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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한국 드라마의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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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한국 드라마의 미래인가?

[모 피디의 그게 모!] 2009년 한국 드라마

여섯 모 : 장르의 실패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 생존형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멤버처럼 되어 버렸다. 그나마 시청률에서 살아남은 드라마의 얘기다.

과장처럼 들리는가. 어찌됐든 드라마가 올 한 해 내내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 <찬란한 유산>, <솔 약국집 아들들>, <선덕여왕>, <아이리스>…. 포털사이트 메인에 늘 전시됐던 드라마들이라 보지 않아도 충분히 화젯거리에 올려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F4가 얼마나 멋있는지, 태봉이가 얼마나 로맨틱한지, 얼굴에 점 하나를 찍으면 얼마나 독해질 수 있는지, 이승기가 왜 국민 엄친아인지, 미실의 눈썹이 어땠는지, 이병헌과 김태희가 사탕을 어쨌는지…. 이만큼의 화제성이라면 올 해 드라마는 풍년이라고 해도 좋지 않냐고?

아니, 원래 드라마는 '소소한 관심의 대상'이다. 안녕하세요? 어제 비담이 멋있더군요. 그래요? 고미실은 피부가 좋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춥네요. 네, 감기 조심하세요. 드라마가 화젯거리가 된다는 건 그냥 날씨와 같은 것이다. '친교적 기능의 대화'의 소재로 사용될 뿐이다. 현재 드라마 담론은 날씨 이야기처럼 껍데기만 남았다. 유달리 추운 날 서로 날씨를 걱정하듯, 유달리 자극적인 장면이 나온 다음 날 우리는 그 장면을 화제에 올린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추운 날 아침 이불의 아늑함, 오랜만에 꺼내 입은 코트의 옷깃, 주머니에서 발견한 천원 짜리 지폐, 빨갛게 얼어붙는 볼과 내뿜는 입김, 어깨를 웅크리고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날에 대한 계획과 일상적인 기대감. 사실 드라마가 공감하고 다가가야 하는 것은 이런 차원이다. 그런데 올 해의 드라마 모양새는 살기 위해 투쟁하다보니 인생의 허망함에 맞부딪친 중년의 위기처럼 보인다. 남들 보기에 그다지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삶의 어느 순간 내 인생이 실패가 아니었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듯, 2009년의 드라마는 TV 드라마 장르의 실패를 예감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 KBS <꽃보다 남자>, MBC <내조의 여왕> 등 2009년 화제에 오른 드라마는 많았다. 그러나 드라마 장르의 실패를 예감하게 하는 지점도 적지 않다.

첫 번째 실패는 너무나 긴 러닝 타임이 블록버스터와 만났다는 점이다. 회당 70분 주 2회를 드라마에 할애한다는 것은 충성도 높은 시청자에게는 상당한 진입 장벽이다. 그 시청자들을 잡기 위해 드라마들은 판돈을 키워 1회에서 4회까지에 승부를 건다. 그 다음부터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2개 이상의 팀으로 나누어 생방송 스케줄에 돌입한다. 당연히 극의 밀도와 완성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는가. 자신이 애정을 준 드라마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만큼 시청자를 배반하는 일도 없다. 드라마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에 빠져드는 일인데, 구멍이 숭숭 뚫린 픽션에 빠져들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 70분씩을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엔 TV 드라마의 완결성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시청자, 즉 틀어놓고 대충 흘리면서 보는 시청자들만 남아 시청률을 올려준다. 연애에 비유하자면 자신을 그다지 아껴주지 않고 밖에 나가 떠벌리기만 하는 연인을 맞이하기 위해 초반 데이트에 온갖 치장을 하는 꼴이다. 2009년의 미니시리즈들은 그래서 여전히 용두사미 증후군에 시달려야 했으며, 가끔씩 놀라운 신들과 의미심장한 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조롱과 실망에 쫓겨야 했다.

