서 불모지대가 되어버린 이 분단 벌판의 빼앗긴 들녘에도 그렇기는 하더라도 봄은 분명히 찾아오고 있음을 믿는다. 신춘순례이기보다는 심춘순례(尋春巡禮)로서 이 지역의 해빙(解氷)을 살피어 국토의 봄소식을 먼저 가슴에 담고 싶다.

비무장지대(DMZ), 휴전선(the cease-fireline),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공동경비구역(JSA)의 지역은 그러하지만 민간인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아니하다. 민통선(CCL- Civillian Control Line)을 넘어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이기는커녕 실제로는 중무장지대인데다가 지뢰밭을 이루고 있고,

군사회담이 열리기는 하지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있는 DMZ 일대는 여전히 난해하기만 하다. 이 지역 관할의 주체와 객체가 과연 어찌 되는지조차 민간인의 눈에는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민통선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경직상태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다.

분단선은 더 이상 마지노선도 아니고 마지널 라인(경계선)도 아니다.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전위지역이고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첨단지역으로 부상되고 있음을 무엇보다도 지자체들마다 강조한다. 생태관광과 안보관광 투어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산업자본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가령 연천군은 '로하스 연천'을 내세우고 있다. 거대군사기지를 이루었던 곳의 생태 자연 환경 복원의 염원이 간절함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의 건강과 지속(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ty)'은 서민층이 아직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테마이다. 보다 근원적인 생활터전 마련부터 세워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곧 분단유랑민의 정주민(定住民) 안정 대책을 튼튼하게 장만하면서 수도권지역의 마지막 남은 녹색 주거공간의 조성사업에 나서야 할 것으로 관찰된다.

분단유랑민의 지역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에 '분단유목문화'라 부를 수 있는 당대 문화가 형성돼 있는데 국토 전체가 이러한 유목문화에 견인되어 있다고 살필 수 있다.

오늘의 국토에 전방지대와 후방지역이 따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곳이 일선지대인 것이지만 의도적인 무지몽매가 작동되어 내가 사는 곳은 안전지대로 상상하면서 임진강-한탄강 일대에 무거운 짐을 떠맡겨놓고 있는 듯한 현상이 계속되어 왔었다. 임진강 일원의 분단유목문화는 구체적으로는 분단공간구조와 분단시간구조의 양 축을 통해 이루어져 온 것이었다.

우선 분단공간구조로부터 '분단유목민'들이 한꺼번에 배출되었는데 국토분단으로 인해 피난민, 월남민, 난민, 유랑민이 집단적으로 생겨나고 거기에 퇴역군인들의 이주 정착도 중첩되었다. 왕조시대에는 도호부였던 장단군(長湍郡)은 1944년 현재로 6만 7천명의 인구가 사는 곳이었는데 1951년 봄에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문산으로 소개(疏開)하여 천막촌에 수용시켰다.

이어서 '군 작전의 필요'에 따라 군청 소재지가 있었던 도라산 역 일대를 비롯하여 장단군 전역은 전략적인 불지르기 폭파를 통해 초토화된다. 그 후로부터 구 장단지역에는 출입영농과 입주영농의 특이한 영농이 생겨나는데 아파트촌이 아니면서도 출입과 입주로 갈리는 것은 민간인 왕래에 제약을 가하는 'DMZ 농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다음으로 분단시간구조로부터 분단유목민이 또한 배출되는데 '역사의 미아' 계열과 '역사의 고아' 계열이 있다. 분단이데올로기는 국토의 분할만 아니라 역사의식의 분열마저 초래하게 하였던 바 있었다.

식민세대-6·25세대-4·19세대로부터 일부 정신적인 디아스포라 유랑자들이 '미아'의 형태로 파생돼 나왔다면, 분단구조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으려 하는 '분단 이후 세대'에서 후자의 '고아' 계열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하지만 얄타체제-냉전체제-분단체제의 마지막 잔존지역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세 유형으로 살필 수 있다.

첫째로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계통을 들 수 있는데 '역사의 고아' 탈피 노력이라 할 수 있다. 199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철원의 노동당 당사 건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하는데 분단청년문화에 대해 발해의 대륙성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줘."

