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명을 70살이라고 할 때, 우리는 3000번 울고 540000번 웃는다. 540000/3000=180.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 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김연수의 장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나오는 이 구절은, 마치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본 다음에 써내려간 문구 같을 정도로 이 걸출한 시트콤의 핵심을 꿰뚫는다. <하이킥>에서 선사하는 180번의 웃음은 모두 한 번의 눈물을 예비하고 있기에 더 재미있고 더 절절하다.
▲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한 장면. <하이킥>은 그 한 번의 눈물 이전에 존재하는 180번의 웃음에 주목한다 ⓒMBC |
<지붕 뚫고 하이킥>은 슬픈 이야기다. 세경은 빚쟁이에게 쫓기는 아버지와 이별하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입주 가정부가 된다. 부잣집의 옷방에 임시 기거하며 부엌일과 청소를 도맡아 하며 동생을 보살핀다. 주인집 아들 의사 선생을 연모하고, 주인집 고등학생 손자의 연정을 받는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시놉시스를 정리하면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으며 세경은 눈물의 여왕이어야 한다. 그러나 <하이킥>은 그 한 번의 눈물 이전에 존재하는 180번의 웃음에 주목한다. 가장 극적이고 '센' 순간만을 담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의 강박에서 벗어나, <하이킥>은 그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웃음을 묘사한다. '지금껏 누가 내 팬티를 빨아왔는가'에 대한 깨달음으로 충격 받은 손자와 어떻게든 그 속옷을 찾아내 빨고야 말겠다는 세경의 줄다리기는 대표적인 포복절도 에피소드다.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말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어떤 문학이론가가 말했던가. 우리는 웃으면서도 세경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손자 준혁 학생의 연정이 얼마나 수줍은 것인지를 깨닫는다. 아니, 그걸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즐겁게 웃을 수 있다. 웃겨야 한다는 시트콤 장르의 절대 사명은, 오히려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 놓는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계급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대 생으로 오해되어 과외 선생 자리를 얻은 '서운대 생' 정음은 자신의 진짜 신분이 노출될까 전전긍긍하는 일로 코미디를 만들며, 정음과 같은 하숙집에 동거하는 친구인 광수-인나 커플은 음악을 하려는 20대 백수들로, 마트 사은품으로 연명하는 일과 적은 돈으로 살아남기 위한 재테크에 골몰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한편, 세경은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식모를 하고 있는 자신과 주인집 아들 의사 선생과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 차마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처럼 <하이킥>은 인물의 사회적 계급과 그 인물의 개성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사건들을 유려하게 배치한다. 많은 한국 드라마가 인물 간의 갈등을 '인간의 문제', 혹은 '관계의 문제'로만 축소시켜 현실의 계급을 주인공에 대한 애정으로 무마하려는 사이, <하이킥>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이야기의 광맥을 찾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한 장면. 웃겨야 한다는 시트콤 장르의 절대 사명은, 오히려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 놓는다. ⓒMBC |
이것은 또한 이야기상으로는 새롭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가족의 전성기'라는 판타지에 집착한다. 왜 항상 가족은 따뜻하고 서로를 위해야 하며 저녁식사 후에 어머니나 가정부가 깎아온 과일을 들며 하루의 대소사를 웃으며 나누어야 하는가? 가족 구성원이 일체감을 느끼며 똘똘 뭉쳐 있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와 어린 자녀가 있는 시기를 지나면, 저마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각각의 사람들이 한 데 뭉쳐 살고 있을 뿐이다. <하이킥>에서는 이런 데면데면한 가족 관계를 외면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인물 개인의 욕망에 앞서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들이 자녀의 결혼 문제를 주 소재로 사용하면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결혼에 대처하는 가족 구성원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야기와 인물의 개성은 시들시들해지고 어디서 본 듯한 사람과 사건이 반복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이킥>에서는 가족이란 울타리로 인물을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울타리 안에 있음으로써 벌어지는 사건들이 묘사된다. 이야기의 논리나 당위에 따라 인물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개성과 욕망에 따라 이야기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붕 뚫고 하이킥>은 시트콤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한국 드라마의 장르적 한계와 실패 지점을 뚫어버린다. 23분이라는 간소한 러닝타임에 2개의 에피소드를 배치함으로써 이야기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실패 지점을 피해가며, 연속성을 띤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물의 일관성이 망가지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시트콤 장르로서도 다른 시트콤과는 다르다. 웃음 소리 효과를 보자. 웃을 자리를 알려주고 시청자가 마치 방청객이 된 양 같이 웃게 유도하는 이 시트콤 특유의 장치는 김병욱 PD의 시트콤에서는 거의 브레히트적으로 사용된다. 모든 게 내 거라며 '빵꾸똥꾸'를 외치는 꼬마 악녀 해리가 세경의 동생 신애를 구박하는 모습은 사실 슬픈 음악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듯 하다. 당하는 신애와 세경의 억울함에 더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킥>에서는 대신 웃음 소리 효과를 준다. 세경과 신애에 대한 연민에 호소하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의 부조리함을 즐기게 한 후, 그렇게 공격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해리의 외로움까지 포착해내는 것이다. 장르의 관습적인 장치가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 <하이킥>의 세계에서 사건들은 애수를 깔고 있고, 인물 간에는 거의 폭력적이기 까지 한 권력관계와 사회적인 계급 문제들이 그물망처럼 엮여 있다. ⓒMBC |
김병욱 PD가 보여주는 세계는 사실은 슬픔으로 가득 찬 세계다. 그가 보여주는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는 슬픈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계속 수치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는 정음이 우습지만 딱하고, 모자란 지능 때문에 늘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보석 또한 안쓰럽기 그지 없다. 늘그막에 설레는 연애를 하지만 딸 아이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순재도 애틋하다. 그러나 김병욱의 인물 묘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음은 온갖 잔머리와 속임수의 화신이고, 보석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세경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순재는 방귀나 뿡뿡 뀌어대며 가족들의 의사를 무시하기 일쑤다. <하이킥>의 세계에서 사건들은 애수를 깔고 있고, 인물 간에는 거의 폭력적이기까지 한 권력관계와 사회적인 계급 문제들이 그물망처럼 엮여 있다. 김병욱 PD가 이 그물을 돌파하는 방식은 끊임없는 객관화다. 한발짝 물러서서 욕망 투성이의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을 웃음소리 효과와 같이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웃으면서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이 세상이 사실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끝에 한 줄기 눈물만 개운하게 흘리면 된다는 것. 그토록 다양한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도 이 시트콤이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은 오히려 담백하다. 슬픔의 순간, 폭력적인 시대, 비굴한 상황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1번의 눈물 이전에 너무나 소중한 180번의 웃음이 있다는 것.
한국 영화, 드라마 업계에서 시트콤은 하위 장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제작비의 규모가 제일 열악한 장르이기도 하다. <하이킥>의 인물들 중에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자면 세경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낮은 계급의 사람일수록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많은 노력과 사려 깊은 태도를 필요로 하며, 그렇게 해서 존엄성을 지켜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살아 숨쉬는 인물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통해 시트콤 장르의 존엄성을 지키며 한국 드라마 장르의 지붕을 시원하게 뚫어버렸다.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려 하지만 현실적 한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감독과 작가들은,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볼지어다. 그 한계 안에서 찾아낸 지극한 자유를 맛 볼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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