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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센 놈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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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센 놈Ⅱ

[한윤수의 '오랑캐꽃']<173>

안성 공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가 넘어서 사장님 이하 임원은 퇴근하고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C이사라는 분이 막 퇴근하려다가 N간사와 마주앉았다. C이사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실 가구 공장에 여성 근로자가 필요한 건 아니거든요. 남편 얼굴 봐서 써준 거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에선 이 부부에게 할 만큼은 해주었다. 가구 공장에선 화재 위험 때문에 개인적으로 밥을 못해먹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불통은 갑상선을 앓고 있어서 식당에서 해주는 한국 음식을 못 먹었다. 회사에선 할 수 없이 불통 부부에겐 개인 취사를 허락했다. 그러자 다른 노동자들도 너도 나도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특히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향료를 많이 써서 그 냄새 때문에 한국 사람은 아무도 2층 기숙사에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냄새보다는 화재 위험이 더 컸다. 화재가 날까봐 관리자들은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남편이 그만두자 임원회의 끝에 모든 문제의 화근인 여성을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N간사가 말했다.
"하지만 퇴직 사유를 <본인의 희망>으로 고용지원센터에 신고했기 때문에 리나가 불법이 된 겁니다."
C이사는 굉장히 미안해했다.
"잘못되었군요. 어떻게 하면 근로자가 구제될 수 있겠습니까?"
"퇴직사유를 <경영상 필요>로 해주시든지 아니면 다시 받아주시면 되지요."
"경영상 필요라는 게 뭐지요?"
"경영난으로 인한 감원이라는 얘기지요."
"그건 해드릴 수 없구요. 만일 둘 다 받아주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물론이죠."
"좋습니다. 사장님께 건의해보지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요."

C이사는 인정이 많고 인품이 좋은 분이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했으니까.
"두 사람 잘 데 없으면 오늘밤 식당 방에서 자도 좋아요."
비로소 리나의 얼굴이 펴졌다. 그녀는 하루 종일 구름 낀 얼굴로 찔끔거렸는데 모처럼 밝은 낯이 되었다.
N간사가 회사를 나오자, 부부가 저녁을 사겠다며 따라 나왔다.
N간사는 국물 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지만, 불통이 입맛이 없다며 통닭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엉뚱하게 통닭집에 마주 앉았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은 펴졌어도 남편은 불만으로 입이 퉁 나온 채로 계속 우거지상이었다. 그러니 통닭 먹을 맛이 나겠는가? 보다 못해 N간사가 한 마디 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회사 밖에 방 얻어주면 좋은데, 그 얘기가 없잖아요."

N간사는 기가 막혀 토할 뻔했다.
"아니, 죽어가는 놈 겨우 살려놓았더니 신혼살림 차려달라는 거야?"
"방 얻어주면 좋잖아요."
N간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이사님에게 얘기해서 오늘 일 없던 걸로 하겠어. 괜찮아?"
리나가 사정했다.
"저번에 남편이 그만두려고 할 때도 저는 울며 말렸어요. 월급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주는데, 다른 데 가봐야 더 좋은 직장 구하기 어렵다구요."
"그런데 왜 그만두었어요?"
"고집 피우는 걸 어떡해요. 원래 고집이 세거든요. 또 이 사람은 제가 돌봐야 할 환자라는 거 이해 좀 해주세요."
사태가 심각한 것을 보고서야 겁이 난 불통이 잘못했다고 빌었다.
"사실은 회사 그만둘 때 <방 얻어줄게 그만두지 마!>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N간사가 마음을 풀었다. 하지만 결코 식은 통닭에 손을 대진 않았다.

헤어질 때 불통이 아까 발안에서 샀던 그 볼품없는 케익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선생님 선물이요."
"왜 이사님 드리지, 나를 줘?"
"선생님이 좋아서요."
그래도 받지 않자, 불통은 케익을 땅바닥에 놓고 뒤도 안 보고 가버렸다.
'고집 센 놈!'
N간사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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