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가 지난 8일 문화방송(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극중 초등학생 '해리'(진지희)가 "빵꾸똥꾸"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놓고 권고 조치를 의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해리의 "왜 때려, 이 빵꾸똥꾸야", "먹지마! 어디 거지같은 게 내가 사온 케이크를 먹으려고", "내 방에서 당장 나가" 등의 대사가 방송법 제100조 1항을 위반했다며 <지붕뚫고 하이킥> 측에 권고 조치를 내렸다. 방통심의위는 "해리가 어른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사용하는 모습이 필요 이상으로 장기간 반복되어 묘사됐다"며 "다른 어린이 시청자들의 모방 가능성을 불러와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빵꾸똥꾸심의위'냐…인터넷은 '폭소'"
이런 방통심의위원회의 조치에 인터넷 공간은 폭소의 도가니다. "차라리 <지붕뚫고 하이킥>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버전으로 만들어라", "<지붕뚫고 하이킥>은 15세 이상 시청가인데 어린이 영향을 우려한다는 것은 무슨 내용이냐"."진짜 '빵꾸똥꾸심의위원회'다" 등.
비속어이지만 입에 착착 감기는 어감 때문일까. 앵커마저 웃겼다. 23일 YTN <뉴스 출발>에서 이종구 앵커는 방송통신심의위의 권고 조치를 보도하던 중 "'빵꾸똥꾸'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 것과 관련해…"라는 대목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옆에 있던 이여진 기자도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누리꾼의 반응 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방통심의위는 할 일도 없나." 그렇다. 왜 굳이 방통심의위가 "빵꾸똥꾸"라는 말까지 심의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대한민국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러다 통금도 살아나겠다"라고 개탄했다.
▲ MBC 인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해리'(진지희) 해리가 외치는 '빵꾸똥꾸'는 전국민의 유행어가 됐다. ⓒMBC |
옛날 옛적, '둘리'도 '건방지다'며 심의를 받았다
이외수 씨의 말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늘의 모습과 꼭 닮은 과거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대표적인 한국의 대표 토종 캐릭터인 '둘리'도 '건방지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았다. 1983년부터 만화잡지 <보물섬> 연재된 김수정 화백의 <아기 공룡 둘리>는 당시 둘리, 또치, 도우너 등의 친구들이 어른인 '고길동'에게 "길동아!"라고 불러 반말을 했다고 심의에 걸렸다.
만약 둘리, 도우너, 또치가 어른들에게 주눅든 채로 얌전하고 착했다면 '둘리'의 인기가 가능했을까. 당시 '어른은 성인군자여야 하고 아이들은 효자, 효녀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그대로 따랐다면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환영받는 캐릭터 둘리는 없었다. 당시 <둘리>는 기존의 계몽적 만화 문법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시각에 맞춘, 진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아동용 만화'의 새 장을 열었다.
해리는 어떤가. 시트콤이 시작된 초반 해리의 캐릭터는 일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 듯한 전무후무한 악동 아역 캐릭터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빵꾸똥꾸'의 어원이 밝혀지고 '해리'의 성격이 왜 그렇게 삐뚤게 형성됐는지가 설명되면서 이 역할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가 높아졌고 곧 사랑받는 캐릭터가 됐다.
방통심의위는 권고 조치의 이유로 '아동의 모방 가능성'을 들었지만 그 역시 미심쩍다. 누리꾼들이 날카롭게 지적한 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은 '15세 이상 시청가'인 데다가, 어린이 시청자의 모방 가능성을 염려한다면 "빵꾸똥꾸"를 외치는 해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온갖 욕망을 풍자하는 이 시트콤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지 않을까.
20여 년 전 둘리의 입을 막으려 했던 통제와 검열의 관행이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 이번 해프닝은 방통심의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방통심위원회를 그대로 둬야 할까? 정말 '빵꾸똥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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