두 번째 계통으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불러일으킨 국내외의 큰 반응을 꼽을 수 있다. 시민사회의 분단의식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남측 병사와 북측 병사의 인간적인 만남이 어떻게 가능하며 또한 왜 불가능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은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화두로서 제출되고 있었다.

세 번째 계통으로 냉전분단 구조와 현상에 대한 비판담론이 제출돼오고 있는데 1956년에 발표된 박봉우의 <휴전선>과 1965년 여름에 발표된 김수영의 <절망>이라는 제목의 시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분단의 풍경은 반성되지 않고 있으며, 6.25 환갑맞이 60년 세월의 당대적 절망은 정녕코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파주시, 연천군, 포천시, 철원군 일대에 여러 형태의 광풍이 불고 있다. 군-관-민이 수직구조의 삼각관계를 구성하던 군사문화 중심의 전방사회가 더 이상 지탱되는 것은 아니지만 군-관 사이의 애증관계가 복합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분단유목민' 사이에 개발만능주의의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

동북아시아 아킬레스건의 긴장감과 예민성을 감내하면서 정치의 소외와 경제의 낙후를 인내해야만 했던 이 지역의 모순 관계와 갈등 관계를 벗겨내어 진정한 소통과 만남 그리고 평화와 생태의 낙토(樂土)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임진강-한탄강의 새봄맞이 국토답사는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고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여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새로운 공간성의 국토를 찾아보고자 마련된다. 자물쇠로 잠가놓는 것이 아니라 열쇠로 열어놓는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하여…, 내가 나를 올바르게 만나기 위하여….


교장선생님이 마련하신 답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월 23일(토요일)
07:30 서울에서 출발
-7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호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있습니다.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원거리 조망 지역이 있으니 가급적 망원경을 지참하십시오.
-폭설로 인해 현지 사전 답사에 차질이 생겨 일정의 일부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추후 보완하겠습니다^^

09:00-09:40 임진강역, 평화누리공원, 망배단
서울에서 평양-신의주로 왕래하던 경의선 열차는 분단으로 문산역이 잠정적인 종점이 되고 있었는데 2000년 9월 18일 '경의선 복원사업 기공식'을 거행하게 된다. 없애버렸던 철로를 새롭게 놓아 우선 임진강역과 도라산역으로 철마가 달릴 수 있게 됐다. 뿐 아니라 북쪽의 개성공단을 남쪽 사람들이 출퇴근하여 근무하는 남북관계가 새롭게 열리게 되어 임진강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임진각광장'이라 하던 장소는 '평화누리공원'으로 명칭을 바꿔 부르게 되었는데 생태와 평화를 위한 글로벌 테마파크로 조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반공 교육장으로 삼기 위한 공간조성도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분단극복과 통일염원을 위한 온갖 국내외 행사들이 개최되는 명소가 돼오고 있다. 망배단 등의 랜드마크가 새로워지기는 하였으나 평화누리공원의 공공디자인이 보다 더 넓어지고 더 심오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임진강 건너편 장단 들판의 방죽을 포함시키어 '자유의 다리'와 망배단을 함께 소요해볼 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이며 현 단계의 시대정신은 어떠해야 하는지 깊은 사색과 명상을 위해 누구나 찾아오고 싶어 하는 광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국토의 진정한 광장이 요청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 철책선- 철새도래지- 출판도시- 통일전망대- 헤이리 예술마을- LG디스플레이 산업단지- 전방부대를 순환하고 순례하는 경계인(마지날 맨)의 체험을 권장해보고 싶기도 하다.

파주시 문화관광 바로보기-> http://tour.paju.go.kr/index.do

10:00-10:20 화석정, 임진나루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서관대로(의주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을 이루던 임진나루(臨津渡)는 역사의 폐허로 변해버렸다. 덕수 이씨의 대물림 정자이자 율곡 이이의 문화사적들을 간직해온 화석정마저도 근대도로들 속에 갇혀 미아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화석정ⓒ파주시

문화역사지리학의 붕괴 속에서도 화석정이 임진강 전망대의 역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옛 임진나루 일대의 문화조영을 새롭게 되살려내야만 한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통일시대가 되면 임진나루야말로 서관대로의 물화번성 포구와 강항의 면모를 반드시 되찾아 예전 영예를 뽐내게 될 터이려니.

