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래도 다소 가라앉기는 했으나 며칠 간 허드슨 강변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이게 과연 강풍이구나 싶게 휘몰아쳤다. 온 몸이 앞으로 떠밀려 날아갈 것만 같은 무서운 힘을 느낄 정도였다. 성탄절 바로 전날 도착한 뉴욕은 전날 내린 폭설이 녹아 도로가 어중간한 설경을 이루고 있었고, 이틀 뒤엔 비가 그리도 내리더니 날이 풀리나 싶었는데 바람이 도시를 맹폭격하듯 기습한 것이다. 밤새 나뭇가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귀기(鬼氣)마저 풍겼다. 2009년을 이렇게 보내는구나, 하는 심정이 들었다. 아니, 다가올 2010년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 것인지 마치 계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폭풍의 밤을 지내고 난 다음 맨 처음 접한 서울소식은 용찬 참사 해결 이야기였다. 1년이 다 돼가도록 이루 말할 수없는 고통을 받았던 유족들에게는 우선 다행스러운 낭보라고 하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무엇을 끈질기게 고뇌해야 하는지,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도리어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느낌이다. 애초부터 말로 풀 수 있는 길이 있었음도 불구하고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불구덩이에 밀어 죽여 버린 공권력의 폭력과 이후 벌어진 책임전가, 가해자 뒤바꾸기의 논리와 물리적 기반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죽임 당한 사람은 있는데 죽인 자가 없고 일을 이 지경으로 가게 한 자가 있는데 그 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살인적 공권력의 문제를 엄호하는 권력자의 야만적 사고방식을 비롯해서, 이 나라의 국민들을 매일 무뇌아 상태로 만들고 있는 조-중-동과 이들의 짝패인 경제신문들 그리고 TV 매체의 진상에 대한 기만과 왜곡의 논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들의 옆에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사범인 재벌총수의 단독 특별사면이라는 사법권 파괴의 현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고 있으며, 숙의 민주주의의 현장인 의회에 대한 철저한 멸시와 능멸을 정치적 신조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대통령 이명박의 독선과 한나라당의 반민주적 행패가 정국을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 뒤엉키게 하고 있다.
▲ ⓒ뉴시스 |
유니온 스퀘어에 가서 에릭 포너를 읽으며
우울해진 마음을 잠시 접고 뉴욕시 유니온 스퀘어로 가니 그곳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세계 최대의 서점 "반즈앤 노블즈"가 블록 하나 사이로 두 개나 있는 이곳은 언제 가도 유쾌해지는 곳이다. 젊은이들이 서점과 카페 그리고 무대가 있는 극장거리를 가득 채운 곳을 걷자니 청춘이 다시 찾아온 느낌이다. 언제나 그렇듯 "반즈앤 노블즈"의 서가를 둘러보는 일정을 시작한다. 이럴 때마다 겪게 되는 압도감이 있다. 이렇게들 지적 자원을 쌓아가고 있구나, 문명의 저력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기분 말이다. 요즈음은 고대와 중세의 세계사적 연결망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자연 그리로 관심이 간다. 역사책 코너에 가면, 갑자기 시야가 무한대로 확장되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사로 눈을 옮기면, 미국의 내전 이후 재건기(Reconstruction)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낸 에릭 포너(Eric Foner)의 책이 잡힌다. 컬럼비아 대학 역사교수인 그는 부모가 모두 냉전 초기 맥카시즘의 희생자들이다. 아버지는 교수직을 잃었고, 어머니는 교사직에서 쫓겨난다. 아버지가 추방당한 자리에 온 교수는 리차드 홉스타더(Richard Hofstadter)로 미국사의 대가이자 후에 그의 스승이 된다. 기묘한 인연이다. 그런 그의 필생의 화두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다. 영국에서도 공부한 그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um), 이.피. 톰슨(E. P. Thomson)의 영향을 깊이 받는다.
홉스봄이나 톰슨 모두 민중의 역할을 주목하는 세계적 수준의 진보적 사학자들이다. 에릭 포너는 내전 이후의 미국사를 연구하면서 주류 역사가 누락시킨 이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복원해나간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국내 번역은 [역사란 무엇인가?]; Who Owns History?)"에서 "민주주의는 참으로 파손되기 쉬운 것(fragile)"이라고 말한다.