두 번째 실패는 내러티브의 정형화다. 판돈과 함께 위험부담이 커지자, 드라마들은 저마다 흥행 실패를 막기 위한 안전 장치로 내러티브를 손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힘이란 창작자가 그 이야기를 꼭 해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에너지가 있을 때 생겨나는 법이다. 이러면 덜 실패하겠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겠지? 목적 의식이 지나치게 보이는 이야기가 에너지 있는 이야기들을 압도하면서, 사실상 개성 있는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신선한 에너지와 안정감 있는 내러티브는 신구의 조화에서 오기 마련인데, 위험 부담은 신인의 진입을 막고 성공 전례의 답습을 낳았다. 그 와중에 존재했던 <탐나는도다>, <미남이시네요>, <파트너>등의 드라마들이 했던 작은 도전들은 시청률은 물론 업계 내에서도 별다른 존중을 받지 못했다. 연속극은 <아내의 유혹>의 후폭풍으로 인해서 '복수 시트콤'화 되어 가는 길을 밟고 있다.

세 번째 실패는 인적 자원 확충의 실패, 드라마의 종 다양성 확보의 실패다. MBC와 KBS가 각각 단막극을 폐지하면서 작가, 연출, 배우진의 수혈이 끊기고 '한 번 됐던 배우, 작가, 연출'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 주간 시추에이션물, 4부작이나 8부작, 장르물은 자취를 감추다 시피 했으며, 방송 돼도 장기물에 비해 지속성 있는 화젯거리를 생산하지 못해 금세 잊혀지고 고립됐다.

▲ 22일 종영한 MBC 드라마 <선덕여왕> 중 한 장면. 결국 한국 TV드라마 장르는 70분 이상의 주 2회 블록버스터 드라마, 30분 이상 주 5-6회의 독한 이야기를 다루는 일일연속극, 가족주말극 정도로 정리된다 ⓒMBC

결국 한국 TV 드라마 장르는 70분 이상의 주 2회 블록버스터 드라마, 30분 이상 주 5~6회의 독한 이야기를 다루는 일일연속극, 가족주말극 정도로 정리되었다. 글 서두에 제시했던 7개의 드라마는 2009년 한국 TV 드라마 장르의 실패를 뚫고 어떻게든 성공 지점을 찾은 드라마들이었다. 그러나 그 드라마들이 향후 한국 드라마라는 장르에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약속해준다고 말할 순 없다. 드라마 판이라는 게임의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바빠, 하나의 대중예술 장르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며 자신의 세계를 완성했는가를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TV 드라마의 장르적 속성을 이해하려면 같은 픽션 장르의 형제이자 집단 창작물인 연극과 영화와 비교해 보면 쉽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 휴대폰이 울리면 같이 보는 관객에게 미안하다. 연극을 보는 와중에 휴대폰이 울리면 관객은 물론 그 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에게 씻을 수 없는 실례가 된다. TV를 볼 때 휴대폰이 울리면 나 자신만 괜찮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영화는 대상을 다른 관객과 같이 '욕망하고 관음'하는 내밀한 장르고,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한 덩이가 되어서 겪는 공동의 사회적 체험이다. 그런데 TV는 무척 개인적이면서도 매우 사회적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내밀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같고, 그럼에도 같은 시각 전국의 안방에 뿌려진다는 의미에서 시청자에게나 연기자에게나 연극보다도 더한 공동의 사회적 체험이다. 관음 하되 관음하지 못하고 욕망하되 체면을 차려야 하는 장르인 것이다. TV 드라마가 이야기 장르로서 연극과 영화와 구별되는 지점을 지니면서 스스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려면 이 속성에 적합한 이야기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올해의 드라마 중에 그 지점을 선취한 드라마가 있던가.

있다. 드라마로 분류되지 않아 연말 연기 대상이 아닌 연예 대상 시상식에 포함되어 있는 그 작품, <지붕 뚫고 하이킥>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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