10:50-11:40 고랑포구, 경순왕릉, 호로고루성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원당리 일대)
임진나루는 조선왕조 시대로 들어서면서 번성했지만, 장단나루(현재의 두지나루)는 고려 창업시대부터 남북왕래의 요충지였으나 지금은 장남교라는 교량의 확장공사로 어수선하고 황포돛대 선착장이 그냥 썰렁하기만 하다. 임진나루보다 더 오래 된 역사를 지닌 장단나루의 기억상실증과 나루의 기능상실이 아무래도 더욱 허망하다.

개경과 남경(서울)을 잇는 고려시대 공로(公路)의 중요 길목일 뿐만 아니라 소금과 젓갈과 조기의 바다 배들이 닿는 임진강 최상류의 어항이었다. 남북왕래의 물자교역 집산지를 이루어 식민시대에는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세워지기도 했다. 고려 창업 당시에 <장단곡>이라는 노래가 불렸다고 했는데 왕건 찬양곡이라 했다. 조선 창업공신 정도전의 장단나루 도강시는 이성계와 왕건을 엉뚱하게 비교한다.

"가을 물은 맑고 맑아 하늘 같이 푸르기만 하다/ 군왕은 한가한 날에 누선(樓船)에 올랐도다// 사공들아 '장단곡'일랑 부르지 말라/ 지금은 바로 조선 개국 제2년일세."

1392년에 조선이 개국하였는데 그 다음 해 가을철 한가한 날이라니, '군왕(이성계)'께서도 한 시름 놓았을 무렵이었을까. 정도전의 이성계에 대한 아부와 찬송에 운치가 있다. '장단곡일랑 부르지 말라'라고 정도전이 사공들에게 지시한 까닭이 의미심장하다. 왕건 찬양곡은 이미 과거의 일이니 그 노래를 조선 태조 앞에서 부르는 것은 불경스럽다는 지적이다. 이제부터 이성계를 위한 '용비어천가'를 새로 지어 불러야 할 때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임진강은 장단나루를 지나면서 고깔 모양으로 휘어져 오르는데 그 정수리 쪽에 고랑포가 있었다. 지금은 군사작전 지역에 붙어 있어 옛 고랑포구임을 알리는 표석 하나가 달랑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불경기 활성화 방안으로 이 지역의 관광공원화 사업이 예약되어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역대 시인묵객들이 찬탄해마지 않던 적벽(赤壁)의 바위벼랑들은 무너지고 임진강 푸른 물은 철조망에 갇혀 있다.

고랑포구 뒷산의 경순왕릉은 망국 신라 임금의 애환을 아로새겨놓고 있다. 경주로 돌아가 장지를 장만하고자 하는 것을 막아 고랑포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게 했다. 폐허의 고랑포구에서 경순왕-왕건-이성계의 신라-고려-조선을 함께 만나는 문화체험은 특이한 쪽이다.

호로고루성은 삼각형으로 축조한 강안(江岸) 평지성으로 원래 백제가 쌓은 것이지만 고구려가 개축하여 고구려성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후일에는 신라군과 당나라군의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 임진강의 수심은 이 여울목 일대에서 얕아져 배를 타지 않고 건널 수 있어 군마 이동이 용이하니 중요한 군사요충지가 되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강 건너편에도 호로고루 대안성(對岸城)이 있었는데 미군부대 영내가 되어 기초적인 발굴조사마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개탄해마지 않을 일이다.

연천군 문화관광 바로보기->http://www.iyc21.net/_yc/tour/a06_b01_c01.asp

12:00-12:40 점심식사 (백학면 식당가)

13:00-14:00 DMZ 태풍전망대 (연천군 중면 황산리)
태풍전망대 일대는 정전협정을 코앞에 두고 1953년 7월 15일과 16일의 13시간 동안 격전장을 이루었던 곳으로 264m 높이의 이 전망대는 1991년 12월 3일 개관되었다. 전망대에서 휴전선까지는 800m, 북한의 초소까지는 1,600m의 거리를 두고 있는데 임진강이 남한 땅으로 유입되는 최북단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북한 쪽의 임진강에 세운 황강댐이 보이기도 하는데 작년 9월에 홍수 참사를 야기한 바도 있었다. 이 일대는 두루미 등의 철새 도래지로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전망대 방문만 아니라 민통선 마을 답사가 가능해질 경우에는 시간이 연장될 수 있습니다).