내전까지 치르고 남과 북의 통일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노예제도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고 인권문제에 대한 민주적 전통을 바로 세우는데 얼마나 많은 희생과 투쟁, 그리고 노력이 요구되었는지 그는 뜨겁게 증언하고 있다. 기만과 억압, 폭력과 착취가 미국의 근현대사를 지탱해온 그 적나라한 진상을 폭로하는 동시에, 누가 그 자유의 투쟁을 위한 선봉에 섰는지 절절하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일단 지나가면 그걸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 돌이키고 새롭게 해석하는 가운데 현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 에릭 포너의 이런 생각과 비교해보자면 우린 너무나도 "망각의 사회적 관습"이 강하다. 지나간 일은 어느 새 관속에 묻혀 버리고, 권력은 억울한 이들의 절규는 별별 수단을 동원해 틀어막는다.
청계천, 12만 톤 수돗물 대량 방류 권력 홍보구조물
그런 의미에서 청계천의 진상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자연의 경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허드슨 강을 바라 볼 때마다 떠오르게 되는 것은 청계천 신화의 기만이다. 4대강부터 시작해서 이명박 정권의 일체의 밀어붙이기 그 밑바닥에는 청계천이 있다. 지방에는 청계천 따라 하기 운동의 열풍이 불고 있으며, 이명박의 선택은 이런 논리 위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그러나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청계천이 콩크리트에 수돗물을 대량 방류하는 인공정원이라는 점은 다들 알면서도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수돗물 대량방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탕진되고 있는지는 서울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경남대학 나노공학과 윤존도 교수가 지난 10월 1일, <경남도민일보>에 실은 과학칼럼은 이런 청계천의 기만을 명확히 정리해주고 있다. 그는 얼핏 겉보기로 괜찮다 싶은 청계천을 보다가 점점 그 실상에 접근해나간다.
"감상에서 벗어나는 데는 그리 오리 걸리지 않았다. 좋아 보이기는 하나 뭔지 모를 불편함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청계천이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던 개울이나 하천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은 맑은데 이렇게 깊고 빠르게 흐르는 물은 본 적이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가면서 송사리 한 마리도 없고, 모래바닥도 없고 수초도 거의 없고 이것이 과연 우리가 개울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의혹이 든 윤존도 교수는 청계천 작동방식의 실상을 밝힌다.
"그 뒤로 많은 사람이 청계천이 자연 하천이 아니라 인공 구조물이며 정수장에서 만든 수돗물을 하루 12만 톤씩이나 대형펌프로 먼 거리를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대형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청계천이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하루 삼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쓰며 유지보수비로 매년 70억 원의 돈이 들고 9억 원의 전기료를 내며 150억 원어치의 물을 쓰는 기괴한 정원이라는 것을 비판하였다. 화장실 수돗물 한 방울을 아끼며 살던 우리가 밤이고 낮이고 엄청난 양의 수돗물을 틀어 놓다니. 지구 온난화가 위기이고 녹색 성장이 화두인 21세기 초입에 나라의 얼굴인 서울에서 동네 개울에다가 하루 14톤 온실 가스를 배출하며 수돗물을 쏟아 붓는다니. 청계천은 생명이 살아가는 하천이 아니라 대량의 용수를 이송하고 개방된 파이프로 방류하는 공업 제품이었다."
하루 12만톤의 정제된 수돗물 대량 방류, 하루 14톤 온실가스 배출, 일년 전기료 9억 원과 물값 150억원, 매년 유지 보수비 70억원. 물 한방울 아껴 쓰자면서 이런 식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해결하는 녹색성장하자면서 이런 모순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물 부족 대비를 하자면서 서울 중심에다가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는다. 생명을 지켜내는 자연하천이 아니라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권력자의 홍보 구조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걸 위해 민중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이렇게 허공에 날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바로 이런 정권이다. 권력과 자본의 천국을 위해 민중의 삶은 지속적으로 희생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종식, 그리고 재집권 저지를 위해
이렇게 국민을 속이고 폭력과 기만으로 점철된 정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그 권력이 자라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재집권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서도 안 된다. 2010년 지방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진보세력이 총집결해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 패배는 진보진영의 역사적 범죄다.
2010년은 어떤 해인가? 일제 식민지 조선반도 강점 100주년, 6.25 한국전쟁 60주년, 4.19혁명 50주년, 광주 민중항쟁 30주년,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두 분의 1주기이다. 우리의 역사를 성찰적으로 돌아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이런 2010년에 이 모든 역사의 교훈과 의미를 묵살하고 짓밟는 권력의 존속이 계속 가능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다. 정치공학적 관계로 보면,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계파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선거결과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권력누수기는 더욱 앞당겨질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 미국 사이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기본방향이 구체화되면 정세는 더욱 변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명박 정권에게는 최대의 위기가 이번 2010년 지방선거인 것이다. 진보진영이 잘 하기에 따라 파손되기 쉬운 민주주의는 견고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진보진영 자신이다.