14:30-15:00 백제적석총, 임진강댐 드라이브 (연천군 군남면 횡산리)
북한의 황강댐에 대한 대응댐으로 임진강댐(일명 군남 홍수조정지) 공사를 벌이고 있는데 여러 제약과 애로와 한계가 있다. 이 댐의 수위를 높이면 북한 땅마저 수몰지역이 되기 때문에 이는 남북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남한 쪽의 수몰예정지역에 대한 고고학 발굴조사 과정에서 '백제적석총'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건설단과 국방문화재연구원이 합동으로 고고학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특기할만하다. 문화재 관련 업무에 대해서 아주 소홀하기만 하였던 국가기관들이었던 것이 아니던가.

여러 유물 유적들을 확인해본 결과 소서노와 온조 세력이 국내성으로부터 남하하면서 집단 거주하였던 중간 기착지역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임진강 전망이 뛰어난 분지를 택해 이미 2천년 전에 큰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그리고 현대역사가 아로새겨진 연천의 임진강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탐방로'가 되도록 해야 할 일이다. 횡산리에는 1986년에 민통선 마을이 형성되어 입주영농을 해왔는데 DMZ 출입이 과거처럼 까다롭지는 않다. 임진강댐 건설의 규모와 타당성 등에 대한 찬반 시비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만 있다.

15:20-15:40 당포성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고랑포의 호로고루성과 함께 고구려성의 특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고구려유적으로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되는 군사요충지를 당포성이 관장하고 있으니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다.

16:00-16:30 숭의전 (연천군 미산면 아미2리)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 등 여덟 임금의 위패와 함께 개국시대의 복지겸, 신숭겸 등에서 여말의 정몽주에 이르기까지 16인의 공신들을 모신 고려왕조의 묘전(廟殿)이 곧 '숭의전'인데, 정작 이를 세운 것은 조선왕조가 개국 당시의 혼란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이성계의 창업 시대 초기에는 고려 왕족들과 귀족들은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추방당했던 것이지만 조선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유화정책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어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 터에 숭의전을 세우게 되는데 여러 사연과 비화들이 전해온다.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에 놓인 도감포(都監浦)는 임진나루, 장단나루와 함께 임진강의 3대 나루라 할 수 있다. 도감포는 '독안 포구'라는 우리말 명칭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것인데 휘어져 도는 강물이 오메가 문자형(Ω)을 이루고 있으니 항아리처럼 생겼다.

아미산 끝자락에 놓인 숭의전에서는 도감포 일대의 풍광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데 잠두봉, 종못, 용못, 썩은소(沼) 등의 지명에 어려 있는 전설과 민담과 역사 사화가 무궁무진 안타깝고 애처롭고 비장하기만 하다. 숭의전은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으나 1971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되고 1973년에 복원되었다.

▲ 숭의전ⓒ연천군

17:00-17:30 한탄강댐, 재인폭포, 동막골유원지 드라이브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연천군은 남쪽의 전곡읍과 북쪽의 연천읍을 갈무리하면서 대곡창지대를 펼쳐놓는다. 임진강 합수머리 지역(전곡읍)에서 한탄강 상류의 추가령 열곡 지대의 평원(연천읍)을 답사하는 코스는 경원선 철로의 북상 루트와 중복되기도 한다. 3번 국도는 연천에서 아직 2차선도로로 남아있는 곳이 있었는데 4차선 확장공사가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한탄강 기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 테마를 잡아볼 수 있다.

첫째는 한탄강댐-재인폭포-동막골 유원지 일대의 답사인데 한탄강댐을 둘러싼 연천군민들의 갈등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한탄강댐 건설은 임진강 하류의 수방 대책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비판이 있다. 건설을 위한 건설이며 건설족의 개발만능주의 행태라 주장하는 강력한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생태파괴와 환경오염과 관광자원 말살의 폐단 위험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탄강 수자원 보호와 관리를 위해서는 댐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강력한 추진세력의 양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발연대기의 난개발 양상이 뒤늦게 DMZ지역에서 재현되고 있는 중이라는 비난도 있다.

둘째는 3번 국도를 따라 또는 경원선 열차에 편승하여 한탄강역(무인 간이역)- 전곡역- 연천역(전철화 계획은 이 역까지 잡혀 있다)- 신망리역(위탁 발매소 역)- 대광리역- 신탄리역을 두루 답사하는 코스이다.

18:00 저녁식사 및 숙박(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새둥지마을 팜스테이)

1월 24일(일)

06:30-07:30 새벽 산책

07:30-08:30 아침 식사

09:00-09:50 고석정, 승일교
'DMZ의 고장 철원'이라 내세운다. '아름다운 한탄강이 감아 도는 통일의 땅'임을 강조하고 있는 철원군은 '테마도로 관광지도'를 성격별로 작성하고 있다. 안보도로, 역사도로, 자연도로, 놀이도로 등을 분류하여 안내해주고 휴전선 체험관광, 철새 탐조관광, 한탄강 트레킹 등의 체험관광 메뉴를 마련해 놓고 있기도 하다.

고석정 국민관광단지(고석정랜드) 입구에 있는 '한탄강관광사업소'는 '철의 삼각 전적지 관리사무소'라 부르던 기관의 명칭을 바꾼 것으로서 국내 최대 규모의 안보교육장임을 내세운다. 북한 관련 자료전시장을 갖추고 있으며 '안보견학'의 안내와 신청 접수를 받고 있다.

주상절리의 추가령 열곡으로 이루어진 한탄강의 흐름 중에서도 고석정 일대의 경치가 단연 빼어난데 강 중앙에 위치한 23m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있다.

함경도로부터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탈취하여 활빈 활동을 했다는 의적의 사연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보다 상류 쪽의 승일교는 그 교량 건설과 관련하여 엉뚱한 현대사의 한 대목이 비화처럼 전해오고 있다. '한국의 콰이강 다리'라 한다는 승일교의 위쪽에 있는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라 불린다고 한다는데 폭포의 높이는 약 3m이지만 폭은 80m 정도로 넓으니 특이한 형상이다.

철원군 문화관광 바로보기->http://tour.cwg.go.kr/tour/

10:30-11:30 토교저수지, 월정리역, 철원 평화전망대
토교저수지 일대의 철원평야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데 탐조활동은 새벽 해 뜰 무렵, 정오부터 2시 사이, 그리고 해질 무렵을 택하는 쪽이 좋다고 한다. 재두루미와 독수리 등의 자연관찰 학습장 시설도 갖추고 있으나 소음과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차량의 출입은 제한되며 버스 이동만 가능하다.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은 철원 안보관광의 대표적인 경유지이다. 폐역이 되어 열차는 다니지 않지만 녹슨 기관차가 전시되고 있다. 철원군 동송읍 중강리 588번지 일대에 자리한 평화전망대는 지상 3층 건물로 2007년 7월에 완공되었는데 안보관광 전망대로서는 최북단의 시설이다.

궁예의 옛 태봉국 도성지를 눈앞으로 살필 수 있는데 고암산을 진산으로 하여 903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이 도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이중 축조되었다. 외성의 둘레는 4,370m, 내성은 577m의 규모인데 내성에는 궁예만이 사용하던 어수정과 석등 등 많은 유적이 있었으나 대부분 파손되었다 한다.

태봉국 도성지 위쪽으로는 북녘의 평강고원이 아스라하게 펼쳐지는데 북한 선전마을이라든가 왕년의 격전지 '김일성 고지' 등을 전망할 수 있다. 초정밀 망원경 시설과 함께 지형 축소 모형판이 설치되어 국토분단의 현장성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이 전망대는 50인승 규모의 모노레일에 편승하여 출입할 수 있도록 해놓고 있는데 탑승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 고석정ⓒ철원군

12:00-13:00 점심식사(철원읍 식당가)

13:30-14:30 백마고지 전적기념관, 두루미전시관, 이태준문학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1952년 10월 6일부터 중국 지원군 2개 사단과 10일 동안 격전을 벌이면서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던 전적지라 한다. '철의 삼각(Iron Triangle)'을 돌파해야 한다는 미국 8군사령관의 어록에서 비롯되어 당시의 철원 평강 김화를 '철의 삼각지대'라 부르게 되었거니와 그 대표적인 꼭짓점이 바로 385m 높이의 백마고지였다.