진보대연합의 절박성
진보진영 내부에서 연합, 연대, 단결 등의 문제를 놓고 격론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반 이명박 전선은 신자유주의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거나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비판적 지지의 재판이 될 수 있다, 가 가장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런 전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대연합을 하면 진보세력은 도리어 공멸할 수 있으니 진보세력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연대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일정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기 민주당이나 참여정부 참여세력이 보여준 역사적 퇴행의 모습, 그에 대한 반성부족,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분열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았던 상처와 고통, 등등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의 기미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경우, 민중의 삶을 보다 진보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철학과 자세도 없는 상태에서 대동단결론에 편승해 수를 부풀려 자신의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정치공학적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을 만한 모습을 깨끗이 청산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일이 제아무리 급해도 짚을 것은 짚고 장기적 전략에서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하자는 논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진보의 가치를 접고 우선 급한 것부터 처리하자는 식의 대동단결론을 주장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우선 대동단결이 곧 묻지마 단결을 주장하는 논리는 아니다.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힘의 집결을 위한 수순이다. 누가 묻지마 대동단결론을 주장하는가? 그건 현실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논리다. 진보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길을 뚫어내자는 것이 진보개혁 세력의 대동단결론이다. 반 이명박 전선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면서 그보다 상위의 가치를 이루어내기 위한 정치력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지점이 있다. 이명박 정권이 곧 신자유주의 실체라는 점이다. 그러니 반 이명박 전선이 신자유주의 문제를 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의회주의를 파산시키지 못하는 조건에서 태동한 파시즘의 유연전략 또는 저강도 전쟁전략이다. 이명박 정권은 그런 전략의 선두에 있다. 따라서 반 이명박 전선을 강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분쇄할 뿐만 아니라 파시즘 정치의 골격을 무너뜨리는 일차적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겪어나가면 대동단결의 전선 내부에 신자유주의 지지 세력이나 과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세력이 포함되어 있다 해도 더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러한 논리가 비판적 지지의 재판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그 논쟁이 벌어졌던 시기의 진보진영의 역량이나 자세가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진보진영은 나름의 독자적 역량을 지닌 실체이다. 과거의 비판적 지지 망령에 의한 피해의식이 너무 깊으면 과감한 선택과 대동단결에서 오는 파괴력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지 못하게 되고 만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함께 힘을 모아나갈 방도보다는 그럴 수없는 이유를 더 많이 내세우는 일부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이명박 정권의 세력 확대를 돕는 것일 뿐이다. 대동단결을 강조하는 이들이 이명박 정권이 우선 문제이니 일단 진보적 가치를 포기하자는 주장을 언제 한 적이 있는가?
진보진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서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어야 할 바가 있다. 진보진영의 대연합과 민주개혁세력 전체와의 대동단결은 진보진영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민중의 고통을 먼저 해결하는 것에 우선권을 두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선택이다. 당장에 죽어나가게 생긴 민중들의 고통이 있는데 그걸 위해 무얼 못하겠다는 말인가? 현재의 진보세력이 가진 기득권이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런 것도 흔쾌히 버리고 민중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감당하겠다는 자세야말로 오늘의 정치를 감동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 나라 진보세력의 미래를 지켜내는 모습 아닌가? 김구 선생이 독립된 조국에서는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런 각오와 자세야말로 진보진영이 깊이 깨우쳐 배울 바가 아닌가?
뭐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했으면 좋겠다. 이 비열하고 난폭한 정권과 그 세력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중의 희망을 짓밟고 있는 현실을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2009년이 한나라당의 예산 날치기로 기어코 얼룩졌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여당과 의회의 현실은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각오해야 하는지 일깨운다. 더는 약한 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2010년, 우리는 그야말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분열은 자멸이고, 단결은 살 길이다. 갈라져 있어야 할 이유만 늘어놓으려 들면 힘을 합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건 어리석다.
어떤 권력도 자진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더 큰 권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가 바로 그 더 큰 권력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람이 아무리 차고 강해도, 우리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2010년은 이 모든 승리의 출발점이 되리라. 우리의 손이 강하게 서로를 붙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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