철원평야를 통제하는 요새로서 백마고지는 대평원을 힘차게 달려가는 백마의 형상이기도 하려니와 전적기념관은 이 고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철원 평야 전체를 전망하기 좋은 곳을 택하여 1990년에 건립되었다. 상승각이라는 종각에는 '평화의 종'이 매달려 있는데 '민족자존 통일번영'이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있다.

3층 건축물의 두루미전시관은 백마고지 전적지 진입로 쪽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 '월정리 전망대'가 있었던 곳이었다. 백마고지기념관이 건립되어 전망대의 기능이 사라지게 된 자리에 주민들이 두루미전시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철새 관련 온갖 정보와 지식 그리고 박제 조류들도 전시된다.
상허 이태준문학비는 소설가 이태준의 탄생 1백년 생일이 되는 2004년 11월 4일 두루미 전시관 옆자리에 건립되었는데 바로 그의 고향 마을이다.

"조국과 고향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이 위대한 문학자의 자취는 지금도 묘연하다. 하루 속히 통일이 이루어져서 이 고독한 <경계인>의 문학과 생애가 우리 모두에게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기념비의 비문은 분단유목 1백년 역사의 애환을 되새겨보게 한다. 철원이 고향인 시인 민영 선생이 동향의 선배 문학인의 기념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도 한다.

15:00-16:00 철원 노동당사, 도피안사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완공한 러시아 건축양식의 3층 건물이다. 지금은 2층과 3층이 모두 허물어지고 전면의 골격만 남아 있을 뿐인데 인터넷에는 '서글픈 상상력의 폐허'라고 표현한 답사 글이 보이기도 한다.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지금 이곳(이승)에서 벗어나 내세 광명의 저곳(피안)에 당도하게 하는 염원을 품고 있는 사원임에 틀림없다. 국보 제63호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과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을 보유하고 있는 이 '국보사찰'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을 육군 15사단이 재건하여 군승(軍僧)이 재직하고 있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출입허가증을 받지 않고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사원을 찾는 마음이 피안에 당도하는 느낌을 주게 한다.

16:30 서울로 출발

<학습자료 : 임진강 · 한탄강 시 문학>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는 빼어난 자연환경-인문환경-역사환경을 지녀왔기에 특히 고려시대 이후의 시문들이 화려합니다. 근대 이후의 식민상황과 분단상황에서 임진강 일대 문예학이 당대문화와 시대정신을 또한 표현시켜 왔습니다. 국토의 분단 극복도 절박한 명제이지만 역사의 분단 상황을 돌파하려는 인문주의 탐구가 요청됩니다.

이규보의 <조강부(祖江賦)>를 비롯하여 율곡 이이의 <화석정> 등 역대 시편들과 박봉우의 <휴전선>, 김수영의 <절망> 등 근대시편, 그리고 여러분의 분단 기행문과 윤도현의 노래 <임진강> 등의 가사를 수집 수록합니다. <국토학교 카페>에 올려놓고자 하니 많은 이들의 방문을 바랍니다. 국토학교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dadsaschool

국토학교 1월 참가비는 15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와 뒤풀이, 입장료, 여행보험료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10-2471-7410 또는 050-5609-5609 이메일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국토학교는 지난해 4월에 개교하여 국토답사를 매월 빠짐없이 해왔는데 국토강좌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제1강 (4월) :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제2강 (5월) : 영남 전통마을 순례 (답사 키워드 - 산은 책이다)
제3강 (6월) : 호남의 누정문화 원림문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제4강 (7월) : 북강원의 요산요수 (동해안 풍류길 되살린다)
제5강 (8월) :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제6강 (9월) : 금강문화권의 초대장 (옛이야기 재잘대는 실개천 휘돌아)
제7강 (10월): 낙동강 따라 가야 달빛기행 (우리 땅의 고고학 상상력)
제8강 (11월): 만추의 호남 단풍길, 침엽수길 (대자연 소자연 합자연)
제9강 (12월): 동해에서 묵은해 보내기(동해용왕과 수로부인과 해신당)

▲ 국토학교 제10강 답사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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